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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거리》

36편 - 시냅스를 건드린 감정의 여운

by 정성균

타인의 무심한 말 한마디가 촉발하는 내면의 미세한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탐색하고, 신경학적 개념인 시냅스를 매개로 감정이 전달되고 증폭되는 과정을 문학적으로 풀어내며, 인간관계 속에서 언어가 지닌 파급력과 그 잔여 감각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감정의 흔들림은 조용히 시작된다

그날의 대화는 평범했다. 적어도 겉보기엔 그랬다.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창밖 느티나무 잎사귀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카페 테이블 위로 투박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마주 앉은 친구는 뜨거운 아메리카노 잔을 한 손에 쥐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컵을 멍하니 바라보던 친구가, 느닷없이 지난 일을 꺼냈다. “그때 너도 좀 그랬잖아.” 무심하게 던져진 그 한마디는 마치 예리한 비수 같았다. 그 말끝은 살짝 무뎠고, 흔들림 없는 표정은 어떤 의도도 읽히지 않는 백지장 같았다. 하지만 그 한 문장이 마음 안쪽을 찔렀다. 잊고 지낸 줄 알았던 기억들이 움찔했고,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미세한 반응이 시작됐다.


이미 오래전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두었던 장면들이 몸 안 어딘가에서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가슴 안쪽에서 작은 진동이 일었고, 그 진동은 한동안 사그라지지 않았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심장이 미세하게 박동하는 소리가 귀를 울리는 듯했고, 손끝에서는 아주 희미한 떨림이 감지됐다. 눈은 분명 친구를 향해 있었지만, 시선은 이미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돌아가 있었다. 마치 낡은 영사기가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오래된 필름을 돌리듯, 잊혔던 감각들이 되살아났다. 목 안이 살짝 조여 오는 듯한 느낌, 숨을 쉬는 것이 전보다 조금 더 의식되는 불편함. 이 모든 것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는 겉모습과는 달리, 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격렬한 변화의 신호였다.


보이지 않는 회로, 시냅스의 작용

감정은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저 작용할 뿐이다. 그 반응은 언제나 신속하며, 그에 대한 설명은 늘 한참 뒤에 찾아온다. 나는 왜 그 한마디에 얽매였는지 스스로도 잘 모른다. 왜 하필 친구의 무심한 언급에, 나는 이토록 격렬하게 반응하는가. 다만 확실한 건, 어떤 회로가 가동되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 회로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잠자고 있었던 듯하다. 어떤 날은 같은 말에도 흔들림 없이 웃어넘길 수 있었고, 어떤 날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감정은 축적되지 않는다. 그저 반응만이 남을 뿐이다. 그 반응은 무언가를 통과해 오는데, 나는 그것을 시냅스라고 부른다. 시냅스란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사이 또는 신경세포와 다른 세포 사이에 신호를 전하는 작은 연결 부위를 말한다. 뇌 속에서 정보가 오가는 핵심 통로이며, 우리의 생각, 감정, 기억 등이 시냅스의 활동을 통해 형성되고 전달된다.


시냅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감정은 그 보이지 않는 통로를 따라 움직인다. 때로는 상대의 말투 하나, 아주 미세한 호흡의 변화 하나, 표정의 느린 움직임 하나가 그 시냅스를 자극할 때가 있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어쩌면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감정은 시작된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내 마음은 흐트러졌다. 화가 난 것도 아니었고, 슬픈 것도 아니었다. 다만 설명할 수 없는 긴장이 안쪽에 감돌았다. 일상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지만, 내면의 생각은 자꾸 그날의 대화로 되돌아갔다. 밤늦게까지 홀로 앉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거나, 아무 말 없이 혼자서 그 감정을 정리해보려 애썼다. 당신도 그런 순간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아무도 모르게 내 안에서만 요동치던 파동의 순간들 말이다.


