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편 -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삶의 활력을 줘
우리는 누구나 한때, 모든 짐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자유의 날을 꿈꾼다. 끝없이 밀려드는 일과 책임, 소중한 관계를 돌보며 숨 가쁘게 달려온 날들이었기에, 잠시라도 틈이 나면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고 싶다'는 말이 입안을 맴돌았다. 마치 내가 없어도 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갈 것이고, 내 자리는 금세 채워질 거라 생각했다. 그 모든 것의 끝에서야 비로소 진짜 '나'로 살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 은퇴 후에는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무한한 휴식과 자유가 가득할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정작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여유와 한가함이 찾아왔을 때, 예상치 못한 깊은 허전함이 밀려왔다. 아침에 눈을 떴지만, 몸을 일으킬 분명한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루는 시작되었지만, 나를 기다리는 일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고요함이 아니라 서늘한 허전함으로 밀려왔다. 마치 태엽이 풀린 시계처럼, 나는 멈춰 선 채 방향을 잃은 자신을 마주해야 했다. 째깍거리던 삶의 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고요함만이 남았다. '이제는 마음껏 쉴 수 있다'는 위로는 금세 색이 바랬다. 그 자리에 남은 건,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말 없는 체념뿐이었다.
무한히 길게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을 때, 저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할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제가 살아있다는 가장 명확하고 구체적인 증거라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바쁜 일상과 밀려드는 업무들이 사실은 저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기둥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일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이나 사회적 의무를 넘어, 우리의 존재 이유와 활력을 불어넣는 근원적인 힘입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배우고, 기여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끼고,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며, 삶의 의미를 재발견합니다.
할 일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주어지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삶의 활기를 잃는 것이며, 존재의 목적이 흐릿해지는 것과 다름없다는 뼈아픈 깨달음이었습니다. 주어진 시간이 많아졌지만, 더 이상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길고 고요했으며, 동시에 저를 조금씩 안으로 가라앉혔습니다. 그 시간은 허공 같았고, 손에 잡히지 않았으며, 점차 의미를 잃어갔습니다.
할 일이 없어지는 순간, 시간은 이전과 같은 감각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주어진 여백은 넓어지지만, 그 안을 채우는 방식은 낯설고 조용합니다. 그동안의 움직임이 멈추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시간은 한가롭기보다는 어딘가 어색하고, 가벼운 듯 묘하게 무게를 가집니다. 하루의 결이 바뀌고, 익숙하던 리듬은 사라지며, 존재의 밀도 역시 조금씩 변형됩니다.
결국, 저는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할 일이 있다는 것은 단지 시간을 쓰는 방식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잡는 방식이며, 저를 유지하는 동력이라는 것을요. 그 흐름이 끊겼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한가로움이 아니라 정체된 공기였고, 자유가 아니라 무력함이었습니다. 할 일을 가진다는 것은 단순한 바쁨의 문제가 아니라, 제가 오늘도 이 세상에 선명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조용한 선언이었음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삶은 늘 우리에게 의미를 묻고 있어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끔찍하고 비인간적인 강제수용소에서의 극한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이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낼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를 '의미'에서 찾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삶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의 통찰은 우리에게 삶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무언가를 묻고 있지. 그 물음은 때로는 도드라진 형태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지극히 작고 소박한 일상 속에서 조용히 말을 건넨다. 오늘 아침, 오랜만에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일, 혼자서 정성껏 식사를 준비하며 나 자신을 돌보고 건강을 지키는 일, 마당의 거슬리는 잡초를 묵묵히 뽑으며 하루를 살아내는 일. 이렇듯 작고 조용하며 때로는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삶의 은밀한 물음에 성실하게 응답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놀랍게도, 이러한 삶의 응답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결코 멈추지 않아. 오히려 삶의 연륜과 경험이 쌓일수록 그 응답은 더욱 단단하고 깊은 울림을 갖게 되지. 삶의 지혜와 통찰이 더해져, 우리는 더욱 본질적인 의미에 다가서게 돼.
의미는 젊음만의 특권이 아니다. 오히려 나이와 함께 깊어지고 풍성해진다. 내가 여전히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감동받는 순수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면, 누군가를 향해 따뜻한 마음을 내밀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이 남아있다면, 그리고 아직 세상에 전하고 싶은, 쓰고 싶은 한 문장이 있다면, 나는 여전히 온전히 살아있는 사람이다. 젊은 시절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삶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의미는 시간이 흐를수록 고유한 빛을 지닌다. 나이 듦의 시간 속에서 그것은 더 또렷하게 다가온다.
