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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거리》

34편 - 익숙함이 나를 무디게 만들 때

by 정성균

고요한 반복 속의 불편함

햇살은 어김없이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왔지만,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눈을 뜨면 습관처럼 닿는 베개의 감촉,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 커피포트에서 끓어오르는 물소리까지 한결같은 리듬으로 귀에 감겼다. 익숙한 창밖 풍경에서 펼쳐지는 아침의 분주함, 출근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들, 문득 짓누르는 묵직한 기시감. 이 모든 정경 속에서 나는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지만, 내면의 호수는 잔잔한 파문으로 끊임없이 흔들렸다. 조용한 수면 아래 거대한 움직임이 있는 것 같았다.


오래된 낡은 소파에 깊이 몸을 파묻은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편안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어딘가 모르게 무릎이 저려오고,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몸 여기저기가 쑤시는 이상한 감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이런 상태를 ‘안정’이라 불렀다. 주변에서는 "그래, 그 정도면 안정적인 삶이지", "뭘 더 바라니?"라는 말들이 들려왔다. 그 안정은 더 이상 나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감각을 무디게 하고, 나 자신을 서서히 잠식해 가는 느낌이었다. 거창한 변화를 소망한 건 아니었다. 혁명적인 무엇인가를 꿈꾼 것도 아니었다. 지금의 자리가 나를 점점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을 뿐이다. 나는 늪에 빠진 듯했다.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점차 침묵하는 이가 되어갔다. 낯선 도전보다는 익숙한 일과 루틴에만 몰두하며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감추는 데 익숙해졌다. 새로운 시도에 따르는 실패의 두려움, 미지의 영역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내심 새로운 일이 터져 이 답답함을 깨부숴 주기를 갈망하는 모순이 나를 지치게 했다. 투명한 사일로 안에 갇힌 듯, 바깥세상을 갈망하면서도 정작 움직일 용기는 내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 고요한 불편함은 내 안에 깊이 뿌리내려 나를 서서히 갉아먹고 있었다.


덜 무서운 길의 외로움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샤워를 하다가, 출근길에서, 혹은 잠들기 전 고요한 어둠 속에서. “정녕 이 자리에 머물러도 괜찮은 사람일까? 나는 이대로 괜찮은 걸까?”


변화를 두려워하는 까닭은 명확했다. 나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 그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과 이미지. 혹여나 실패했을 때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는 내 발목을 굳건히 붙잡았다. 더 나은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고 싶지만, 새 길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불확실성은 보이지 않는 족쇄처럼 나를 묶어두었다. 나는 가장 잘 아는 길, 이미 걸어봤던 길, 가장 덜 위협적인 길만을 택해 걸어갔다. 그것이 안전하고 현명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이상한 일이었다. 그 ‘덜 무서운 길’이 어느새 가장 외로운 길이 되어 있었다. 이미 아는 것만 되풀이하고, 새로운 지식이나 경험을 탐색하지 않다 보니, 나 자신이 점점 낡아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오래된 서가에 꽂힌 채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먼지 쌓인 책처럼 말이다. 타인의 기대와 시선에 발맞춰 움직이다 보니, 내 안의 생생했던 표정들은 점차 흐릿해져 갔다. 나의 욕구와 열정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진정 나를 위한 선택들은 몇 년째 보류 중이었다. 삶은 조용히, 그리고 끈질기게 나를 닮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거울 속의 나는 내가 알던 모습과는 점점 멀어졌다. 마음속으로는 분명 다른 길을 바라지만, 현실 속 나는 여전히 똑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 어느 순간부터 큰 피로로 다가왔다. 자신이 가진 신념과 실제 행동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할 때 겪는 심리적 불편감을 "인지 부조화 (Cognitive Dissonance)"라고 한다. 머릿속 '나는 더 나은 삶을 원해'라는 생각과, 실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고인 물처럼 멈춰 있는 삶 사이의 간극이 점점 벌어졌다. 나는 내 안에서 나를 끊임없이 부정하고 있었다. 변모는 어렵고, 용기 내어 한 걸음 내딛는 것도 두려웠다. 하지만 그렇게 버텨온 시간이 쌓일수록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금이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 불편함을 통해 깨달았다. 나를 가장 지치게 만든 것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삶과 내가 살아내는 삶 사이의 괴리였다는 것을. 그 틈을 좁히기 위해서라도, 아주 작은 움직임이라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는 중이었다.


