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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홀로

더불어 홀로 6

by 걍보리

1. 참 사랑과 거짓 사랑


참 사랑은 서로 아끼고 존중하는 자유인들의 사랑이다. 거짓 사랑은 지배 종속 관계를 참 사랑으로 착각한 것이거나 참 사랑인 것처럼 위장한 것이다. 참 사랑은 성숙한 인격적 만남이고, 거짓 사랑은 의존과 집착의 관계이다. 거짓 사랑에는 피학대 음란증과 가학성 음란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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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학대 음란증(masochism)은 어떤 사람의 일부가 됨으로써 고립감과 분리감에서 도피하려는 태도다. 자율성도 책임감도 없이 결합 대상의 일부가 됨으로써, 자발적으로 노예가 됨으로써, 소외와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이런 태도는 가해자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피해자로 살면서도 가해자를 떠나지 못하거나 도리어 매달리는 사람에게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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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학성 음란증(sadism)은 다른 사람을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서 자기를 과장하고 강화하여 소외에서 벗어나려는 태도다. 강압적 지배자는 피지배자를 노예 상태에 둠으로써 외로움을 해결하려 한다. 지배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피지배자의 거부와 독립하려는 태도다. 지배자는 설득과 압박을 통하여 피지배자의 자존감을 빼앗고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하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통하여 지배력을 유지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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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와 종속 관계는 미성숙한 의존적 관계의 전형이다. 피지배자는 지배자에게 의존함으로써, 지배자는 복종하는 자에게 의존함으로써, 둘 모두 독립하지 못한 상태이다. 외로움과 소외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런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지속하는 둘 사이에는 힘의 논리가 작용한다.

힘의 논리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만 있다. 약자를 지배하는 자도 강자를 만나면 스스로 피지배자가 되고, 강자에게 지배당하는 자도 약자를 만나면 지배자 역할을 하려 한다. 힘을 숭상하는 사람에게서 자유인 대 자유인의 인격적인 만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1. 참 사랑은 자유인들의 사랑이다.


참 사랑은 자유인들의 사랑이고 성숙한 사람들의 사랑이다. 참 사랑은 각자의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합일로서 사랑이다. 참 사랑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과 통합성을 잃지 않은 채 상대방과 교류한다. 공자는 이를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이라고 표현하였다. 서로 다르면서도 잘 어울리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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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름은 매력의 원천이다.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그리워하는 주요 이유는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르기에 완벽하게 일치할 수도 없고 공감할 수도 없다는 한계가 도리어 매력을 만든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이 모르는 영역이 넓어지듯이, 사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자신의 사랑이 불완전하고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불완전한 사랑에 대한 자각은 도리어 진실한 사랑의 증거이기도 하다.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은 크고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사랑은 작은 사랑이고, 나의 너에 대한 사랑은 늘 가난하다고 미안해하는 사람의 사랑은 큰 사랑이다.

사랑에 있어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하나가 되기 위해 사랑하면 할수록 각자의 개성이 더 도드라지는 것이 참 사랑이다. 이런 모습을 불일불이(不一不二)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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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가까이. 아름다운 만남은 두 자유인의 인격적인 만남이다. 칼릴 지브란은 "같이 서 있되 너무 가까이 서지 말라. 성전의 두 기둥은 서로 떨어져 있으며 전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 자랄 수 없다."라고 하였다. 성숙한 사랑의 관계는 따로 있으면서도 가까움을 잃지 않는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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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사랑은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이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나 관념이 아니다. 내게 있는 힘을 상대방에게 주는 행위이다. 사랑 부자는 사랑을 많이 주는 사람이다. 진정한 부자는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많이 주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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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주는 행위이다. 엄마는 자신을 아이에게 주려한다. 엄마는 아이에게 젖을 주지 않으면 고통스럽다. 엄마는 아이에게 받기 위해 주는 것이 아니다. 주는 행위 자체에서 기쁨을 느낀다.

사랑은 거래가 아니다. 사랑 속에서는 ‘건네주기’도 하고 ‘받아주기’도 한다. 잘 건네주는 것처럼 잘 받아주는 것도 훌륭한 능력이다. 잘 받아주는 것은 거부하지 않는 마음이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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