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홀로 5
1. 나의 생명력을 느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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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명력을 느껴 보자. 놀랍게도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토대 삼아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구성하는 능력을 타고났다. 예를 들어 보자. 시계로 1시에서 3시 사이는 2시간의 시계시간이다.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그러나 연인들에게는 짧게 느껴지고, 작업자에게는 길게 느껴질 수 있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같은 골목길이어도 미숙한 운전자에게는 좁게 느껴지고, 숙련된 운전자에게는 넓게 보일 수 있다. 시계로 측정하고 자로 재는 위상(位相)적 시공간과 마음으로 구성하는 현상(現象)적 시공간은 성격이 다른 것이다. 사람에 따라 같은 자연현상도 다르게 나타나 보이고, 동일한 사회현상도 이해나 해석이 달라진다.
한 개인도 나이와 상황에 따라서 시간과 공간을 다르게 구성한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시공간을 구성한다는 말은 사람마다 고유한 삶을 영위하고 자신만의 세상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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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상상의 세계에서 산다. 가족 민족 민주주의 자유 학교 국가 신 기업 법률 관습, 이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상상의 산물이다. 이것들을 눈으로 보거나 만질 수는 없다. 이것들은 상호주관적 실재이자 의미망이다. 이런 관념들에는 적절한 이해와 오해가 얽혀있다. 그것들의 의미도 시간과 맥락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어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상황에 따라서는 바꿀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의미망 체계에 매이지 않고 이를 반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자유롭다. 이런 관념들을 마치 변치 않는 자연법칙처럼 대하는 사람은 관념의 노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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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마음으로 존재한다. 내 마음이 곧 내가 사는 세상이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가 나의 행과 불행을 규정한다. 행과 불행을 만드는 주요한 마음 상태는 사랑의 존재 여부다.
사랑은 마음의 꽃이다. 사랑은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근원적으로 나와 너 이전에 '우리'(공동운명체)였음을 자각하고, 너의 안녕과 행복을 도모하려는 마음이 사랑이다. 나와 '나 이외의 것'(이웃, 나무, 우주)의 어울림을 도모하려는 태도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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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존재가 될까? 누구에게나 자신의 항상적인 관심사는 자기 자신이다. 자기가 사는 세상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까? 자신에게 주어진 이런저런 인연을 가꾸고 보살피는 존재가 되는 길은 좋은 선택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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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속에서 나를 불러 세우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 소리는 나를 내려놓을 때 더 잘 들린다. 내면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길이다. 나의 존엄에 대한 자각과 나에 대한 사랑은 온갖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가는 길이다.
1. 생명을 살리는 일은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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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는 일은 좋은 일이다. 선(善)이다. 생명을 괴롭히는 일은 나쁜 일이다. 불선(不善)이다. 선을 지향하지 않으면 불선으로 추락한다. 능동적으로 인간과 생명과 자연을 사랑하지 않으면, 상호 협력과 조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저급한 본능과 사악한 권위, 집단적 광기의 노예가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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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를 융합하려는 강한 열망은 가족 사회 인류를 결합시키는 힘이다. 이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발광하거나 파괴적이 된다. 소외는 고통스럽고 두려운 것이다.
사람은 소외(疏外)를 극복하기 위하여 퇴행(退行)적 결합을 하기도 한다. 고독과 불안을 극복하기 위하여 동물이나 자연을 숭배하기도 하고, 자연과의 원초적 결합을 시도하기도 한다. 때로는 표준화된 사회체제에 맹목적으로 순응하여 개성을 잃기도 한다. 스스로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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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특정 신앙의 광신도(狂信徒)가 된다. 이런 결합에서는 수동적으로 자아를 잃기도 하고, 능동적으로 자아를 포기하기도 한다. 이처럼 스스로 자아를 포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자발적인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갈 길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권위 있는 자가 제시하는 길을 맹목적으로 따르기 때문이다. 삶이라는 짐을 기꺼이 지려는 사람만이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자유인으로 살고 싶으면 설령 당신 곁에 뛰어난 지도자가 있을지라도 존경하되 숭배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