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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거리》

31편 - 배를 채우는 건 음식이지만, 살고 싶게 만드는 건 사랑입니다

by 정성균

가스레인지의 불이 꺼지자 주방은 금세 고요에 잠겼다. 한참을 끓이던 냄비의 뚜껑을 조심스레 열면 김이 피어오르며 오늘 하루의 잔열이 퍼진다. 따스한 온기가 분명 감도는데도 그 안엔 어쩐지 설명하기 어려운 허전함이 섞여 있다. 온기를 식히지 않으려 부엌을 분주히 오갔지만, 아내가 며칠 전 친정으로 향한 뒤, 내면은 이미 다른 곳에 머물러 있는 저녁이었다.


식탁 위엔 반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손이 많이 간 흔적이 분명한데도 젓가락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허기는 느껴지지만 밥을 뜨려던 손은 허공에서 멈춘다. 막상 식탁 앞에 앉으면 속내가 먼저 서서히 식어가며 어딘가 묵직한 감정이 내려앉는다. 늘 곁에 있던 아내의 자리, 비어 있는 그 빈 공간이 배를 고파서가 아니라, 내면이 비어서 그런 날이 있다.


조용한 저녁의 풍경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되는 집인데 어느 순간 침묵이 마음을 잠식한다. 하루를 버텨내고 돌아온 몸은 분명 지쳐 있는데도 정작 입은 움직일 기운을 내지 못한다. 뜨거운 밥 한 숟가락조차 위로가 되지 않는 날도 있다. 식사를 앞두고 나의 기운이 먼저 그 자리를 거절해버리는 그런 저녁. 그럴 땐 애써 먹으려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다. 식탁에 놓인 반찬을 하나씩 바라보다 보면, 차려진 밥상 앞에 앉아 있는 내가 어쩐지 낯설게 느껴진다. 음식을 대하는 일보다, 그 음식을 받아들일 뜻을 일구는 일이 훨씬 더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식지 않도록 덮어둔 냄비는 아직 따뜻하지만 그 온기가 가슴까지 닿지 못할 때, 허기는 물리적인 배고픔을 넘어선 감정의 메마름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식지 않은 밥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앉아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누군가의 밥을 기다리는 것도, 함께 먹는 것도 아닌, 오직 나를 위한 저녁. 그 마음을 잃지 않았다는 증표처럼 밥상은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 입을 움직일 수 없더라도 이 자리에 나의 숨결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놓지 않은 셈이다. 그러니 오늘, 밥을 먹지 못한 당신도 괜찮다. 먹지 못한 저녁보다, 먹을 의지를 아직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큰 위로가 되니까.


이런 감정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그런 저녁은 어딘가에서 또 다른 이의 삶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어떤 이는 배달 앱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다 결국 닫아버린다. 또 다른 이는 애써 차려놓은 음식을 다시 냉장고에 고이 넣으며 ‘나중에 먹자’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리고는 끝내 아무것도 삼키지 못한 채 하루를 넘기고 만다. 겉으로는 이유 없는 무기력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면 깊은 곳에는 명확한 결핍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배가 고파서 생긴 감정이 아니었다. 말없이 스며드는 고립감에 가까웠다. 우리는 안다. 육체를 채우는 건 물질적인 음식이지만, 삶을 이어가고 싶은 의지는 결국 애정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사랑, 그 소리 없는 위로

애정은 결코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만 피어나는 감정이 아니다. 바쁘게 흘러간 하루의 끝, 저 멀리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희미한 감각만으로도 속내는 조용히 흔들린다. 아내가 여행을 떠나고 홀로 맞는 밤이면, 그녀가 잠시 들렀던 곳에서 보내온 짧은 문자 한 통, 아무 말 없이 보내온 고요한 이모티콘이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혹은 지난 계절을 함께 견뎌온 이의 무심한 듯한 한마디 “식사는 잘 챙겨 먹고 있지?” 그런 말들이 가슴 어딘가를 조용히 두드린다.


