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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철 Aug 24. 2020

산맥이 그리움의 끝자락에

느낌표로 찍어 놓은 초가집 한 채

해마다 10월 초부터 11월 중순까지 약 한 달간 단풍놀이가 시작된다.

옛사람들은 근교의 명산이나 계곡을 찾아 시를 짓고, 노래를 하고, 화전 꽃전이라 부르는 반죽한 찹쌀가루에 진달래나 국화 꽃잎을 얹어지진 예쁜 꽃떡을 먹었다고 전해진다.

전해진다는 것은 주로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는 것이다.

기록은 언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 시대 지배계급의 전유물이고 시를 짓는 것도 역시 그렇다.

반죽한 찹쌀가루가 있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극소수의 계층만 해당될 것이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국내의 단풍놀이가 아니라 외국의 단풍 구경도 누구나 할 수 있다.     


또,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는 관리들도 단풍 휴가를 받았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관리는 삼정승과 육조판서들인지, 아니면 육의전 시장 뒷골목에서 육모방망이 휘두르며 소매치기 잡으러 다니는 비정규직 포졸 보조원이나,  정규직을 꿈꾸는 인턴도 포함되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절정기가 되면 관광버스는 성수기를 맞이한다. 

출발 시간이 거의 비슷하고 첫 휴게소 도착 시간도 비슷해 휴게소 화장실에는 때아닌 줄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단풍 전사 아저씨 아줌마들의 얼굴은 이미 단풍이 물들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트롯 메들리를 틀어놓고 온몸을 흔든다. 보급 투쟁에서 돌아온 지리산 빨치산의 무사귀환 자축연을 보는 듯하다.

이들이 국가의 권력으로부터 아니, 일상의 책임감에서 벗어나 해방구를 찾아가는 전사들이다. 


이렇듯, 단풍놀이 내용은 많이 변했지만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누가 만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설악에서 한라까지 전국 명산의 첫 단풍 일과 절정기를 상세하게  알려주는 단풍지도가 있다. 북한 지역의 명산들이 빠져있는 것이 못내 가슴 아픈 일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기록되고 자유 왕래가 가능하리라 기대해 본다.     


단풍은, 북녘의 소식을 남녘에 전하는 편지입니다. 

그 편지 다 읽을 때쯤이면 눈물로 떨어집니다.     


단풍은, 지난 사랑을 생각하게 합니다. 

가슴속에 숨겨 둔 그 사랑 말입니다.     


단풍은,  아랫마을 신방으로 다급하게 달려오는

연지 곤지 버선발의 산마루 새색시다.    


생물학적으로 단풍은 나무가 엽록소 생산을 중단하는 것이라 합니다. 

공장이 더 좋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일정 기간 생산라인을 멈춥니다. 

멈추기 전, 이 해가 다 가기 전, 자신을 태워 마지막 선물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단풍은

곧 닥쳐올 추위를 알면서도 

화급한 시간이 불을 짊어지고 뛰어든다. 

마침내, 마지막 한 잎까지 미련 없이 태워 

헐벗은 채로 또, 추위와 맞선다.    


산자락 초가집 마루에 걸터앉아

마을로 내려오는 붉은 노을과 단풍을 바라본다. 

이 빈 초가집은 무슨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 

오늘은, 노을도 단풍도 나도 

여기, 잠을 청해야겠네.     


오색의 눈물이 출렁거리며

산을 덧칠하고 마을로 내려온다.

산맥이 그리움의 끝자락에

느낌표로 찍어 놓은 초가집 한 채

잠 못 이룬 밤의 길이만큼 기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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