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편 – 피드백, 마음을 잇는 예술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말을 주고받는다. 언뜻 보기엔 가벼운 대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말하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그 순간의 분위기까지 스며 있다. 어떤 말은 금세 사라져 흔적조차 남기지 않지만, 어떤 말은 다시 돌아와 내 모습을 비추고, 그제야 나는 그 말 속에 실려 있었던 마음의 상태를 돌아보게 된다.
말은 목소리를 빌려 흘러가지만, 그 바탕에는 늘 보이지 않는 의도가 깃들어 있다. 때로는 스치듯 지나간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 오래도록 기억되는 장면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조용한 흐름이 되어, 어느새 서로의 마음을 물들인다.
말의 옷을 입은 진심
말은 너무나 쉽게 흩어진다. 한 번 내뱉고 나면 붙잡을 수 없는 허무한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허무함 속에서도 오래도록 잔상처럼 남는 것은 다름 아닌 그 말에 담겼던 마음이다. '피드백'이라는 단어만 해도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냉정한 평가처럼 들릴 수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날카로운 지적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피드백은 언제나 조심스러운 영역에 속한다. 나는 오랫동안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고, 동시에 상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해 왔다.
처음에는 솔직함이야말로 모든 소통의 해답이라 믿었다. 굳이 돌려 말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물론 나의 의도는 늘 선의에 기반하고 있었다. 상대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이 동기였다. 그러나 전해지는 방식은 나의 의도와는 사뭇 달랐다. 내가 던진 말이 누군가에게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깊은 상처로 남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안타깝게도 시간이 한참 흐른 뒤였다. 타인의 상처를 뒤늦게 알게 된 순간, 나의 솔직함은 오만함으로 변질되어 돌아왔다.
그 후로는 말을 아끼게 되었다.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나의 솔직함이 또 다른 상처를 만들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감추고 숨기는 것이 때로는 최선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 역시 잘못된 판단이었다. 너무 말을 아끼거나 돌려 말하면 정작 전달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의도가 흐려진다. 듣는 사람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대화를 마무리하게 되고, 결국 말은 사라지고 오해와 불신만이 남는 결과를 초래했다. 소통은 마음을 닫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열어 보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감의 자리에서 피어나는 언어
며칠 전, 회의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서던 후배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날 나는 후배가 제출한 기획안을 두고 조목조목 지적했다. 나의 말투는 꽤나 날이 서 있었고, 내뱉는 말들은 단단하고 강한 어조였다. 회의실 문을 나서던 그의 어깨가 유난히 무거워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돌아서는 순간, 괜한 말을 했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음 한편에 불편함과 후회가 맴돌았다.
그리고 며칠 뒤, 그 후배가 나를 찾아왔다. 의외의 방문이었다. 그는 나에게 그날 내가 했던 말들이 자꾸만 생각났다고 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곰곰이 곱씹어보니 내가 지적했던 내용들이 맞는 말이었다고 덧붙였다. 덕분에 기획안을 다시 꼼꼼히 살폈고, 꽤 많은 부분을 수정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제야 안도했다. 나의 말이 드디어 닿은 것이다. 나의 마음이 허공에 흩어지지 않고, 그의 마음에 머물러 결국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그제야 나는 피드백이 비판이 아닌, 성장을 돕는 말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말은 시간이 필요하다. 즉각적으로는 불편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일지라도, 어떤 말들은 천천히 그 깊은 의미를 드러내며 듣는 이의 마음속에서 숙성된다. 피드백은 바로 그런 종류의 말이다. 듣는 이에게 그 말을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으면, 피드백은 그저 상처로만 남을 뿐이다. 그러므로 말은 결코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 성급함은 진심의 날개를 꺾고 오해의 씨앗을 뿌릴 뿐이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성장하는 피드백
진정으로 좋은 피드백이란 결국, '우리 함께 이 문제를 고민해 보자'는 따뜻한 신호다. 상대방에게 "무엇을 잘못했는가?"라고 질책하는 말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까?"라고 묻는 건설적인 질문이다. 이는 내가 원하는 특정 결과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가진 잠재력과 가능성을 진심으로 믿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나의 경험상, 좋은 피드백은 듣는 이의 내면에 스스로 답을 찾을 힘을 불어넣는다.
