번외-의도치 않게, 영국 여자&한국 남자 소개팅 시켜준 썰.
10여 년 전, 영국에 있을 때 이야기예요.
영어는 싫어했지만 나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 만나고 새로운 문화 배우는 건 좋아한 탓에(=오지랖 덕에)
현지에서도 외국인 친구들을 곧 잘 만들었어요.
오늘은 저랑 깊이 친해진 영국 친구의 이야기를 해볼게요.
전 결혼 직 후 정말 계획에도 없던 영국으로 남편이 갑자기 발령 나는 바람에 신혼을 영국에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당황스러웠지만 신혼이고 젊었기에 '맨땅에 헤딩' 정신으로 중무장하고는 현지에 적응하려고 고군분투했습니다. 그 노력들 중 하나가 '영국인 친구 사귀기'였고 집 근처에 있는 한 마트 게시판에 "친구 구합니다"라고 손글씨로 써서 광고를 했어요.
"Hello, there! I'm from South Korea. I can teach you Korean and Japanese. I also can cook Korean food for you! Kindly be my friend please! There is my phone number 074********"
'나는 한국에서 왔고, 한국어 가르쳐 줄 수 있고, 일본어도 가르쳐줄 수 있다. 한국 밥도 잘해줄 수 있으니 친구가 되어줘!'
이런 내용이었죠. 2주마다 슈퍼마켓의 게시판 광고 쪽지는 모두 사라지는데 그럼 전 또 새로 써서 붙이고를 반복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두어 달쯤 지났을 무렵 한 문자가 왔어요.
"Hi, I'm ****, I've read your post at Morrisons. I'm gonna Korea in 3 months and just booked the flight, and it feels like Destiny! I hope we could meet soon!"
'안녕, 마트에 네가 쓴 광고 글 봤다. 나 3개월 뒤에 한국 여행 가는 티켓 끊었는데, 이거 운명 같다! 만나자!'
메시지로 말해준 이름은 여자였지만, 그래도 혹시 변태가 나올 확률이 없진 않으니, 첫 만남은 무조건 사람 많은 카페로 장소를 정했어요. 비록 할머니, 할아버지만 가는 카페이긴 했지만 안전한 게 최우선이니까요.
"I'm free tomorrow, how about meet at the Cafe in Morrisson?"
'내일 그 광고 붙인 마트 안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자!'
고 메시지를 보내고, okay 답을 듣고 시간 조율 후 바로 다음날 만났어요.
변태는커녕! 저보다 7살 많은, 토끼처럼 귀여운 눈의 사랑스러운 영국인 언니였어요. 이 동네 몇 년째 살지만 이 카페는 처음 온다며, 여기서 만나자는 메시지를 받고 그냥 만나지 말까 하고 살짝 고민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젊은 친구들은 가지 않는 곳이었죠. 에든버러가 아닌 잉글랜드 출신인데, 에든버러의 전통적인 분위기에 매료되어서 몇 년째 지내고 있다고 했어요. 또 'Outback trip' 즉 오지탐험을 좋아해서 휴가 때마다 남아프리카, 이란, 등을 여행 다니는데 이번 'outback trip' 휴가 목적지는 한국이었던 거죠.
'헐.. 한국이 오지라고?' 서울 가면 정말 놀랄 텐데.. 내가 보기엔 여기야 말로 오진데...'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워낙에 짧은 영어 탓에, '한국 오지여행'이라는 말에 긍정도 부정도 못하는 표정만 지었습니다.
그 친구 집과 저희 집이 걸어서 3분 거리라 한국 여행 직전까지 정말 매일매일 만났어요. 저희 집에도 그 친구 집을 오고 가며 한국 여행 계획도 같이 세워주고, 한국 음식과 영국 음식을 번갈아 만들어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요.
영국은 음식이 맛없기로 유명해서 이런 유머가 있죠.
"영국의 대표음식 세 가지는?"
정답은- "첫 번째 피시, 두 번째 칩스, 세 번째 피시 앤 칩스!"