그 단정한 문장이 메마른 정신에 천천히 스며들어 올 때가 있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게 지나온 날들 속에 조용히 가라앉아 있던 속마음의 밑바닥이, 문득 그 한 문장에 의해 살며시 흔들린다. 잊고 지냈던 어떤 기운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오래 닫아두었던 감정의 틈이 조금씩 열린다. 그렇게 문장 하나가, 그저 흘려보낼 수도 있었던 말 한마디가, 다시 나를 나에게로 데려다 놓는다.


어떤 날은 홀로 식사하다가 괜스레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당황하기도 한다. 수저를 들려는 순간 눈물이 먼저 왈칵 쏟아지고, 물컵을 집어 들다가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낀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동시에 너무나 많은 이유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한 기분이다. 살아오면서 묵묵히 견뎌낸 수많은 내면의 상처들, 말없이 넘겨왔던 헤아릴 수 없는 밤들, 그리고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을 삼켜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수많은 날들. 당신은 그 모든 것을 조용히 가슴에 품어낸 채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만약 그런 저녁을 보내고 있다면, 그 감정은 텅 빈 물컵에 맑은 물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져 바닥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것처럼, 외로움 너머의 깊은 울림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오랜 시간 동안 진심을 다해 사랑해온 사람이라는 조용한 흔적이다. 타인의 부재를 스스로도 모르게 감지하는 섬세한 감각, 내면의 허기를 외면하지 않고 조용히 들여다보는 그 예민함. 그 모든 순간들이야말로, 당신이 삶을 피상적으로 지나치지 않고, 누구보다 깊이 있게 살아가고 있다는 또렷한 증거다.


식탁 위의 사랑과 홀로 서는 힘

식사는 그저 허기를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속을 따뜻하게 데우고 스스로를 보듬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다. 아내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나 자신을 위해 정성껏 국을 데우고, 반찬을 적당히 덜어내며, 묵묵히 그릇을 닦아 정리하는 그 모든 순간 속에 나는 소리 없는 애정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이는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삶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기 위해, 언젠가 마주하게 될 누군가를 기다리는 동시에,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에게 온화해지기 위한 지극히 사적인 사랑의 방식이다.


삶이 깊어지는 건 관계가 많아질 때가 아니라, 홀로 보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감당될 때다. 조용한 집 안에서 등불 하나를 켜고, 잔잔한 라디오를 틀고, 느리게 밥상을 차리는 그 일련의 동작들 속에서 속내는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간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당신만의 고요한 일상이 결국 당신을 지켜주는 가장 든든한 테두리가 된다. 그 일상 속에서 사랑은 소리 없이 배어 나오고, 천천히 스며든다. 당신은 어느새, 자신을 아끼는 방법을 몸으로 익혀온 사람이다. 그러니 오늘 밤, 혼자 식사하게 되더라도 그 시간 속에 부디 당신 자신을 놓치지 않기를. 식탁 앞에 앉아 있는 당신에게 이 말을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건넨다. “오늘도 정말 훌륭하게 해냈다. 당신은 참 강인하고, 다정한 사람이다.”


고독의 맛,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삶의 지혜

우리는 흔히 고독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여긴다. 타인과 함께하지 않는 상태를 외로움이나 소외감, 혹은 실패의 징후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독은 단절이 아닌 만남일 수 있다. 자기 자신과 더 가까워지는 시간. 홀로 식사하는 저녁, 그 침묵 속에서 세상의 소음이 멀어지고 내면의 목소리가 조금씩 또렷해진다. 말 없는 시간은 묵직한 언어가 된다.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 그 고요 속에서 속내는 스스로의 언어를 하나씩 다시 배워간다. 그 목소리는 때때로 꺼내기 망설였던 감정을 불러오고, 오래 감춰두었던 진심을 천천히 드러낸다. 그런 흐름을 외면하지 않을 때, 우리는 정신적인 바닥을 딛고 조금 더 단단해진다. 자신의 흔들림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다시 걷는 준비를 하게 된다.


