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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보리 Aug 02. 2023

숲길에서

3. 덤

  덤은 제 값어치 외에 거저로 조금 더 얹어 주는 일이다. 편의점에서 두 개를 사면 한 개를 더 주는 2+1 제품 앞이나, 세일을 크게 하는 옷들이 많은 진열대 앞에서 서성거리는 것은 본래 가치 외에 공으로 더 얻어 보려는 속셈이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팔려는 사람은 사려는 사람의 그런 속셈을 거꾸로 이용하여 거저로 덤을 주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룬다. 

  지금 내 나이가 수십 세라는 것은 수십 년 전에는 내가 없었다는 뜻이다. 본디 내게는 시간도 없었다. 그 어떤 사연도 없는 무(無)였다. 천지가 부모를 통하여 내게 사람 몸을 주고 시간을 선물한 것이다. 본래무(本來無)에서 사람 몸을 받아 이런저런 세상을 산 것 자체가 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덤은 안 주어져도 그만인 것이다. 내 삶도 덤인 만큼 주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쩌다 주어진 것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 하늘에 설레고 노래에 취하고 발바닥으로 모래를 느끼는 것은 참으로 기막힌 사건이다. 그런데도 그 기쁨을 쉽게 잊어버린다. 삶이 덤이란 걸 망각한 탓이다. 그럼 지금 이 순간이 어마어마한 선물로 또는 덤으로 주어졌다는 진실을 눈치챌 수 있는 기회는 언제 오는 것일까?

  절벽에 서서 호기심으로 고개를 내밀어 아래쪽을 내려다보다, 아차 하는 순간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가슴을 떨면서 뒤로 물러선 뒤.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발끝의 모래가 무너지고 갑자기 차가운 물살이 발목을 먼바다 쪽으로 끌어가는 것 같은 섬뜩함에 허둥대다가 가까스로 헤엄쳐 나온 뒤. 도로에서 커다란 덤프트럭이 내가 탄 차를 짓뭉갤 것처럼 굉음을 내며 지나간 뒤. 며칠 동안 열병에 시달리다가 땀을 흘리며 회복된 뒤. 어디 이것들뿐이겠는가?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삶이 바닥으로 추락했다는 절망 속에서, 몸과 마음의 고단함 속에서, 공허와 권태에 시달리면서, 외로움 속에서, 무력감에 괴로워하면서 역설적으로 주어진 삶이 덤이라는 것을, 지금 이 순간이 기쁘고 감사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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