사람들은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을 어려워한다. 말을 건네는 사람도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할까 봐 조심스러워하고, 말을 듣는 사람도 비난이나 평가로 받아들일까 봐 불편해한다. 하지만 건강한 관계를 지속하고 서로의 성장을 돕기 위해서는 피드백이라는 과정은 결코 피할 수 없는 필수적인 요소다. 그렇기에 피드백에서 중요한 것은 말의 형식이나 겉으로 꾸미는 방식이 아니고, 그 말의 방향성이다. 과연 이 말이 상대방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그 자리에 멈춰 서게 만드는 말인지. 상대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말인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긍정적일 때, 비로소 피드백은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
나는 피드백을 건넬 때, 상대방에게 나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연다. 먼저 상대방이 잘 해낸 점들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며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 후에 함께 개선해 나갈 수 있는 부분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진심을 담은 응원의 메시지를 덧붙인다. 이것이 꼭 공식처럼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피드백의 구조를 잡는 하나의 유용한 틀이 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말에 담긴 진심이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형식은 마음에 닿지 않고 흩어질 뿐이다
말은 관계를 엮는 실타래
말은 그 자체로 관계를 드러낸다. 우리가 어떤 말투로 이야기하는지, 어떤 단어를 신중하게 선택하는지에 따라 내가 상대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고스란히 보인다.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하는 이 말에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는가?', '내가 상대를 나와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해야만, 진정한 소통의 다리를 놓을 수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를 아래로 두거나, 지시하듯 내뱉는 말은 언젠가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고 관계를 단절시킨다. 반면, 같은 눈높이에서 서로를 마주 보며 주고받는 말은 오래도록 지속 가능한 관계의 토대가 된다. 지시가 아니라 진심 어린 제안으로, 일방적인 판단이 아니라 깊은 관심으로 다가가는 말이 필요하다. 피드백 또한 그러한 말 중 하나여야 한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담긴 피드백만이 진정한 변화와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
내 삶에서 가장 깊이 기억에 남는 말은 단 한 문장이었다. "지금도 충분히 좋지만, 네 다음이 더 기대돼." 그 말은 나를 그 자리에 멈춰 서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멈춰 있던 나를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되었다. 내가 가진 현재의 가치를 인정받는 기분과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함께 심어주었다.
그 말 덕분에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혹시 지금의 내가 안주하고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닌지, 더 나아가려는 마음을 잠시 놓아두고 있었던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말이 단순히 조언이나 비판을 넘어, 나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말의 길, 함께 걷는 여정
말에는 길이 있다. 듣는 이로 하여금 힘찬 발걸음을 내딛게 만드는 말이 있고, 반대로 그 자리에 멈춰 서게 만드는 말이 있다. 피드백은 마땅히 듣는 이를 걷게 만드는 말이어야 한다. 상대방의 부족한 점을 명확히 짚어주더라도, 그 너머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더 나은 미래를 함께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을 건네는 사람의 태도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나는 말을 할 때, 불필요한 말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많은 말을 쏟아내기보다는 간결하게, 하지만 중요한 내용은 빠뜨리지 않도록 집중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표정과 반응을 세심하게 살피며 천천히 말한다. '이 말이 지금 상대에게 정말 필요한 말인가?', '상대는 이 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들을 끊임없이 되뇌며 상대의 상태를 살핀다. 말은 일방적으로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자리에서 다시 쓰이고 완성되기 때문이다. 같은 말이라도 누구에게는 따뜻한 격려가 되고, 또 누구에게는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피드백은 말하는 사람만의 책임이 아니라, 듣는 사람과 함께 만들어가는 소통의 과정이다.
나는 말이 끝나고 난 뒤의 공기를 중요하게 여긴다. 말이 맺힌 자리에 남는 감정이 결국 관계의 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대화가 끝난 후, 조용한 여운이 따뜻하고 편안하다면, 그 대화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피드백 또한 마찬가지다. 그 자리에 남아 있는 마음의 온도가 중요하다.
전달을 목적으로 한 말이라 해도, 그 말에는 말하는 이의 마음결이 스며들게 마련이다. 그것은 '우리 함께 이 길을 걸어가자'는 따뜻한 제안이며,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건네는 마음의 표현이다. 그 마음이 가볍게라도 상대방에게 닿는다면, 우리의 피드백은 성공한 것이다.
우리가 내뱉은 말은 생각보다 오래도록 남는다. 잘한 말도, 때로는 서툰 말도 우리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말을 하기 전에는 늘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이 말이 지금 우리의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지켜주는 말인가, 아니면 오히려 무너뜨리는 말인가?' 말은 생각을 전달하는 동시에, 관계를 형성하고 마음을 건네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그 다리를 건넌다는 것은 서로가 연결되고, 이해하며, 함께 성장해 나간다는 의미다.
네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은 어떤 말이었니? 그 말은 너를 멈춰 서게 했니, 아니면 앞으로 나아가게 했니? 지금 누군가에게 어떤 말을 건넬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 말 안에 너의 진심 어린 마음이 온전히 담겨 있는지 먼저 확인하자. 말을 건넨다는 것은 결국, 가장 소중한 우리의 마음을 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닿은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오랜 시간 서로의 삶 속에 따뜻한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