즉, fish and chips 뿐이란 거죠.
실제로 레스토랑을 가도 영국 전통 음식을 파는 식당은 잘 없었어요. 차라리 afternoon tea 가 더 유명하죠. 그런데 영국 홈메이드 음식들은 맛있는 게 정말 많아요. 아마 이웃 나라 프랑스, 이탈리아나 스페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음식문화가 덜 발달한 것처럼 느껴져서 저런 유머가 생긴 것 같아요.
그렇게 친구와 매일 한국 여행 계획을 하다가 문득 '이 친구.. 한국 가서 껍데기만 보고 오겠구나. 내가 한국에 있었으면 우리 집도 데려가고, 우리 엄마 밥도 해주고 진짜 한국을 보여줄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국에 있는 제 여자 친구들을 가이드로 붙여줄 생각을 했지요. 하지만 한국의 제 친구들은 모두 거부합니다.
"'영국 남자'(특정인 지칭 아님)도 아니고, 내가 영국 여자 만나서 뭐하니?" 라며...
마침, 남편 친구 중 하나가 당시에 백수(?) 비슷한 상태였어요. '곰'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 친구는 큰 시험을 보고 발령을 기다리던 중이라 딱히 얽매이는 것 없이 별명답게 한량으로 지내는 중이었지요. 그래서 남편은 그 친구에게 물어봅니다.
"곰아~ 집에서 노느니, 영국 누나 가이드 좀 해줘라~"
남편 친구는 okay 했습니다. 제 영국 친구에게도 한국 가이드를 소개해주겠다고 말한 뒤, 남편 친구의 연락처도 알려줬어요. 둘은 facebook 메신저로 서로 연락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둘이 직접 여행 스케줄을 만든다고 저와는 더 이상 한국 여행 스케줄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영국 친구가 물어봅니다.
"What does 'TonKangHaChi' mean?"
'<톤캉하지>가 무슨 뜻이야?'
"'TonKangHaChi'? Is that Korean?"
'톤캉하치? 그거 한국말이야?'
"Yes"
"Where did you hear that word?"
'그 말을 어디에서 들었는데?'
영국 친구 왈, 남편 친구가 전화하다가 말했대요. '오~ 둘이 통화도 하는 줄은 몰랐는데'라고 생각하며
"Why don't you ask to him directly?"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
"I did, I also sent a message but he didn't let me know"
'물어봤어! 메시지까지 보냈는데도 안 가르쳐 주잖아.'
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 메시지를 직접 보는 게 낫겠다 싶어서
"Just show me the message!"
'그냥 메시지를 나한테 보여줘 봐'
라고 했더니
"NO!!!!!! it's it's funny!! it's just funny!!"
'안돼! 그거 웃겨, 좀 그래!'
라며 정색을 합니다.
며칠간 영국친구가 남편 친구를 추궁한 끝에 결국 그 단어를 다시 들었고, 그건 '똥강아지'였습니다.
똥. 강. 아. 지?
"He called you 'TonKangHaChi'?"
'언니를 똥강아지라고 불렀다고?'
뭔가 하트하트 한 느낌이 살짝 오더라고요.
근데 그 영국 친구는 한글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한글 단어의 정확한 발음을 듣는다 해도 어떻게 검색하는지도 막막해했어요. 그래서 그 뜻을 저에게 물어보는데, 그 와중에 전 똥강아지 번역을 'shit dog baby'라고 하자 친구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결국 귀여운 이미지의 애칭이라며 몇 번의 설명을 거듭 시도한 끝에, 친구가 'Ah, I see, poop puppy!'로 순화해주더군요.
제가 영국 친구에게
"You are making travel plan, not life plan, right?"
'언니, 지금 여행 계획 세우는 거 맞지? 인생계획 세우는 거 아니지?'
라고 놀리면 친구는 절대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곤 했어요.
암튼 그렇게 시간이 흘러 친구는 한국 여행을 가게 되었고 3주라는 긴 기간 동안 제주도까지 한국을 다 돌았습니다. 모든 장소엔 남편 친구가 함께 했어요. 단 제주도는 못 갔어요. 남편 친구는 무슨 포비아라나... 암튼 비행기를 못 타거든요. 그래서 제주도는 친구가 혼자 갔습니다.
