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으로 연결되어 있을까요?
제 매거진으로 바꾼 후 첫번째 연재글입니다.
저는 편입생입니다. 스물다섯에 대학을 다시 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신입생으로 입학한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학교 그리고 전공을 스물다섯에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에는 막연하게 '나이 스물다섯 쯤 되면 어디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요. 도로 학생이 되어버렸군요.
화요일, 금요일마다 대학 동기들과 끼니를 함께 합니다. 학식을 먹기도 하고, 햄버거를 사 명수당으로 나가 피크닉을 즐기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그들에게 제 다이어리를 하나 꺼내어 펼쳐 보이는데요.
-당신의 흔적을 남겨주세요-
손글씨에는 그 시절 그 사람의 필체가 날 것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그 필체에는 그 찰나에 머무르던 그 사람의 감정과 시선이 꾹 꾹 눌려 남겨 있고요. 사실 인간의 역사는 수기를 통해 처음 기록되었습니다. 허연 종이 위에 까만 흑연을 갉아 넣어 봅니다. 다이어리를 몇 번 닫았다 펴보니 흑연이 옅에 번져 있습니다. 제 역사 안에 그들이 발을 하나 들입니다.
한 번 머무르는 지구에서, 어쩌다 마주친 연 안에서. 우리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또 시간을 함께 켜켜이 쌓아 봅니다.
대화
상 하나 차린 후 시선을 마주합니다. 이제 우리는 시간에게 제물을 하나 올릴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연극 하나만 하면 됩니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때에는 연극이란 일련의 신에게 올리는 제물과 같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꾸리는 시간 안에서 절대자는 '나', 문장 몇마디 내뱉으면 그것이 '나의 세계'의 이치가 되어버립니다.
우리 끼니 하나 함께합시다.
식사를 매개로 우리 연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제 스물다섯의 역사입니다.
스물다섯 봄의 역사
저 후추 보이시나요?
어느 누군가는 후추를 스프보다 더 왕창 뿌리기도 하더군요. 뭐 아무렴... 그럴 수 있습니다. 덕분에 신나게 깔깔 웃었습니다.
돈까스가 학식으로 나왔던 날인데
나름 맛있게 먹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기숙사 식당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고구마 맛탕을 좋아해 북촌 골목길도 자주 다니는데요. (북촌에 위치한 '왕짱구 식당'을 아시나요?)
아마 맛있다고 친구 맛탕도 한 입 가져갔었나 그랬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니 이 기억도 가물가물...
기숙사 식당은 재배식이 되어 good!
편입 동기들과 함께 명수당에서 치킨 신나게 뜯어 먹은 날입니다.
제가 편입하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봄' 중 하루인 날인데요..!
고등학생 때 이후로 이런 피크닉이 오랜만이라 들떴던 기억이 나네요.
아, 치킨은 22년도에 청상 서포터즈 친구들과 열심히 뜯었었네요! 생맥주 한 잔 하면서...
아무튼 새로운 학교 이야기, 학창 시절 이야기, 연애 이야기 등 별 거 없는 이야기들로 시시콜콜하게 떠들며 즐거웠던 기억이 저 치킨 한 조각에 있네요.
같이 수업을 듣는 타과 이중전공생 친구와 함께 첫끼를 한 역사적인 날입니다..!!
같이 벚꽃 사진을 찍자며 만났던 날이었어요.
비가 올 줄 알고 칙칙한 벚꽃이 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날이 화창해 꽃 보는 맛이 있었던 기억이 있네요. 저희 학교 벚꽃 참 예뻐 잠깐 즐거웠습니다.
제 스물다섯 여름을 채운 스터디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봐도 되겠군요.
여기까지 한 오월인가에 적어뒀던 것 같은데, 퍽이나 바쁘게 살다보니
이제 하짓날도 지나 곧 칠월인 지금서야 올립니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알바,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공부, 새로운, 새로운
새로운, ...
적응기가 제법 길었습니다.
1학기 버티며 실은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기력이 약해지니 사람 성격도 예민하게 변합니다. 이 말이 제게도 해당될 줄은 몰랐는데요. 제 감정의 기복이 심해 괜히 불똥이 튀었던 모든 분들께 잠시나마 사과 살포시 올릴게요...
그 핑계로 2호를 이제야 발간합니다.
우리네 사는 곳은 한 없이 이상하고, 또 기이합니다.
사실 덧없고 허무하기 그지 없는게 사람 사는 일이랍니다.
어릴 때에는 숫자 놀음이 다들 중요하다길래 대학, 성적, 직장명, 집 평수, 기타 등등. 이것저것에 집착했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일련의 계기들로 이것들에 대해 별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되었네요. 다 별 것 없습니다.
그저
우리에게는
살 날이 별로 남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생은 퍽이나 짧고
그러니 남은 생 동안 그저 다정한 이들과 함께 시간이나 보내는게 퍽이나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 아닐련지요. 식사 속에는 잔잔한 대화들이 여실히 어른거립니다.
그 시간을 벌기 위해 밥 한 끼 합시다.
다들 이 글까지 닿을지는 모르겠는데요
제가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 관계에 서툽니다.
자꾸 쓸데없는 잔소리에 예민하게 굴고, 까불다 신경질 내다 박박 소리 지르다. 하하... 뭐 저리 성가시게 굴까 싶으셨을텐데요. 제가 사람 대하는 법을 다 까먹은 채로 오랜만에 만나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리 엉망으로 굴었습니다. 제가 죄책감을 덜어내는 거의 유일한 방식이 달리기와 등산인데 발을 한 번 다치면서... 더 예민하게 굴었네요. 미안해요, 정말로. 표현이 서툴러 여기에 사과를 남길게요.
허허... 아무쪼록
저와 함께 봄, 여름을 놀아준 모든 분께 감사드리고
오랜만에 올린 매거진은 여기에서 매듭짓도록 할게요.
이 매거진에는 어떠한 체계 하나 없지만
우리 같이, 하나씩 이 세계의 규칙을 정립해봅시다.
그리고 저와 대화를 원하신다면
언제든 우리 밥 한 끼 해요
다음 이야기는
여름으로 찾아 뵙도록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