익숙함은 분명 나를 지켜주는 견고한 울타리였다. 그 안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위험으로부터 안전했고, 낯선 시도에 대한 부담감도 없었다. 동시에 그 울타리는 나를 가두는 거대한 유리 감옥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애써 편안한 척, 단단한 척했지만, 사실은 갇혀 옴짝달싹 못 하는 채였다. 문득, 한여름 밤의 서늘한 공기처럼 섬뜩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나는 지금 ‘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감히 ‘도전’하지 못한 채 스스로 주저앉아 있었다. 이 깨달음은 나를 더욱 깊은 혼란 속으로 밀어 넣었다.


작은 방향 전환

변화는 결코 요란한 혁명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변화를 생각하면 삶의 대대적인 전환이나 극적인 사건을 떠올린다. 어쩌면 그것은 굳게 닫힌 문 하나를 여는 일일지 모른다. 아니, 그 문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하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아주 작은 균열, 미미한 움직임이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았다.

그날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퇴근길이었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평소보다 15분 일찍 사무실을 나섰다. 습관처럼 걷던 익숙한 골목길 대신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그저 낯선 곳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집과 멀지 않은 공원 벤치에 앉아 낯선 풍경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처음 보는 나무들, 처음 듣는 새소리, 처음 맡는 흙냄새. 그것이 전부였다. 거대한 무엇인가를 한 것 같지 않은데, 묘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나는 정말 달라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그 순간 처음으로 추상적인 관념이 아닌 현실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익숙한 것을 의심하고, 오랫동안 굳어져 있던 습관에 균열을 내는 데는 분명 큰 용기가 필요했다. 견고한 장벽에 작은 돌멩이를 던지는 것과 같았다. 다만 아주 사소한 변화라도 시도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작은 성공 경험이 주는 성취감, 그리고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긍정적인 자기 암시가 서서히 내 안에 퍼져 나갔다. 어떤 이는 나의 작은 변화들을 '별일 아닌 일'이라 치부할지 모른다. "겨우 산책 코스 하나 바꾼 게 대수라고?"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거대한 균열이자 새로운 시작의 틈이었다. 변화의 씨앗은 늘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내 안의 흙에 뿌리내렸다.


나는 아직 서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선 어색하게 웃기 바쁘고, 새로운 일 앞에선 자꾸만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무언가를 완벽히 해내는 일보다, 매번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일이 먼저다. 이제는 안다. 두려움은 나아가기 직전까지 가장 크게 느껴지고,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두려움이 나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을. 두려움은 정지 상태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움직임, 그것이 유일한 해독제였다.


돌아갈 수 없어도 괜찮아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깊이 후회되는 순간들은 웅장한 실패의 순간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용기를 내지 못했던 수많은 시간들이었다. 한 번의 실패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날들'이 훨씬 더 길게, 그리고 짙게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미지의 가능성을 외면한 채 안전지대에 머물렀던 과거가 나를 짓눌렀다.