진정 성공한 이들이 멈추지 않는 이유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은 90세가 넘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평일마다 꼬박꼬박 사무실에 출근한다. 그는 매년 열리는 주주총회에서도 직접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기업 철학과 투자 원칙을 열정적으로 주주들에게 전파하지. 그의 오랜 사업 파트너였던 찰리 멍거 또한 99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기업 보고서를 읽고 세상의 거대한 흐름과 변화를 읽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은 더 이상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벌 필요가 전혀 없어. 그들에게 돈은 이미 차고 넘치는 것이었지. 하지만 '일'은 여전히 그들의 하루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중심축이었다. 워런 버핏은 자신의 삶의 원동력을 이렇게 표현했다.
“일은 내가 아침에 일어날 이유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 역시 기업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도, 아내와 함께 설립한 '게이츠 재단' 활동에 온전히 몰두하고 있다. 전 세계의 교육 문제와 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자선 활동을 펼치고 있지. 더 이상 부도 명예도 필요 없는 이들이 여전히 '할 일'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이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자신이 가진 능력과 시간을 통해 세상에 필요한 존재로서 역할을 지속하기 위함이지. 그들에게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행위를 넘어, 자신의 지식과 경험, 자원을 활용하여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의미 있는 행위 그 자체다.
이들은 삶의 깊이를 묻는 강력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아직 세상에 어떤 존재로 필요한가?”
“무엇이 당신의 하루를 다시금 의미로 가득 채우는가?”
이러한 심오한 질문 앞에서, '나이'는 결코 변명이나 한계가 될 수 없어. 삶은 여전히 우리를 끊임없이 부르고 있으며,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든 세상에 기여하고 의미를 찾기를 기대하고 있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제한하거나 주저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그들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나이 들어가는 시간은 지혜가 천천히 깊어지는 때이다
독일의 저명한 심리학자는 인간이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들어도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재설계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택(Selection)', '최적화(Optimization)', 그리고 '보상(Compensation)'의 세 가지 전략을 통해 만년의 삶이 더욱 정교하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이를 흔히 성공적인 노화 이론이라고 부른다.
선택(Selection): 만년에 접어들면 신체적, 인지적 능력이 자연스럽게 감소한다.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지. 이럴 때 우리는 과거처럼 모든 일을 다 해내려고 하기보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목표와 활동을 현명하게 선택하게 된다. 즉, 제한된 자원을 가장 가치 있는 곳에 집중하는 거야. 예를 들어, 젊었을 때는 다양한 스포츠를 즐겼지만, 만년에는 특정 운동 하나에 집중하여 깊이를 더하는 식이지.
최적화(Optimization): 선택된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남아있는 자원과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개발하는 과정이다. 예전처럼 물리적으로 모든 일을 다 하지 못하더라도, 더 깊이 몰입하고 집중하며 질적인 향상을 꾀한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여러 권의 책을 빠르게 읽었다면, 이제는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더 깊이 이해하고 음미하는 데 시간을 쓰는 방식이다. 혹은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더욱 강화하여 해당 분야에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지.
보상(Compensation): 인생의 후반부에서 발생하는 능력의 부족이나 손실을 다른 방식으로 보완하는 전략이다. 부족한 체력은 충분한 휴식과 규칙적인 운동으로 보완하고, 약해진 기억력은 메모를 하거나 디지털 기기의 도움을 받아 보완하는 식이다. 익숙한 경험과 지혜를 활용하여 새로운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삶의 균형과 무게를 다시 조절하고, 여전히 능동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나이 들어가는 시간은 마치 잘 숙성된 와인처럼, 지혜가 천천히 깊어지는 과정이다. 덜 하지만 더 정직하게, 천천히 그러나 깊게 삶에 몰입하게 된다. 그 시간은 내 안에서 오래도록 숙성되고, 그만의 결을 따라 흐른다.