한국 여행을 마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친구는 여행이 너무 좋았다며, 한국을 사랑하게 되었다며 저희 집에 놀러 와서 밤새 이야기했습니다. 남편 친구 집에도 가고 할머니, 부모님들도 다 뵙고 왔다네요.
한국 여행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물었더니 바로 찜질방이라고 답합니다. 찜질방은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했어요. 그리고 제주도, 그 좋은 제주도가 제일 별로였다고 하네요.
"No!! It's impossible! Jeju Island is so beautiful!!"
'말도 안 돼! 제주도가 얼마나 예쁜데!'
이라고 했더니, 친구 왈.
"No, there was not Gom, so I felt lonely so much "
'제주에는 곰이 없어서 외로웠어'
"what!!!"
'뭐라고?'
"And... he is coming here to see me next week."
'그리고, 그는 다음 주에 나 보러 여기 올 거야'
"Wwwwhat??"
'뭐??'
토끼 같은 제 영국 친구와, 곰 같은 남편의 한국 친구.
그 둘은 한국에서의 3주 동안, 아니 어쩌면 그전에 이미 사랑에 빠져버린 거죠.
"How long have you guys been together?"
'언제부터 사귄 거야?'
라고 물어봤어요.
그때 영국 친구의 대답은 제가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요.
"We fell in love at first sight, at the airport."
'우리는 공항에서 첫눈에 반했어.'
저는 친구가 들려주는 한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듣는 게 너무 재미있기만 했는데, 남편은 본인 친구의 사랑 이야기는 차마 오글거려서 못 들어주겠다며 듣기를 거부합니다.
토끼 양과 곰 군. 둘은 한국을 여행하는 동안도 저희와 자주 메시지를 주고받았는데 영국에 돌아와서 직접 얼굴 보고 말할 때까지 둘이 연인이 된 이야기는 감쪽 같이 숨긴 거죠.
그리고 남편의 친구.
무슨 공포증으로 평생 비행기를 타지 못했는데 이번에 첫 시도를 하게 됩니다. 본인 입으로도 이건 사랑의 힘이고, 기적이라며...(남편은 30년 지기의 이런 이야기 들을 때마다 자제하라며 여전히 손사래를..)
그렇게 영국으로 날아온 남편 친구.
그는 부모님께 저희 집에서 지낼 거라고 하고 왔지만, 그 친구가 영국에 있던 기간 동안 얼굴 본 건 몇 번 안 됩니다. 곰 군이 영국에 온 후로 저 마저 제 영국 친구를 못 보게 되었죠. 비자 때문에 남편 친구는 한국에 다시 들어갔다 나오기도 했었어요. 비행기 따위, 이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죠.
영국 토끼 양과 한국 곰 군.
둘은, 세상 행복한 시간을 보내더군요. 당시 저도 신혼이었지만 신혼과 연애는 또 천지차이죠.
처음 남편 친구가 영국에 왔을 때만 해도 제 남편이랑 영어실력이 고만고만했는데, 제 친구와 동거 몇 개 월 후 오랜만에 만났을 때 정말 놀랐어요. Listening이 눈에 띄게 확 달라졌더라고요.
하루는 영국 친구 집에서 친구 커플과 저희 부부가 가볍게 맥주를 마시며 스텐딩 코미디 티브이 프로를 같이 봤는데, 남편과 저만 알아듣지 못해서 웃지를 못하는 슬픈 상황이 너무 자꾸 여러 번 계속 끊임없이 반복되었어요.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진심을 담아 남편한테 사과했어요..
"자기야, 내가 영국 여자가 아니라서 so sorry 해." 라구요.
의도한 소개팅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둘이 연인이 되었으니 제목은 소개팅으로 써봅니다.
다음화는 '현지 친구'와 '현지 적응' 두 가지를 목표로 효과적인 방법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