홀로 식사한다는 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타인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고, 꾸며낼 필요도 없다. 오롯이 나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한 끼를 천천히 음미하는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돌보는 감각이 자라난다. 어떤 맛이 나를 위로하는지, 어떤 리듬으로 먹는 것이 편안한지, 어떤 음악이 그 시간을 더욱 너그럽게 감싸주는지 알아간다. 이 모든 세심한 선택은 나라는 사람을 천천히 이해해가는 과정이 된다. 어딘가에 정성껏 뿌려둔 씨앗이 잎을 틔우는 것처럼, 스스로를 기꺼이 가꾸는 일에 가까워진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가족, 친구, 동료, 연인. 그 관계들은 삶에 온기를 더하지만 가끔은 그 안에서 나를 잃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며 스스로를 소외시키거나, 타인의 감정에 휘둘리다 정신적인 균형을 놓치기도 한다. 그럴 때 혼자 있는 시간은 중심을 되찾는 자리가 된다. 홀로 식사하는 저녁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시간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감정에 머물러 있었는지, 지금 무엇이 나를 지치게 하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속 깊은 곳에 고요히 던져지는 물음 하나가 삶의 방향을 다시 잡아주는 순간으로 이어진다. 고독은 그렇게, 자신에게 천천히 되돌아가는 시간으로 남는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식사

홀로 식사하는 저녁은 한 끼를 해결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그 시간에는 과거의 나, 현재의 나, 그리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의 내가 조용히 만난다. 수저를 드는 순간, 문득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식탁, 부모님이 차려주던 밥상, 그 곁에 머물던 따스한 기운이 속내를 스친다. 동시에 오늘 하루를 버텨낸 나의 표정과 숨결, 그 안에 담긴 수많은 감정들이 함께 떠오른다. 그리고 조용한 이 시간이 건네는 작은 희망이, 내일의 나에게로 조심스레 닿는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희미한 희망이 내면 속에 피어난다.


이처럼 식사는 삶의 조각들이 모여 있는 자리다. 음식은 몸을 지탱하고, 정신에 숨을 불어넣는다. 따뜻한 국물, 정갈한 반찬, 손에 익은 그릇 하나에도 사랑이 묻어나고, 그런 순간들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살핀다. 누군가에게서 받은 다정함, 누군가에게 나눴던 애정, 그리고 나 자신에게 건넨 따뜻한 배려. 그 모든 감정이 조용히 식탁 위에 머문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기를 바란다. 그 바람은 타인을 향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앞서 자기 자신을 향해 있어야 한다. 스스로를 존중하고, 내면을 들여다보며, 몸과 속의 안부를 살피는 행위는 사랑의 한 모습이다. 혼자 먹는 식사는 그 다짐을 조용히 실천하는 시간이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나만을 위한 밥상을 차리고, 따뜻한 밥 한 숟갈을 입에 넣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나는 돌봄 받을 자격이 있다. 나는 계속 살아갈 이유가 있다."


삶의 울타리, 그리고 사랑의 증명

삶이 굳건해지는 순간은 관계가 많아질 때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잔잔하게 이어질 때에 가까워진다. 조용한 집 안에서 전등 하나를 켜고, 잔잔한 라디오를 틀고, 느리게 식탁을 차리는 그 일상의 동작들 속에서 속내는 차분히 제 모습을 찾아간다. 아무도 모르는 당신만의 고유한 습관이 당신을 지키는 울타리가 되고, 그 익숙한 리듬 속에 조용한 애정이 배어든다. 당신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사랑은 눈에 띄는 큰 감정이기보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데워진 음식의 온기, 그리고 자신에게 건네는 짧고 조용한 한마디 안에 머무른다. 그런 속마음의 조각들이 이 순간, 당신을 살아가게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삶은 언제나 고르지 않다. 잔잔한 물결이 이어지다 뜻하지 않은 파도에 휘청이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종종 방향을 잃는다. 하지만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떤 날씨 속에서도 자신을 묶을 닻을 내려둘 수 있다.


홀로 식사하는 그 시간이 바로 내면에 닻을 내리는 자리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존재의 가치를 되새기고, 내일을 향해 한 걸음 내딛을 힘을 얻는다. 오늘 당신의 식탁이 조용하더라도 그 고요함 안에서 피어나는 따뜻함이 느껴지기를 바란다. 작은 온기 하나가 삶을 계속 이어가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이 글이 당신의 하루에 조용한 위로가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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