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홀로 1
1.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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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하늘을 이고 앞을 보며 땅을 딛고 산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주어진 제한된 시간을 여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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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길 위에서 길을 잃는다. 목표와 방향을 잃은 마음은 한낮에도 혼돈과 어둠에 빠진다.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해답을 얻지 못하면 막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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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왜 여기에 이렇게 있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는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 이유를 찾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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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내가 지금 여기에 이렇게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친숙하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진다. 주변 사람과 사물들이 새롭게 보인다.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것이 신비롭게 보인다. 모든 것이 없지 않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다. 문득 삶이란 무엇인지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1. 삶을 이해하는 여러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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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라는 말이 있다. Human(인간)이라는 말도 humus(흙)에서 유래한다. 우리는 땅에서 자란 온갖 것을 먹고 산다. 사람이 먹는 음식은 직접 간접으로 흙에서 온 것들이다.
사람은 죽으면 한 줌 흙으로 소멸한다. 무덤은 그것을 보여 준다. 사람의 몸은 흙과 같은 물질성을 가지고 있다.
궁금하다. 사람을 흙과 같은 물질로만 이해할 수 있을까? 흙을 통하여 내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사람은 살고 죽지만 흙은 살고 죽지 않는다. 흙에는 생로병사가 없다. 비록 몸의 구성 성분은 흙에서 왔지만 몸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다. 마음을 물질로 환원할 수 없다. 몸은 물질성과 정신성을 동시에 가진 물질 정신이다. 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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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생물이기도 하다. 사람의 일생은 수정란에서 시작하여 심장의 정지에서 끝난다고 볼 수 있다. 때로는 삶을 ‘호흡의 시작에서 호흡의 정지까지’라고 할 수도 있다. 한 생명으로서의 사람의 몸과 마음은 수억 년의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다. 삶은 생태계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사람은 쾌락과 통증(pain)에 반응한다. 나는 생물이자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만으로는 내가 누구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내가 생물이자 동물이라는 면을 아는 것만으로는 나의 고유한 정체성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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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부모를 통해서 세상에 나왔다고 할 수 있다.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난 사람은 없다. 누구나 부모의 힘으로 태어난다. 아이는 가족들의 사랑 속에서 자란다. 자라면서 다양한 사회를 경험한다. 사람이란 사회의 구성원으로 입장하였다가 퇴장하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나’라는 개인은 늘 사회구성원 중 한 사람으로 산다. ‘우리’라는 관계를 떠난 ‘나’는 없다. ‘우리’를 떠난 ‘나’는‘우리’의 특별한 상황이다. 나는 언제나 ‘관계 속의 나’다. 엄마의 아들이고 아빠의 딸이다. 선생님의 제자이고 동생의 형이다.
나는 근원적으로 홀로 있어 본 적이 없다. 늘 누군가와 이런저런 관계를 맺고 만나면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를 통해서 ‘나’가 누구인지 온전히 알 수 있을까? 내가 누군가의 아빠라는 사실만으로 내가 누구인지 밝혔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인간관계만으로는 나의 개성과 정체성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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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을 살며 언젠가는 죽는다. 사회나 인간이 죽는 것이 아니라 ‘나’가 죽는다. 나의 죽음은 나만의 죽음이다.
나는 늘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산다. 내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나 자신에게 묻고 스스로 답하면서 산다. 어떤 사람이 혹은 어떤 위인이 내게 사는 이유와 방식을 이야기할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나는 나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 답을 해야 한다.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사는 존재인지를 스스로 찾고 만들고 규정해야 한다.
나는 늘 내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를 만나는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어떤 옷차림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먹고 마시는가?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의 말과 행동의 이유를 묻지 않는 삶은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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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단순한 물질 이상의, 하나의 생물 이상의, 한 명의 사회구성원 이상의 그 어떤 존재이다. 몸의 구성성분이 무엇인지, 신체 기관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사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그의 무의식적인 욕구와 그의 행위 동기와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알아야 그가 누구인지 이해할 수 있다.
(그림은 ChatGPT로 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