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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에서

51. 짐

by 걍보리

아이에게 어린이집 이름이 적힌 작은 가방을 매 주었다. 돌이 지나고 걷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안 된 아이지만 자기가 져야 할 짐을 졌다. 아장아장 걷는 발에는 신발을 신겼다. 신발이 어색한지 자꾸 신발을 만지려 한다. 아직은 엄마 품이 더 자연스러운 시기다.

누구나 자기 짐을 지고 간다. 짐 중의 짐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늘 무얼 먹고 어떤 것을 입으며 무슨 일을 하고 어디서 잠잘 것인지를 생각하며 산다. 생각 없이 산다고 해서 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그것도 일종의 짐이다.

마땅히 져야 할 짐을 스스로 지는 사람은 어른이다. 나이를 먹었어도 져야 할 짐을 지려 하지 않는 사람은 미숙한 사람이다. 나는 아직 미숙한 사람이다. 집안일에 서툴다. 아내는 종종 나를 타박한다. 먹고 입고 자는 데 손이 많이 간다고. 때로 나는 아내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선 나이 든 아이 같다.

짐에는 무게가 있다. 무겁기도 하고 가볍기도 하다. 짐의 무게는 짐을 다룰 수 있는 힘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무게의 짐도 힘이 센 사람에게는 가볍다. 대개 사람들은 강한 힘을 갖고 싶어 한다. 힘이 좋아 더 큰 짐을 지는 사람에게는 세상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주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많은 보상(報償)이 부러워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큰 짐을 지려 한다. 욕심이 지나치면 짐에 눌려 사고(事故)가 난다. 나는 힘이 약하다. 나는 내 능력을 벗어나는 일에 눈길을 주지 않음으로써 사고를 피한다. 단순 소박 절제로 나를 보호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지닌 힘에 비해 너무 가벼운 짐을 진다. 긴장감이 없으면 느슨해진다. 느슨한 삶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편하지만 재미가 없을 수 있다. 나의 경우, 직장에서 은퇴한 뒤로 직접 감당해야 할 짐이 줄어들었다. 그만큼 활력도 줄었다. 친구들도 만나고 여행도 하고 동호회 활동도 해 보지만 팽팽한 활시위에서 느낄 수 있는 생생한 맛을 느끼기가 어렵다.

짐의 무게는 짐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똑같은 짐이어도 짐을 회피(回避)하는 사람에게는 무겁게, 기꺼이 지려는 사람에게는 가볍게 느껴진다. 짐을 회피하는 사람은 짐을 남에게 떠넘긴다. 짐을 자기 것이 아닌 남의 것으로 만든다. 뭐든지 자기 탓이 아닌 남 탓으로 돌린다. 남 탓하기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비난(非難)과 원망(怨望)과 분노(忿怒)의 언어가 가득하다. 너는 무얼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아무 짐도 지지 않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다.

대개 자신이 지는 짐은 자신의 존재 이유가 된다. 짐을 회피하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이유를 부정(否定)하는 사람이다. 부모는 자녀라는 짐을 지는데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다. 자녀를 기르면서 부모가 된다. 자녀라는 짐을 거부하는 자가 어떻게 부모가 될 수 있겠는가? 짐을 거부하는 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짐을 진 사람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다. 무엇을 하면서 그렇게 존재하는 사람이다. 기꺼이 짐을 진 사람의 마음에는 자기긍정(自己肯定)과 자기반성(自己反省)의 밝음이 가득하다. 그는 좋은 결과도 나쁜 결과도 자기 탓으로 한다. 어제를 딛고 오늘을 살며 내일로 나아간다. 나는 가능하면 어떤 일의 결과를 내 탓으로 돌리려고 애쓴다. 힘이 세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회피하지 않고 짐을 기꺼이 지는 만큼 더 자유로워진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짐을 지면 도리어 더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진다는 점에서 삶은 역설적이다. 삶의 역설을 눈치채면서 삶에 대한 나의 견해는 바뀌었다. 예전에는 삶이 힘든 이유가 부모 탓이고 세상 탓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내 탓이라고 생각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내게 벌어진 일은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 아니겠는가?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선택하지 않았어도 어차피 내가 져야 할 짐이라면, 차라리 내가 선택한 것처럼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하지 않겠는가?

짐은 기꺼이 지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지기도 한다. 때로는 짐을 강요받기도 한다. 사는 동안은 그 누구도 짐을 피하지 못한다. 짐에는 희로애락이 스며든다. 어떤 짐을 어떻게 지느냐에 따라 마음에는 꽃이 피고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지고 눈이 내린다. 살면서 즐거운 일이 많고 괴로운 일이 적기를 바라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일은 아무도 피할 수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온전히 떠맡아야 할 짐들이다. 본디 삶 자체가 짐이다. 빚이다. 때가 되면 다 돌려주어야 한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짐스러운 시간이 꼭 고통스럽거나 무의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많은 경우 힘든 시절이 도리어 내 삶에 어떤 색깔을 덧입혀 주었다. 독특한 맛과 냄새를 더해주었다. 세상살이가 정말로 싫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곡절 속에서도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산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경우에도 살고 싶어 하는 생명 본연의 지독한 열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무거운 짐일지라도 내가 지고 가야 할 짐이라면 기꺼이 지고 가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짐이 가볍기를, 일상이 즐겁고 편하고 보람차기를 원한다. 삶이라는 짐이 지나치게 무겁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연약한 내가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소망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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