감정은 때로, 시간을 거쳐 이해된다

‘내가 왜 이 말에 반응했을까.’ 이 질문은 밤낮없이 반복되었고, 답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으려 애썼지만, 감정의 기원은 늘 모호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면의 파동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마치 수면에 던져진 돌멩이가 일으킨 잔잔한 물결이 시간이 지나면서 고요해지듯, 내 안의 진동도 점차 미약해졌다. 하지만 그 흔적은 선명하게 남았다. 그것은 그저 지나간 일로만 남겨둘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 현재의 감정이었고, 지금의 내가 반응한 것이었다. 이전과는 다른 상태, 다른 마음이었기 때문에 반응도 달라졌을 뿐이다.


처음에는 그저 기분이 조금 나빠졌다고만 생각했다. 불쾌함이라는 얇은 막으로 덮어두면 될 줄 알았다. 며칠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그 감정 속에 내가 외면당했고, 나의 존재가 가볍게 여겨졌다는 인식이 숨어 있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감정은 항상 즉시 해석되지 않는다. 어떤 감정은 시간이라는 여과지를 통과해야 비로소 제 얼굴을 온전히 드러낸다. 감정의 본질을 깨닫기까지는 이처럼 미묘한 시차가 존재했다. 그 시차 속에서 감정은 숙성되고, 비로소 나는 그날의 내 마음이 왜 그토록 흔들렸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감정 재경험(emotional reactivation)"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괜찮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일이 어느 날 갑자기 다시 돌아와 마음을 흔들 때가 있다. 혹은 지나간 얼굴이 특정 말투와 함께 불현듯 떠오를 때, 오래전에 지나간 일이면서도, 여전히 현재의 감각 속에 살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지금 이 감정이 바로 그 증거다. 지금의 내가, 지금의 이 시점에서 새롭게 반응하는 것이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다르기에, 같은 자극에도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일 뿐이다. 이 깨달음은 나를 더욱 신중하게 만들었다. 말을 고를 때, 때로는 침묵을 마주할 때, 상대의 마음을 내가 결코 온전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작은 말 한마디가 만드는 파장

누군가의 시냅스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람 사이의 간격이다. 가깝게 다가가고 싶지만, 그 마음의 깊이까지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간격. 서로의 반응을 예측할 수 없기에, 우리는 조심하고, 때로는 멈추고, 또 때로는 기다리게 되는 그 간격. 언젠가 나는 친구의 무심한 말투에 상처받았지만, 동시에 나의 무심한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깊은 울림으로 남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간격은 때로는 우리를 불필요한 상처로부터 보호하기도 한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런 간격 덕분에 우리는 아주 작은 연결에도 마음이 움직이는 섬세함을 지닐 수 있게 된다.


시냅스는 마음의 작은 다리 같았다. 말이라는 파장이 그 다리를 건널 때, 그 짧은 간극에서 감정이 번쩍이는 순간이 있다. 빛처럼 빠르고, 때로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가지만, 그 흔들림은 오래도록 남는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은 수많은 시냅스로 연결된 거대한 우주 같고, 그 우주 속에서 말 한마디는 별똥별처럼 예측 불가능한 궤적을 그리며 지나간다. 때로는 찬란한 빛을 남기고, 때로는 깊은 어둠을 드리우기도 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아 떨림을 주었던 날들이 있다. 그날의 구체적인 언사는 잊었지만, 그 말이 지나간 감각은 여전히 기억 속에 선명하다. 무심한 듯 스쳐 지나쳤지만, 그 말은 내 안 어딘가를 스치고 지나갔고, 그 흔들림은 오래도록 가슴속에 남아있었다. 시냅스는 순간적으로 반응하지만, 그로 인해 촉발된 감정은 천천히 가라앉는다. 그 잔류하는 감각은 때때로 나를 바꾸고, 내가 내뱉는 말의 무게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누군가의 시냅스를 건드린 적이 있다

그리하여 다시 조심한다. 상대의 언사가 나를 어떻게 흔들 수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기억하기에, 내가 건네는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의 시냅스를 건드린 적이 있다. 의도하지 않았고, 그 자리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대화가 이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그 사람이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 말이, 계속 아프더라.” 그 한마디는 나에게 통증이 되어 돌아왔다. 나는 그 말을 되돌릴 수 없었다. 이미 내뱉어진 말은 허공으로 흩어졌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깊이 박혔던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말 한마디를 내뱉기 전 망설이는 사람이 되었다. 단어 하나, 어조 하나에도 신중을 기하게 된 것이다. 그 조심스러움이 언젠가는 더 깊은 연결로 이어진다. 불필요한 언사로 관계를 어지럽히기보다, 때로는 느린 침묵이 관계를 굳건히 지키기도 한다. 그것은 말이 아니라, 언어 사이의 미묘한 결을 배워가는 시간이다. 관계는 직선이 아니라 곡선처럼 이어진다. 빠르게 달려가다 멈추고, 다시 돌아와 천천히 걷는, 예측 불가능한 흐름 속에서 말이다.


