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신을 믿으시냐, 라는 그 질문에 대한
옅은 빛, 하지만 필히 따스한 빛. 활자들이 반짝이며 손바닥을 뒹군다. 여기저기, 하염없이 뒹군다. 시퍼런 청춘도 허옇게 질려버릴 입김을 후 후 불며. 샛노란 은행잎을 아른거리며. 기이하게 짜여진 세상 속에서, 감히 필연으로 엮여 대차게 버티다. 하염없이 세상 아래서 무너지겠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사랑하며 살아가는거야.
우리의 생이 다 하는 날, 혼이 어디를 둥 둥 떠다니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한 번 뿐인 이 지구에서 대차게 사랑하며 살아가는거야. 저 너머로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한낱 인간인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하염없이 지키며 살아가는거야.
옳고 그름은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몰라. 사랑과 정의 또한 알량한 낭만에 그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것 따위 중요하지 않아. 그저 볕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 그러니 우리는 기어이 낭만을 쫓으며 살아갈 것이라. 설령 그것이 바보같은 짓이라 여겨져도.
언젠가 우리 육신의 숨이 꺼질테야. 그러면 더이상 목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시선도 없고.
그래도 우리의 찰나는 영원하리라. 사랑이 기록된 시간은 영원히 생동할테니. 우리의 인생은 덧 없지 않아. 지금 우리의 호흡이 이리도 생생하니. 설령 저 너머에 아무것도 없다 할지언정.
당신은 운명을 믿는가.
기구함마저 운명이라면, 그것 또한 뜻이 있다 하면, 당신은 어떻게 절대자에게 답할 것인가.
여전히 저 하늘은 입을 열지 않는다. 내 발바닥은 땅바닥에 철썩같이 붙어 있고. 하얀 부스러기들은 까만 밤 아래서 붕 떠 빙 빙 돈다. 수 많은 행성 중 하필 이 지구에서 태어나, 이 육신과 혼을 잠깐 빌려, 감정 놀음도 찌걱이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모두 운명이라 함은, 당신이 내게 무언가를 묻고 있다는 것이겠지. 아직도 나는 어리석어 답을 찾지 못했지만.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그럼에도 기어이 살아갈 것이라는 것. 당신이 나를 살게 한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그 이유는 내가 찾아보리라. 길도 잃고, 방랑하고, 영원한 청춘 속에서 낭만과 사랑을 쫓으며 앙감질 할테야. 혼이 정착한 이 행성에서, 주어진 한을 다 풀어내기 위해.
그때 당신은 무어라 답을 할까,
이 글을 읽는 어느 누군가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