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지막 준비운동 5분
마지막 경기를 기억한다. 고2였다. 흙먼지 나던 맨땅이었다. 축구화 뽕이 반쯤 닳은, 늘 한결 같이 신어왔던 아디다스의 문디알 축구화. 당시 우리 학교는 3학년 선수들이 부족했고, 2학년들이 3학년 경기를 뛰던 상황이었다. 시합 몇 주전부터 다친 발목 때문에 도저히 뛰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전반 15분 만에 같은 포지션을 뛰던 선배가 다쳤다. 감독님은 내가 뛰길 강요했다. 부러진 것도 아닌데, 뛸 수 있지 않냐고 화를 냈다.
결국 몇 알의 진통제를 삼키고, 5분 정도 몸을 풀고, 경기를 뛰었다. 한 걸음. 볼 한번 찰 때마다 머리까지 저릿하는 통증이 밀려왔으나, 무식하게 참았다. 후반전 무렵에는 통증 때문에 입술을 하도 깨물어 입술에서, 비릿한 피가 흘렀다. 경기는 이겼으나, 그날 이후부터 반복되는 발목과 허리. 거기에 무릎까지 부상이 재발했다. 이후, 재활과 부상을 반복하게 되었고 결국 고3에는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그날, 마지막 준비운동 5분 몸을 풀고 뛰었던 그 경기가 내 선수생활의 마지막 시합이 되었다. 언젠가 네가 물었다.
"그날 경기 뛰지 않았다면 넌 계속 선수 생활을 했을까?"
"글쎄. 몸 관리를 조금이라도 했다면, 그날이 마지막은 아니었겠지."
2. 그래서 책상에 언제 앉을 건데?
글 쓰는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책상에 앉기까지 얼마나 몸부림치는지, 마감 시간을 앞두고 밤새 좀비처럼 원고를 작성하며, 미련한 후회를 반복한다. '아, 어제 그 재미도 없는 영화를 왜 꾸역꾸역 봤을까?' 누군 글쓰기까지 온 집안 청소를 하곤 한다. 나 역시 이상하게 글이 안 풀리면 집안 청소에 심지어 책상의 위치까지 바꾼다. 굳이 할 필요도 없는 그릇을 꺼내 씻는다. 그렇게 책상에 앉아서도, 유튜브에 온갖 뉴스를 클릭한다.
누군 미루는 습관이라고 하곤, 누군 글쓰기까지 걸리는 준비운동이라곤 한다. 그렇다면 나는 글쓰기까지 거의 3시간 정도가 걸리는 셈이다. 심지어는 6시간 동안 딴짓을 하다가, 각색 대본의 구성안을 시작한 적도 있다.
원고 마감 하루를 앞두고, 오타 투성의 초고 대본을 넘기고 하루 종일 후회하곤 했다. 매번 미련한 습관을 반복하면서도 좀처럼 고쳐지진 않고 있다. 이런 습관에 대해서 너에게 말하자 너는 의아해했다.
"난 잘 모르겠는데, 너가 너무 부담 갖고 글 쓰려는 거 아니야?"
"그러네. 우리도 너무 부담 가는 시합은 뛰기 싫었잖아. 그런 건가?"
하긴, 라이벌 학교와 시합을 하게 되면, 경기 며칠 전부터 감독님부터 학부모들까지 엄청나게 선수들에게 부담을 줬던 경우가 있었다. 그런 경기는 이기고 싶은 승부욕. 한편으론 도피하고 싶은 감정도 있었다.
"글쓰기가 시합도 아니고, 뭔 부담을 가져. 그냥 써."
너의 그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되었다. 물론 아직도 글을 쓰기까지 참 많은 시간을 몸부림친다. 하지만 최대한 준비운동시간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내가 쓰는 글에 부담을 내려놓자 책상에 앉는 시간이 빨라졌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시작했던 나의 축구선수 경력이 마지막 5분간 몸을 풀었던 그 경기에서 끝났다. 10년간 내 삶의 목표가 사라진 결정적 시간이 단 5분이었다. 그날, 준비운동을 하면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내 몸상태에 대해서, 말하고, 뛰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너와 같이 선수생활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삶의 반전은 그렇게 짧은 5분간의 시간에도 갈리는 법이다. 한 페이지의 글을 쓰기 위해 몇 시간을 몸부림치며 책상에 앉길 두려워하는 사람은 나뿐만은 아니다. 언젠가 또 글을 쓰기 싫어 미적거리던 나에게 네가 전화로 말했다.
"야. 준비운동도 길어지면 지쳐. 무슨 인생 대작을 쓰겠다고..."
맞다. 내가 무슨 인생의 대작을 쓰겠다고, 한 문장 쓰길 두려워하는 걸까? 내가, 너에게 보여주기 전까진 나의 글은 그저 홀로 끄적인 낙서일 뿐이다. 그러자 글쓰기가 조금은 만만(?)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