어쩌면 오늘 내가 무심코 꺼낸 말 하나가 누군가의 시냅스를 자극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람은 지금 아무렇지 않게 내 앞에 앉아 있지만, 속으로는 나처럼 어떤 한 장면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관계는 그런 방식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언어가 아니다. 언어가 지나간 감정이다. 그 흔들림 안에서, 마음은 아주 작게 바뀐다. 그리고 그 미세한 변화들이 쌓여, 우리는 조금 더 섬세하고 깊이 있는 관계를 맺어갈 수 있게 된다. 타인의 시냅스를 존중하는 마음,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배려일지도 모른다.


관계는 말이 아니라, 말과 말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 아래에는 훨씬 더 크고 복잡한 감정의 덩어리들이 숨겨져 있다. 말의 선택, 목소리의 높낮이, 찰나의 눈빛, 그리고 무엇보다 말과 말 사이의 침묵. 이 모든 비언어적 요소들이 합쳐져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메시지가 전달된다. 어떤 때는 상대의 길고 긴 설명을 듣는 것보다, 짧은 한숨이나 고개를 끄덕이는 작은 동작 하나가 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진정한 관계는 논리적인 설득이나 화려한 수사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마음속 시냅스를 건드리는 미세한 파동을 감지하고, 그 파동에 공명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중 상당수는 머릿속에서 금세 사라지지만, 어떤 대화는 우리의 내면에 깊이 각인되어 감정의 잔여물을 남긴다. 그 잔여물은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우리의 행동과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관계는 단순히 두 사람이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로의 내면을 이해하고, 감정의 미묘한 결을 읽어내며, 때로는 침묵 속에서도 연결되는 깊은 교감을 의미한다. 이러한 교감은 언어의 표면적인 의미를 넘어선 곳에서 형성된다.


감정의 여운은 삶을 조금씩 바꾼다

감정의 여운은 때때로 우리 삶의 방향을 미세하게 틀어놓는다. 친구의 무심한 한마디가 내게 깊은 감정 재경험을 안겨주었듯이, 그리고 내가 내뱉은 말이 누군가에게 예상치 못한 아픔을 주었듯이, 우리는 서로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 영향의 대부분은 의식적인 판단이나 계획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시냅스의 연결을 통해 감정적인 파장이 전달되고, 그 파장이 잔류하며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조금씩 변화시킨다.


이러한 변화는 거창한 혁명이 아닐 수 있다. 그저 말을 할 때 한 번 더 멈칫하게 되거나, 상대의 침묵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게 되거나, 작은 미소에도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식이다. 이러한 섬세한 변화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타인과의 관계를 더욱 진솔하게 만든다. 감정은 순간적으로 발생하지만, 그 감정이 남긴 흔적은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 그 흔적은 우리의 내면에 스며들어 인격의 일부가 되고,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미묘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모두 감정의 시차를 안고 살아간다

혹시 당신도 그런 적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혼자서만 요동치던 감정의 날들. 그 말은 지나갔지만, 마음엔 오래 남아 있었던 시간들. 우리는 그런 기억을 하나씩 안고 살아간다. 타인의 무심한 한마디에 깊은 울림을 얻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경솔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이렇듯 복잡하고도 섬세한 감정의 파동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고, 관계를 맺고, 성장한다. 시냅스의 미세한 연결처럼, 우리의 마음도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엮여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이 관계를 조금 더 섬세하게 만드는 밑바탕이 되어준다. 우리는 모두 감정의 시차를 경험하고, 예측 불가능한 시냅스의 울림 속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당신의 마음속에는 지금 어떤 감정의 여운이 남아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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