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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거리》

43편 – 보여주는 나와 진짜 나 사이에서

by 정성균

내가 믿었던 나조차, 기록으로 쌓인 습관 때문에 어느새 보이는 모습에 익숙해진다. 가면을 오래 쓰면 그것이 진짜 얼굴인 줄 알게 되듯, 디지털 속 자아는 그렇게 자연스레 길들여진다. 디지털 자아는 현실 자아와 결합된 확장된 자아(extended self)의 일종이다. 마치 스마트폰이 우리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지듯, 온라인에서의 나는 현실의 나와 분리할 수 없는 확장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가상 공간에서 드러내는 나의 모습은 점차 내면화된 정체성으로 자리 잡는다. 이때 실제 경험보다 보존된 이미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기 쉽다. 삶은 어느덧 세밀한 기획이 되고, 진솔한 감정은 치밀한 연출로 변모한다. '이 장면은 올려도 괜찮을까?', '이 사진은 사람들의 반응이 좋을까?' 같은 고민이 스며드는 사이, 순간의 생생한 감각은 종종 사라져 버린다. 우리는 마치 인스타그램 필터처럼, 현실을 살짝 보정하고 가장 보기 좋은 부분만을 골라내 전시하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


보존되지 않아도 빛나는 찰나에 관하여

조용한 아침 햇살이 스며든 식탁 위 커피잔 한 장의 사진.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의 한 조각이었던 그 짧은 순간은, 렌즈를 통해 포착되고 필터를 입고 감성적인 캡션이 더해지는 순간, 누군가의 감정과 취향, 그리고 소중한 시간을 담은 하나의 서사로 거듭난다. 우리는 이제 살아가는 모든 장면에서 디지털 이야기를 발견하고, 또 창조한다. 사랑하는 이와 나눈 따뜻한 말 한마디, 퇴근길 하늘을 수놓은 붉은 노을, 읽다 덮어둔 책 속 한 구절, 심지어 손끝에 스친 미묘한 감정까지도. 이 모든 것이 흔적으로 남고 공유되는 순간, 더 이상 '개인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타인에게 읽히고 해석되며, 나아가 소비되는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디지털 속 자아, 가면의 삶을 살다

카메라가 켜지는 순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조금 더 바른 자세를 취하고, 조금 더 환하게 웃으며 말하게 된다. 이는 타인을 향한 꾸밈이자 예의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순간이 지나도 꺼지지 않는 '의식의 카메라'다. 이 카메라는 마치 꺼지지 않는 무대 조명처럼, 우리를 끊임없이 비춘다. 무대 위 배우처럼, 아무도 보지 않아도 계속해서 연기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 우리의 삶은 소리 없이 피로해지고 지쳐간다. 이런 피로감은 몸의 피로로만 설명되지 않고, 더 깊은 공허함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평가받는다는 느낌 속에서, 진정한 나의 모습은 점차 흐릿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젊은 세대에게서 두드러진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그들에게 온라인 공간은 현실만큼이나 중요한 삶의 영역이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둘러싸여 성장한 세대를 의미한다.) 그들은 타인의 인정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으려는 경향이 강하며, 이는 소셜 미디어의 '좋아요'나 '팔로워 수'와 같은 수치적 지표로 가시화된다. '좋아요'의 숫자는 때로 우리 마음의 체온계를 대신하기도 한다. 이 수치들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사람들은 더욱더 완벽하고 이상적인 모습만을 보이려 애쓴다. 완벽하게 계획된 하루, 완벽한 몸매, 완벽한 친구들과의 관계. 이러한 환상은 끊임없이 타인과의 비교를 유발하며, 결국 실제 삶에서는 불안과 박탈감에 시달리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이 경험한 것을 전시물로 만들지 못하면, 그 경험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극단적인 사고방식에 이르기도 한다.


연결의 그림자, 온라인 속 고독

디지털 흔적은 분명 우리를 연결하는 강력한 도구다. 지역과 시간의 제약 없이 이어지는 대화, 비슷한 관심사를 중심으로 생겨난 온라인 연결, 사회적 이슈에 반응하는 느슨한 참여. 온라인상의 표현물은 우리가 더 넓은 세상과 이어지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하지만 이러한 연결의 이면에는 깊은 고독이 숨어 있기도 하다. 우리는 수많은 친구를 맺고, 팔로워를 늘려가지만, 정작 내면의 깊은 고민이나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 역설을 겪는다. 온라인 관계망은 넓지만 얕은 경우가 많아, 진정한 유대감보다는 피상적인 관계에 머무르기 쉽다.


피드에는 온통 행복하고 완벽한 모습만이 가득하고, 이는 상대방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준다. '나는 왜 저렇게 완벽한 삶을 살지 못할까?'라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나만 이렇게 불행한 걸까?'라는 고립감을 느끼기도 한다. 전시된 이미지는 타인의 삶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완벽하게 꾸며진 그 모습 뒤에 숨겨진 진짜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이 간극 속에서 우리는 더욱더 외로워지는 아이러니를 마주한다. 실제 삶에서 마주하는 소소한 갈등이나 어려움, 불완전함은 온라인에서는 철저히 배제되기 때문에, 우리는 마치 자신만이 불완전한 존재인 양 느끼게 된다. 이는 자기 비난과 우울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보는 많아지는데, 마음은 비워지는 기분, 때로는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한다.


