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거리》

30편 - 사람 사이의 우선순위

by 정성균

마음의 지도, 관계의 길을 찾아서

우리는 삶이라는 여정에서 수많은 연결고리를 맺습니다. 가족, 오랜 친구, 새로운 인연, 그리고 스쳐 가는 사람들까지. 이 복잡한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각 관계에 고유한 자리와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갑니다. 마치 마음속에 구획을 나누어 소중한 이들부터 차례로 배치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러한 행위는 인간이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한정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배분하려는 깊은 본능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수만 년간 인류가 사회적 유대를 형성하고 생존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뿌리내린 진화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원시 수렵 채집 사회에서부터 오늘날의 복잡한 도시 네트워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늘 시간, 감정,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가장 적합한 관계망을 구축하려 애써왔습니다.


우리의 뇌가 처리할 수 있는 관계의 수는 한정적입니다. 인지 과학자들은 인간이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관계의 상한선을 던바의 수(Dunbar's Number)로 설명합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평균적으로 약 150명 정도의 사람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그 안에서도 친밀도에 따라 여러 단계의 층위를 형성합니다. 이는 진화론적으로 볼 때, 초기 인류가 생존과 번식을 위해 소수의 긴밀한 유대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 더 유리했음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유전적 프로그램은 현대인의 의식 속에도 여전히 남아, 우리는 특정 관계에 더 많은 시간과 감정을 투자하며 심리적 안정감을 추구합니다. 동시에, 사회적 존재로서 우리는 다양한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아를 확장하고 새로운 의미를 발견합니다. 이 두 가지 본능 사이에서 관계의 가치는 늘 미묘한 긴장 상태에 놓입니다. 안정적인 유대와 새로운 경험이라는 상반된 욕구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관계의 균형점을 탐색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관계의 가치 부여가 명확했습니다. 부모님은 언제나 첫 번째였고, 그다음은 늘 함께하던 친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삶의 깊이가 더해지고 관계의 결속 또한 변하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고 기존 관계가 변화하면서, 마음의 구획 또한 유동적으로 움직입니다. 어떤 날은 연인이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다가도, 또 다른 날은 오랜 친구와의 진솔한 대화가 더 큰 위로로 다가옵니다. 삶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그 역할에 따라 관계의 중요성 또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학업에 몰두할 때는 동료 학생들과의 협력이 중요해지고, 직업 전선에 뛰어들면 동료나 상사와의 유대 관계가 삶의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처럼 관계에 대한 가치 부여는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삶의 단계와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특성을 지닙니다. 취업 준비로 어려움을 겪을 때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가 가장 큰 의지가 되고, 결혼 후에는 배우자와 자녀가 삶의 중심이 되는 식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우리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우리는 때로 직장 동료와의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 때문에 가족에게 더 큰 위안을 찾기도 하고, SNS를 통해 수많은 ‘느슨한 유대’를 맺으면서도 깊이 있는 소통의 부재를 느끼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의 특징인 개인주의 심화와 워라밸(Work-Life Balance)의 중요성 대두는 관계의 중요성 판단을 더욱 복잡하고 미묘하게 만듭니다. ‘나’ 중심의 관계 설정은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하나의 생존 전략이자 자기 보호의 수단이 됩니다. 넘쳐나는 정보와 관계로 인해 오히려 피로감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는 자신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소모를 줄이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시간 속에서 흐려지는 감정의 층위

하지만 이러한 가치 판단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혼란을 겪습니다. 모두에게 잘해주고 싶지만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결국 누군가에게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때로는 이러한 소홀함이 관계의 균열로 이어집니다. “나는 네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구나”라는 오해를 낳거나, 서운함이 쌓여 멀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관계의 가치 부여는 필연적으로 소외와 상실감이라는 그림자를 동반합니다. 가장 소중한 이가 있다면 그 아래에 다른 이들이 존재하며, 그 순위에서 멀어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소외감을 느끼거나 자신이 ‘버려졌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 역시 누군가의 마음에서 멀어졌을 때, 혹은 한때 소중했던 관계가 희미해졌을 때, 비어버린 마음의 한 조각처럼 깊은 상실감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한때 환하게 빛나던 관계가 서서히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는 듯한 아픔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종종 자기 성찰의 계기가 되지만, 동시에 깊은 외로움과 좌절감을 안기기도 합니다.


어떤 관계는 격렬한 불꽃처럼 타오르다 재로 변하고, 어떤 관계는 소리 없이 물 흐르듯 멀어져 갑니다. 처음에는 매일같이 연락하던 사람이 점점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어느 순간 그의 소식을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게 되는 감정의 진행은 씁쓸하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휴대전화 주소록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하고도 더 이상 손가락이 통화 버튼으로 향하지 않을 때, 그 침묵의 순간이 주는 낯선 감정은 그 관계가 이미 내 마음에서 한참 멀어졌음을 묵묵히 알려줍니다. 잊힌다는 감정은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때로는 죄책감을 안기기도 합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에도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우리는 그저 무거운 마음으로 그 관계의 종언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누군가의 이름이 바람처럼 스쳐가는 저녁이면, 나는 조용히 기억을 붙잡아봅니다. 하지만 그렇게 잊고 지내던 이름 하나가 문득 떠오르는 날이면, 나는 여전히 그 관계의 흔적을 품고 살아가는구나 조용히 알게 됩니다. 그 잔잔한 여운 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나를 만나고 관계의 깊이를 다시금 헤아려 봅니다.


