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사람은 이야기다
사람은 이야기다.
한 사람은 한 편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탄생에서 시작하여 죽음에서 완성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다.
자신이 이야기의 주인공임을 알아차리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다.
알아차리지 못하면 자기 존엄을 지키기 어렵다.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하여 삶이라는 짐을 벗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역할을 피하려 하면 할수록 이야기는 무거워지고 삶은 짐이 된다.
기꺼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때 이야기는 이야기다워지고, 삶은 짐이 아닌 소꿉놀이가 된다.
이야기에는 자기 혼자 등장하지 않는다.
부모 형제 자식 이웃이 이야기에 동참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며 다른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 세상에 초대된 손님이다.
이야기는 나와 남의 관계로 엮어진다.
이야기는 곧 관계이며, 관계가 곧 이야기다. 관계가 희미해지면 이야기도 희미해진다.
양파 껍질이 모여 양파가 되듯이, 관계의 망이 엮여 이야기가 된다.
관계의 모양과 색깔은 이야기의 모양과 색깔을 결정한다.
자신의 삶이 어떤지 알고 싶으면 관계의 모양과 색깔을 보면 된다.
어떤 사람은 자기 이야기의 모양과 색깔을 바르게 알고 어떤 사람은 알지 못한다.
어떤 이야기는 재미있고 어떤 이야기는 재미없다. 어떤 이야기는 혐오스럽고 어떤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산 이야기를 안다는 것이다.
자기 이야기를 가장 먼저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지만, 그 이야기를 읽지도 않고 이해도 못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갈등은 이야기들의 갈등이다.
개인 사이의 갈등만이 아니라 민족 간, 종교 간, 정치 집단 간 갈등도 이야기의 갈등이다.
자신이 쓰려는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가 부딪히고, 화해의 길이 안 보일 때 삶은 고단해진다.
사람마다 이야기의 주제가 다르고, 다루는 소재의 비중이 다르다.
종교, 정치, 경제, 여행, 연애, 환경, 예술 중 어디에 더 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다양해진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안다는 것은 그가 살아온 또 살아갈 이야기의 주제와 소재를 안다는 것이다.
사람은 이야기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엮어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