예전의 나는 늘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렸다. "여유가 생기면 시작해야지", "실력이 충분히 쌓이면 도전해야지", "누군가 따뜻하게 응원해 주면 그때 움직여야지". 그렇게 수많은 조건과 핑계를 내세우다 결국 한 발도 떼지 못했다. 세상은 완벽한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적절한 타이밍은 결코 저절로 찾아오지 않았다. 진정한 준비는 시작과 동시에 이루어지며, 따뜻한 응원은 대개 용기 내어 첫 발을 내디딘 이에게 주어지는 법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기다린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사실은 한참을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여전히 모든 변모에 능숙한 사람은 아니다. 때로는 주춤거리고, 때로는 다시 익숙함의 유혹에 흔들린다. 그럼에도 이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로 굳게 결심했다. 나의 망설임도, 나의 두려움도 모두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소중한 일부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것들마저 끌어안고 함께 나아가야만, 나는 결국 이 자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과거의 나를 부정하지 않고,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변화의 시초였다. 나는 여전히 나였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다.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간절하게 만들었고, 다시는 그 자리에 머물 수 없다는 인식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과거의 안락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에, 나는 오직 앞으로만 걸을 수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서툴지만 분명하게 나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그 길은 때로는 가시밭길 같았고, 때로는 안개 낀 미로 같았지만, 분명히 나의 발자국이 새겨지는 길이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

변화를 두려워하는 마음, 그 깊은 곳에는 수많은 '만약(if)'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며 용기를 갉아먹는 유령들 같았다.


“만약 실패하면 어쩌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면?”


“만약 내가 새로운 도전을 했을 때, 모두가 나에게 등을 돌리면? 세상이 나를 외면하면?”


“만약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책임이 주어진다면?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그 모든 불안하고 허구적인 '만약'에 나는 오늘, 한 가지 간결하고 단호한 대답을 건넨다. “그래도 해보자.”


익숙함을 벗어던지는 일은 두려움과 기꺼이 손을 잡는 일이다. 두려움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그것을 동반자 삼아 나아갈 수는 있다. 손끝이 떨려도, 무릎이 후들거려도, 떨리는 그 손으로 문을 열 수 있다. 오늘 내가 바꾼 것은 마음의 방향이었다. 과거를 향해 굳게 닫혔던 마음을 미래를 향해 아주 조금 틀어놓은 것. 그 한 가지 변화가 내 삶 전체의 풍경을 놀랍도록 다르게 바꾸어 놓았다. 방향타를 돌리자마자 배 전체의 항로가 바뀌는 것 같았다. 놀라운 풍경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 알아봐 주지 않으면', '내가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다고 여겼던 마음의 구조를 의심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누군가의 칭찬이나 보상 때문이 아니라, 그저 내가 하고 싶어서 움직였던 순간들이 오래 남았다. 잘하려고 애쓴 것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였던 기억들이 훨씬 더 생생했다. 삶을 오래 버티게 하는 힘은 외부보다 내 안에 있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걸 "자기 결정성 (Self-Determination)"이라고 부른다. 진심은 늘 내 안에 있었고, 방향도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타인의 기준에 길들여지며 내 안의 자율성, 가능성, 그리고 관계에 대한 믿음을 스스로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나에게 묻고,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 그 작은 복원이 움직임의 시초였다. 누구의 응원도 아닌, 내가 나를 믿기로 한 순간부터 삶은 조금씩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당신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자리가 점점 답답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그 익숙한 공간이 편안함이 아닌 갑갑함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괜찮다.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 누구나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머뭇거리고, 주저하며, 변화를 두려워한다. 중요한 것은, 멈춰 있되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불편함과 불안감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용기의 시초이다.


익숙한 것을 떠나는 일은 '더 나은' 무언가를 찾기 위한 표면적인 여정이 아니다. 그것은 잃어버렸던 당신 자신을, 당신의 본질적인 욕구와 잠재력을, 그리고 진정한 당신의 삶을 되찾기 위한 가장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발걸음이다. 먼지를 뒤집어쓴 보물을 찾아내는 것처럼, 당신 내면의 빛을 다시 발견하는 과정이다.


너무 완벽하게 시작하려 애쓰지 않아도 좋다.


숨이 조금 더 쉬어지는 방향, 마음이 아주 조금 가벼워지는 쪽으로 한 걸음만 옮겨도 충분하다.


언젠가 달라지고 싶다면, 오늘이 바로 그 ‘언젠가’일 수 있다.

당신이 기다리던 누군가가 아니라, 당신이야말로 그 시작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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