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끌리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
흔들림 없이 서 있는 사람
어떤 사람은 마음이 참 단단하다. 흔한 감정 기복이나 요란한 표현 없이, 그저 자리를 지키는 데 집중한다. 큰일이 닥쳐도 과하게 동요하지 않고, 작은 불편에는 눈빛조차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 사람을 곁에서 지켜본 적이 있다.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 말보다 행동에서 느껴지는 그 사람만의 결이 있었다. 흘러가는 듯 보이면서도 중심은 늘 정확히 잡고 있었다.
그는 늘 검은색 셔츠를 입었다. 별 뜻 없이 반복되는 선택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그 무채색이 그 사람의 말없는 기품과 닮아 있었다. 말보다 표정이 먼저였고, 설명보다 눈빛이 더 많은 걸 담고 있었다. 그 옆에 앉아 있으면 나도 목소리를 낮추게 되었다.
가끔은 궁금했다. 그렇게까지 조용히 살아도 괜찮을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속으로는 많은 걸 참고 있는 건 아닐까? 나와는 너무 다른 방식이어서, 한동안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걱정에 끌려가지 않는 태도
그는 늘 지금에 집중했다.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를 일로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았고, 막연한 상상에 감정을 쏟지 않았다. 불확실함보다 눈앞에 놓인 일에 온기를 담았다. 누군가 '만약'이라는 단어로 긴 말을 이어가도, 그는 조용히 들었다. 조언도, 위로도 없었지만 묘하게 마음이 정리됐다. 불안은 소리 없이 퍼진다는 걸 아는 사람처럼, 그는 스스로부터 흔들리지 않으려 애썼다. 그 모습에서 묘한 안정을 느꼈다.
절제와 여유의 미덕
돈 이야기를 할 때도 그는 조용했다. 많다고 드러내지 않았고, 부족하다고 불평하지도 않았다. 필요한 만큼을 알고, 그 안에서 머무는 삶을 택했다. 식사할 때는 대화를 잠시 멈추고, 천천히 씹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절약이 아니라, 절제가 몸에 배어 있었다. 쓸 때는 쓰되, 흘러넘치지 않았다. 지갑 속보다 마음속이 더 여유로워 보였다. 선택 하나에도 고민이 짧았고, 쓰임보다 어울림을 먼저 떠올렸다. 그런 결이 조용한 품격으로 전해졌다.
텀블러에 물을 채우고, 아무 말 없이 출근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굳이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하루에는 일정한 리듬이 있었다. 말없이 반복되는 행동이 묘한 안정감을 전했다.
관계 속에서 조용한 균형을 지키는 사람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다툼이 생겨도 큰소리를 내지 않았고, 불편한 말을 들어도 정색하지 않았다. 감정을 키우기보다 흘려보내는 편을 택했다. 그와 함께 있을 땐 억지로 무언가를 채우지 않아도 되었다. 침묵이 어색하지 않고, 그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가끔은 그 조용함이 내 안의 불필요한 말들을 잠재웠다. 오랜 시간 함께 있어도 피곤하지 않은 사람. 관계에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게 해주는 사람. 그런 존재는 쉽게 만나기 어렵다.
사실, 처음엔 서운했던 적도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돌아설 때, 무관심이라 오해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침묵이 얼마나 많은 배려였는지 알게 되었다. 말이 없어도 함께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단단한 관계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하루를 견디는 일정한 리듬
그는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았다. 계획보다 실천이 먼저였고, 묵묵함이 하루를 채웠다. 대단한 목표를 세우기보다, 눈앞의 일을 바로 해내는 것. 가끔은 수영을 연상케 했다. 과장 없는 움직임, 일정한 호흡, 조용하지만 지치지 않는 흐름. 요란한 성과를 자랑하지 않아도, 하루를 다 채우고 나면 그의 손에는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말보다 결과가, 의욕보다 태도가 더 오래 기억됐다.
나는 어쩌면, 지나치게 계획만 세우다 하루를 흘려보낸 적이 많았다. 실천보다 고민이 먼저였고, 마무리보다 핑계가 가까웠다. 그는 늘 조용했지만, 늘 무언가를 마무리해놓고 있었다.
자신과 타협할 줄 아는 사람
그는 고민이 길지 않았다. 생각은 깊되, 결정을 오래 끌지 않았다. 때로는 빠르게 방향을 바꿀 줄 알았고, 완벽함에 집착하기보다 상황에 맞춰 움직였다. 그 안에는 자신을 밀어붙이지 않는 유연함이 있었다. 타인과 싸우기보다 스스로와 부드럽게 타협하는 법. 그것이 그 사람을 더 단단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가벼운 말보다 묵직한 고요함이 더 오래 남았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침착함이 부러워졌다.
배우지 않아도 배워지는 사람
그는 가르치지 않았다. 따로 조언하지도 않았고, 충고를 건네지도 않았다. 그저 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옆에 있으면 나도 조금씩 변해갔다. 말없이도 닮고 싶어지는 태도. 말 대신 행동, 소음 대신 조용한 결심. 그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서, 오래 기억될 감정을 얻곤 했다. 다가가려 애쓰지 않아도, 곁에 있고 싶은 사람. 배운다는 말보다, 배워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사람. 그런 이가 가끔은 삶의 이정표가 되어준다.
곁에 있고 싶은 사람의 힘
요란한 말보다 조용한 태도에 마음이 끌릴 때가 있다. 그의 곁에 있으면 내가 말이 많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부풀어 오르던 감정도 잦아들고, 마음속 소란도 줄어든다. 마치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는 느낌처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져도 지치지 않는다. 오히려 다시 함께 있고 싶어진다. 그런 사람과의 관계는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다.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누군가와 조용히 앉아 있었을까. 말없이도 괜찮았던 그 시간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본 적 있었을까?
닮아보려는 하루
그날 이후, 나도 따라 해 보기로 했다. 오늘 할 일 하나를 제때 해내기. 생각이 지나치게 많아질 땐 잠깐 멈춰보기. 말보다 행동이 앞서도록 해보기. 잘 되지 않을 때도 많았지만, 어느 날 문득 달라진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완벽하려 애쓰기보다, 그 사람처럼 흐름을 놓치지 않는 쪽으로 중심을 옮겼다. 그런 연습이 쌓이며 내 안에도 조용한 리듬이 생겨났다.
가볍게 지나간 하루들 속에서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더는 소란에 휘둘리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끼는 순간. 그 사람처럼 살 순 없겠지만, 그의 삶에서 본 장면 하나쯤은 내 안에 남겨두고 싶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 가르치지 않아도 따라 하게 되는 태도. 그건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도 오래 기억되는 방식이다.
소란은 잠깐이고, 고요는 오래간다. 그 한 줄이 오늘을 견디게 한다.
말없이 시작하는 내일
프랭클의 문장이 문득 떠올랐다. "When we are no longer able to change a situation, we are challenged to change ourselves."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땐, 나를 바꿔야 한다는 말. 오늘도, 그렇게 시작해 본다. 말없이, 천천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그 사람처럼.
말이 없어도 사랑이 전해진다는 걸, 나는 이제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내 옆에 조용히 앉아 쉬어가기를 바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으로 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