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의 미 어쩌고, 공간의 미 저쩌고,

암소 엉덩이에 달라붙은 쇠파리처럼

by 최성철

부부싸움에 대한 이야기는 무수히 많다.

ET가 지구를 접수하든지, 아니면 법적으로 혼인신고 제도를 폐지하지 않는 한.

오늘도 생산, 재생산, 확대 재생산될 것이다.


결혼 초기에 음식점을 운영하는 친구로부터 넥타이 선물을 받은 적이 있었다.

같은 값이면 친구의 식당에서 직원들과 자주 식사를 하고 술을 마셨으니, 친구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넥타이를 선물한 것이다. 친구가 넥타이를 골랐는지, 아니면 친구의 아내가 골랐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나도 도움받은 일이 많았었는데 끝까지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싶어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었다.

문제는 집에서 일어났다.

잽싸게 선물 포장지를 뜯어본 아내가 넥타이를 보자 의아한 듯 말한다.


“어디서 난 거야”

“음식점을 운영하는 친구가 선물로 주네”

“하필 왜 넥타이야.”

“모르지, 뭐”

“넥타이 선물은 아무에게나 하는 게 아닌데!”


아내는 그 외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냈었다.

‘넥타이 선물은 아무에게나 하는 게 아닌데!”

이 말이 품은 깊은 뜻을 미처 몰랐다.

그러다 사소한 일로 아내와 말다툼이 벌어졌다.

인간의 상상력이 행복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파국으로 치달을 때도 있다.

느닷없이 석 달 전에 선물 받은 넥타이가 도마 위로 끌려왔다.

그 여자가 왜 넥타이 선물을 했는지 해명을 하란다.

갑자기 친구의 아내가 그 여자로, 넥타이가 특별한 관계로 변해 있었다.


“어떤 선물을 하든 하는 사람 마음이지, 만나는 사람마다 나한테 선물할 거면 강남 아파트 30평을 선물하라고 미리 말하는 사람 있나?”

“내가 사 준 넥타이는 매지도 않고 선물 받은 넥타이만 매일 매고 다니는 이유가 뭐냐?”

“그냥 아무거나 매고 다녔는데 당신 눈에 그 넥타이 맬 때만 유심히 봤을 뿐이다.”


넥타이 꼬리에서 시작한 작은 감정이 넥타이 머리까지 올라가 큰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방바닥에 엎드려 석고대죄 중인 넥타이 머리를 가위로 싹둑 잘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여자도, 넥타이의 특별한 관계도, 불편한 누명을 쓰고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서야 상황이 종료되었다.

선물을 선물로 보지 않고 포장지 속에 무슨 비밀스러운 언어라도 있는 것처럼 두 눈 부라리고 3개월을 찾아 헤맨 아내도 그렇고, 넥타이를 싹둑 자른 나도 그렇고, 지금 생각하면 씁쓰레한 웃음이 나온다.

과거사 진상 규명 위원회에서 넥타이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줄 날이 언젠가 올 것이라 믿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요즘 아내는 선물을 주면 내용 불문하고 무조건 받아 오라 한다.

미안하지만, 요즈음은 선물 주는 사람이 없어 내 선물을 내가 사야 할 현실인데.

백화점 넥타이 진열장에서 신중하게 넥타이 고르는 여성들을 보면 겁이 난다.

왜 하필 넥타이를 선물하려는 걸까.

넥(neck)은 목이고 타이(tie)는 매다 이다. 그 많은 물건 중에 목매는 선물을 왜 할까.

상대방의 목을 매 평생 도망가지 못하게 끌고 다니려 하는 건지.


또 한 번은 사진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직장에서는 사내 체육대회나 등산대회를 정기적으로 실시한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고 기념으로 단체 사진을 찍어 한 장씩 나누어 가진다.

각자 최고 멋진 모습을 남기려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자연스럽게 웃는 표정으로 찍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보이려고 경쟁적으로 노력한다.

활짝 웃고 있는 내 모습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 보이는 사진이 문제를 일으켰다.


“그 많은 여자 직원 중에 당신 옆에는 왜 저 여자만 매일 서 있느냐!”

“한 번은 왼쪽, 한 번은 오른쪽, 이것들이 의심을 피하려고 앞뒤로 서서도 찍었네!”

“내가 사진 찍자면 마지못해 찍으면서”


참, 할 말이 없습니다. 해석을 그렇게 하니 그럴듯해 보이기도 합니다.

세상 어느 산이든 경치 좋은 곳은 앞뒤 좌우로 천 길 낭떠러지 절벽입니다.

“그래 앞으로 직원들과 단체 사진 찍을 때는 앞뒤 좌우로 1m 이상 떨어져 찍을게! 게걸음으로 좌우 1m, 뒷걸음으로 1m, 이동하다 절벽으로 떨어져 죽어도 나는 모른다.”


요즈음은 산에 간다고 하면 아내가 신신당부합니다.

사진 찍을 때 앞뒤 좌우 잘 살피라고.

사진 찍고 싶은 마음도 없고 같이 찍자고 하는 사람도 없는데 말입니다.


아내가 사진 찍자고 하면 여백의 미 어쩌고, 공간의 미 저쩌고,

어쩌고 저쩌고 하지 말고 암소 엉덩이에 달라붙은 쇠파리처럼,

그냥 착 달라붙어 찍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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