또한, 디지털 자료의 과잉 생산과 소비는 정보 피로도를 높인다. 우리는 매일 엄청난 양의 정보에 노출되고, 새로운 표현물을 끊임없이 찾아 헤맨다. 추천 알고리즘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시각 자료를 끝없이 제시하며, 우리는 마치 디지털 세계의 파도에 휩쓸린 듯 헤어나오지 못한다. 이는 우리의 뇌를 과부하시키고, 집중력을 저하시키며, 정신적 피로도를 높이는 원인이 된다. 끊임없이 자극을 추구하는 삶은 결국 내면의 평화와 고요함을 앗아간다. 결국 과잉 디지털 정보 시대의 특징은 ‘정보 홍수’와 ‘주의력 경제(attention economy)’의 이중 구조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오래 붙잡는 것이 곧 권력이 되는 시대를 뜻한다.) 우리는 ‘더 많이 보기’ 위해 정작 ‘덜 느끼는’ 삶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의 사고를 단편화하고, 깊이 있는 성찰의 기회를 빼앗는 부작용을 낳는다.


보존되지 않아도 빛나는 찰나에 관하여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반대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 세상에 디지털 메모로 남길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는 우리가 살아있다는 생생한 증거이기도 하다. 매일 새로운 이야기가 우리 안에 피어나고, 그것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이 말랑하고 부드럽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욕구는 인간 본연의 소통 욕구와 연결되어 있으며, 가상의 표현은 그 욕구를 실현하는 현대적인 방식인 것이다. 다만, 남겨지지 않는 순간들 역시 충분히 의미 있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보존되지 않는 그 찰나가, 나를 사람답게 만든다.


카메라가 꺼진 고요한 일상, 누군가에게 보이려 꾸미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장면들, 침묵 속에서 흘러가는 하루의 틈. 그 속에는 오롯이 '나'만의 삶이 고요하고 충만하게 흐르고 있다. 마치 조용한 아침 식탁 위의 커피잔처럼,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짧은 시간들이다. 아침에 눈을 떠 창밖을 바라보며 느끼는 평온함,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몰입하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나누는 진솔한 대화, 홀로 산책하며 만나는 자연의 경이로움, 읽던 책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삶의 지혜. 이 모든 순간들은 기록되지 않을지언정, 우리의 내면을 풍요롭게 하고 삶의 깊이를 더하는 진정한 경험들이다. 이 짧은 시간들은 오직 나 자신에게만 온전히 주어진 시간이며, 그 어떤 외부 평가나 판단에서도 자유롭다.


이러한 경험들은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서 자유롭다. 오직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시간이다. 우리는 이 비(非)디지털적인 시간 속에서 진정한 자기 자신과 마주한다.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생각을 정리하며, 내면의 평화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어쩌면 이처럼 '드러나지 않는' 찰나야말로 우리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자, 정신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치 고요한 음악의 여백, 어둠 속에 숨겨진 빛, 혹은 숨결처럼 나직한 삶의 흐름과도 같다. 우리는 이런 귀한 시간들을 통해 자신만의 내면 지도를 그려나가고,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며 성장한다.


주체적인 삶, 그리고 선택의 자유

결국 중요한 것은 '주체성'이다. 우리는 디지털 자료의 홍수 속에서 무작정 휩쓸려 가는 존재가 아니라, 가상의 표현물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다. 우리는 온라인 흐름에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전시된 이미지를 수용하고, 자신의 삶에 필요한 것을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물론, 디지털 정보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알리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며, 흥미로운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보여주기 위한' 강박 속에서 소비한다면, 우리는 점차 지치고 진정한 행복을 놓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내가 이 찰나를 남기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히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함인가, 아니면 이 소중한 경험을 나 자신과 공유하기 위함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삶의 방향성을 재정립하고, 온라인에서의 표현과의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자료는 우리의 삶을 반영하는 거울이 되어야지, 우리의 삶 자체를 규정하는 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끔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눈앞의 짧은 시간에 온전히 몰입하는 연습을 해보자.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대화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그 리듬에 몸을 맡기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는 것처럼. 보존되지 않아도 아름다운 찰나들을 의식적으로 찾아 나서고, 그 속에서 충만한 만족감을 느끼는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러한 순간들을 통해 삶의 진짜 가치를 발견하고,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디지털 세상의 소음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은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깨달음과 평온을 선사할 것이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지혜

이 세상이 디지털 이야기로 가득 찬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으로서의 우리는 저장되지 않는 감정, 설명되지 않는 울림, 사진으로 담기지 않는 깊이 있는 경험들을 품고 있는 존재다. 전시된 장면이 우리의 삶의 중요한 부분임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삶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보여주는 삶이 아니라, 살아내는 삶이 진정한 이야기여야 한다. 우리의 진정한 가치는 얼마나 많은 '좋아요'를 받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진정성 있는 삶을 살아내느냐에 있다.


그러니 가끔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오늘은 어떤 디지털 흔적을 만들었지?"가 아니라, "오늘은 어떤 마음으로 살았지?"라고.


우리는 여전히 삶의 조각들을 남기고 공유하지만, 그 모든 보존된 정보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은 남겨지지 않는 수많은 감정들을 품고 있는 '존재'로서의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감정이 빠르게 전시되고, 존재가 숫자로 계산되는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는 ‘보여주는 나’와 ‘살아내는 나’ 사이에서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다. 이것이 온라인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장 단단한 지성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은 그 자체가 가장 위대한 서사이며, 그 서사의 진정한 가치는 타인의 시선이 아닌, 우리 자신에게서 시작되는 내면의 풍요로움과 진정성에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삶을 살아낼 때, 그 자체로 우리는 가장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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