삶의 부름은 나이를 넘어 계속돼
한 사람의 하루가 온전히 지속되고 의미를 가지려면, 그를 침대에서 일으켜 세우고 움직이게 만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는 인간의 행동과 동기 부여 이면에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라는 핵심적인 심리적 요소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자기 효능감이란, 특정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의미하지. 스스로를 '나는 아직 해낼 수 있다'라고 굳건히 믿는 이 감각은,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고 활력을 유지하게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인생의 후반부에도 내가 여전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쓸모 있는 존재라는 확고한 믿음, 내가 내 하루를 스스로 돌보고 관리할 수 있다는 강한 감각은 단지 개인의 자존감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아. 그것은 삶 전체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지속시키는 강력한 정서적 근력과도 같지. 이 근력이 약해지면 우리는 쉽게 무기력해지고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비록 아주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일지라도, 그 일을 해내는 동안 우리는 다시 온전한 '나 자신'이 된다. 스스로 밥을 차려 먹고, 매일 하루 한 페이지씩이라도 꾸준히 책을 읽고, 길을 걷다 무심코 마주친 길가의 풀 한 포기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 순간조차도, 삶을 굳건히 붙잡고 놓지 않는 소중한 기술이 된다. 이러한 작은 행동들이 모여 우리의 자기 효능감을 강화하고, 삶에 대한 통제감을 느끼게 해 주며, 결과적으로 우리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작은 할 일들이야말로 삶의 의미를 채워주는 소중한 조각들이지.
우리는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자연스럽게 '비워내는 일'에 익숙해진다. 오랫동안 간직했던 집 안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때로는 더 이상 의미 없는 관계를 정리하며 사람들과의 적절한 거리를 정돈하기도 하지.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이별의 순간들을 차분히 준비해 나간다. 그러나 단순히 비워내는 것만으로는 삶이 온전히 완성될 수 없어. 그렇게 비워진 공간에 다시 새로운 의미가 깃들고 채워져야만, 우리의 하루는 다시 생명력을 얻고 활기를 띠게 된다. 텅 빈 공간은 잠시의 고요함을 줄 수 있지만, 결국 공허함으로 이어질 수 있지.
의미 있는 일은 늘 대단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조용한 반복 속에서 더 단단해지곤 한다. 오랜만에 만난 누군가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 주며 따뜻하게 불러주는 일, 지난 계절의 아름다웠던 추억이 담긴 사진첩을 다시 꺼내보며 미소 짓는 일, 조용히 차 한 잔을 마시며 복잡했던 마음을 차분히 다독이는 일. 이렇듯 소소하고 평범하지만 깊은 의미를 지닌 행동들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들을 다시금 새롭게 마주하게 된다. 이 모든 작은 행동들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우리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거야.
나는 아직 다 쓰이지 않았다. 세상에 전하고 싶은, 쓰고 싶은 한 문장이 아직 내 안에 남아있고, 누군가에게 따뜻하게 전하고 싶은 진심 어린 마음이 여전히 내 가슴속에 남아 있다면, 그건 분명 삶이 나를 아직도 끊임없이 부르고 있다는 명확한 신호다. 매일 한 번쯤은 이런 확신에 찬 생각이 나를 찾아온다.
“나는 아직, 삶의 활기 속에 온전히 존재한다.” 그래. 나이가 들어도 우리에게 주어진, 혹은 우리가 찾아야 할 '할 일'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결코 끝나지 않는 여정이지.
그리고 나는 그 여정에서, 아직 단 한 발짝도 멈추지 않았다.
92세에 박사가 된 한 여성, 삶은 여전히 우리를 부르고 있다
나이는 더 이상 한계를 말해주는 숫자가 아니다. 92세, 이상숙 박사의 삶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2023년 7월 16일, 1931년생으로 당시 92세였던 이상숙 박사는 성공회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회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며 국내 최고령 박사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1961년 숙명여대 가정학과를 졸업한 지 57년 만인 2018년, 87세의 나이로 성공회대 석사 과정에 입학하여 2년 만에 졸업한 뒤, 다시 박사 과정에 도전하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었지. 그녀는 단순한 학업의 성취를 넘어, 과거 완구제조회사를 30년간 운영하고 여성경제인협회장, 숙명여대 총 동문회장 등을 역임하며 사회에 활발히 기여해 왔다. 대통령 표창과 석탑산업훈장 수상 이력은 그녀의 삶이 얼마나 다채롭고 열정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쉴 틈 없이 일하다 쉬고 싶어서 공부를 다시 시작했는데 즐거움을 느껴 버렸다"라고 고백하며,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책까지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90대에도 멈추지 않는 배움과 기여에 대한 열망이 이상숙 박사의 삶을 통해 빛나고 있는 것이다. 사업가, 교육자, 여성 리더로 살아온 이력에 더해, 고령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공부에 도전한 그녀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지금 어떤 가능성 앞에 서 있나?” 삶은 여전히 우리를 부르고 있다. 나이는 그 부름에 응답하지 못할 이유가 될 수 없어. 아직 쓰지 않은 문장이 남아 있다면, 아직 끝나지 않은 할 일이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이다. 오늘 당신은 어떤 할 일 앞에 서 있나요? 지금 당신을 부르고 있는 삶의 목소리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