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이중 스파이
아내는 고도로 훈련된 이중 스파이입니다.
적진 깊숙이 침투해 요인 납치 및 암살, 중요 시설물 파괴, 뛰어난 사교술로 적국의 기밀을 탐지해 자국에 보고 등이 주요 임무인데, 나머지는 모르겠고 적진 깊숙이 침투와 적국의 기밀탐지는 맞는 것 같다.
뛰어난 사교술로 이미 나에게 깊숙이 침투했고, 수입과 지출 내역, 나의 싸가지없는 행동을 탐지하는 임무는 충실히 수행 중이다. 자국(여기서는 편의상 처가라 하자)에 보고는 하지 않는 것으로 믿고 싶다.
아내의 자국에서 그 많은 돈을 투자해 피아 구분도 못하는 엉성한 스파이를 만들었을 리는 없고, 사회생활에서 누군가의 꾐에 빠져 잠시 방황 중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1차 세계대전 당시 이중 스파이로 활동한 ‘마타 하리’의 미모를 닮은 것은 아닙니다.
나를 전담하는 마크 맨, 아니면 엑스 맨 정도의 ‘맡아 하리’입니다.
나의 전의나 사기를 떨어뜨리는 마타도어 Matador가 전문입니다.
아내의 말을 빌리면, 나의 행동 표정 하나에 무슨 일이 있는지 정확하게 읽어낸다고 합니다.
(무슨 근거로 그런 유언비어를 퍼뜨리는지?)
그동안 가족을 위해 헌신과 희생으로 살아온 세월이 고마워, 내 행동이 약간 어색하기도 하지만 조금 살갑게 대해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평소 안 하던 행동에 의심을 품기 시작합니다.
‘무슨 잘못이 있으니까 저러지!’ 하는 상상력이 너무 앞서갑니다.
심리학 사회학 등을 전공한 범죄심리분석관인 프로파일러 Profiler의 날카로운 눈매로 나를 살핍니다.
반나절 동안 내 동선을 일일이 체크하고 난 후, 또 반나절을 혼자서 골똘히 생각에 잠깁니다.
나도 스파이와 살아온 세월이 있어 잔뜩 긴장합니다.
그러다 나를 부릅니다.
사자에게 잡혀 온 어린 영양처럼 다소곳이 앉은 내 표정을 살핍니다.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뜸 말합니다.
“당신 내게 숨기는 것 있지!” 그럴 땐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술값 십만 원을 신용카드로 긁어 언제 말해야 하나 눈치만 살피고 있었는데,
정 안되면 내 용돈으로 결제를 하면 된다는 생각을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이번 달 용돈 10만 원 삭감입니다.”
10만 원 삭감이 상대방에게 어떤 고통을 줄지, 돌려막기의 어려움을 알고는 있는지,
해명의 기회나 협상은 전혀 없습니다.
일방적인 통보만 있을 뿐입니다.
아내는 신들이 내게 보낸 스파이라 확신합니다.
죽을 때까지 아군인지 적군인지 이중 스파이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어쩌다 뼛속까지 철저한 아군이라고 나에게 자백할 때도 있습니다.
(몇 번 마음이 흔들려 중요한 정보를 넘겨주기도 했음)
강요에 의한 허위 자백은 아니지만 절대로 믿지 않습니다.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폭행·협박,,,,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에 의한 자백은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기에 ‘기망’ 즉, 나를 속이기 위한 자백이므로 나는 믿지 않습니다.
나에게 비밀 정보를 알아내려는 술책임을 여러 번 당해봐서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지고지순至高至純의 마음을 느낄 때,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보낸 스파이입니다.
사소한 일로 나의 모든 행동을 트집 잡아 위신과 체면을 깎아내릴 때, 결혼과 질투의 여신 ‘헤라’가 보낸 스파이입니다.
미와 사랑의 여신, 질투의 여신이 보낸 스파이와 살다 보니, 나도 나만의 신神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나약한 내 마음을 꿰뚫어 본 신께서 자연스럽게 강림하셨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열렬히 따르는 광신도가 되었습니다.
“오! 나의 신 디오니소스!”
“오늘도 빈 잔에 술을 가득 채워 당신을 영원히 경배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