관계의 깨달음, 진솔한 고백

며칠 전 연락이 뜸해진 친구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한참 동안 연락하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왜 먼저 연락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은근히 섭섭했던 제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그 순간 문득 저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이 아프게 스쳤습니다.


돌이켜보면 저 역시 학창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와 대학 진학 후 연락이 뜸해지며 자연스럽게 멀어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는 서로가 너무 바빠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깨달은 것은 저 역시 그 친구를 제 삶의 가치 판단에서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친구와 제가 느꼈던 차가운 침묵은 관계의 온도가 내려가고 있음을 알리는 경고등이었습니다. 관계는 언제나 양쪽에서 흐르는데, 저는 그동안 한 방향에서만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조용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느꼈던 미안함과 후회는 지금도 관계를 대하는 저의 태도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과의 에피소드를 통해, 가치 부여가 반드시 시간이나 물리적 거리에 비례하지 않음을 깨달았던 적도 있습니다. 우연히 마주친 낯선 이의 따뜻한 조언이 오랜 친구의 공허한 말보다 큰 울림을 주었던 경험처럼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다시 연락하지 못한 관계가 있습니다. 서로를 잊기로 한 인연도 있고, 오해가 해소되지 못하고 남겨진 서운함 또한 존재합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우리의 삶 곳곳에 작은 흉터처럼 남아있습니다. 모든 관계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현실은 때로 고통스럽지만, 관계의 복잡성과 삶의 불가피함을 인정하게 합니다.


마음의 거리, 관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선

그렇다면 사람 사이의 가치 판단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저는 이 가치 부여가 마음의 거리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물리적인 거리가 아닌,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거리 말입니다. 가까이 두고 싶은 사람에게는 더 많은 시간과 마음을 할애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거리가 멀어지는 것입니다. 이를 우리의 정원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어떤 꽃은 매일 물을 주고 정성껏 가꿔야 아름답게 피어나고, 어떤 꽃은 거친 땅에서도 굳건히 자라지만 가끔은 애정 어린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각 관계에 맞는 적절한 관심과 적절한 기대치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꽃에 똑같은 양의 물을 주려 한다면, 어떤 꽃은 과습으로 죽고 어떤 꽃은 물 부족으로 시들게 될 것입니다.


이 마음의 거리가 일방적이지 않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저에게 소중한 사람이 저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고, 제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사람이 저를 깊이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서로의 마음의 거리가 일치할 때, 우리는 비로소 안정적이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연락한 지인이 저의 안부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었을 때, 그 관계에 대한 저의 '마음의 거리'는 즉각적으로 좁혀지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제가 첫 번째로 소중히 여겼던 친구가 저에게 소홀함을 보였을 때, 그 관계의 '마음의 거리'는 저절로 멀어지게 됩니다. 이는 서로의 관계에 대한 마음의 온도와 관계의 밀도가 일치할 때 건강한 유대감이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마음의 온도'는 관계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나 친밀감을, '관계의 밀도'는 서로에게 할애하는 시간과 에너지의 집중도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미묘한 감각들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관계의 상태를 파악하는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자기 이해와 관계, 삶의 가치 탐색

우리는 모두 타인의 마음속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를 항상 첫 번째로 소중히 여길 수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마음을 줄 수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삶의 어떤 관계에 에너지를 쏟고 싶은지, 그리고 어떤 관계로부터 위로와 행복을 얻고 싶은지 스스로 인지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나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과 맞닿아 있습니다. 제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사람들과 있을 때 진정한 나다움을 느끼는지를 알아가는 일입니다. 그 이해가 없으면, 관계 속에서의 제 자리는 늘 불확실한 물살 위에 놓이게 됩니다. 제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진심 어린 소통인가요? 함께하는 즐거움인가요? 아니면 무조건적인 지지인가요? 어떤 사람 곁에서는 저답다고 느끼고, 어떤 사람 곁에서는 저를 잃나요?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관계의 가치를 정하는 삶의 핵심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가치 부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때로는 씁쓸하지만, 관계를 더욱 솔직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출발점입니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이고 정말 소중한 관계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니까요. 모든 관계에 완벽하려고 애쓰기보다, 각 관계에 맞는 적절한 거리와 기대치를 설정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는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고, 진정한 행복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현명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는 시도는 결국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가치를 두는 관계에 집중함으로써, 그 관계를 더욱 깊고 풍요롭게 가꿀 수 있습니다.


이제는 마음의 거리를 능동적으로 조절하는 법을 배울 때입니다. 주기적으로 자신의 관계들을 점검하고, 솔직한 소통을 통해 서로의 마음의 거리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로는 소홀했던 관계에 먼저 손을 내밀어 따뜻한 목소리를 건네고, 때로는 지나치게 가까웠던 관계에 적절한 간격을 두어 건강한 숨 쉴 공간을 마련하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이것은 결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라, 나 자신과 관계 모두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성숙한 노력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감정적 한계를 인지하고 그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관계 맺음이 가능해집니다.


관계의 물음, 스스로에게 묻다

그리고 오늘 저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되묻습니다.


요즘 자신의 마음에 가장 자주 떠올리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머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때 가까웠지만 지금은 멀어진 관계 중 다시 꺼내 보고 싶은 이름이 있나요? 지금 자신의 마음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리고 그 관계에 자신은 진정으로 에너지를 쏟고 있나요? 자신의 마음의 거리는 지금 그들에게 가장 적절한가요?


이 질문들은 때때로 아프지만, 그 아픔 속에서 비로소 진짜 나를 발견하고 진정으로 소중한 관계에 집중할 용기를 줄 것입니다. 복잡한 관계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진정한 행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삶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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