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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거리》

45편 - 남들과 똑같이 사는 게 정답은 아닐 것이다

by 정성균

빛이 따가운 날, 마음의 그림자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오는 창가에서도 그 빛이 따갑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아침을 깨우는 커피의 향긋함 대신, 이유를 알 수 없는 묵직한 지침이 먼저 밀려오는 날.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생각은 하나다. "다들 너무나 잘 살아가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렇게 길을 잃은 기분일까?" 지난 주말, 모처럼 만난 오랜 친구는 은퇴 후 귀농을 준비하며 새로운 삶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 숙원을 풀어내는 듯한 해방감과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이 역력했다. 얼마 전 참석했던 동창 모임에서는 한때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이가 예상치 못한 직책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단순히 직급이 높아진 것을 넘어, 그가 그간 쌓아온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 같았다. 또 다른 친구는 자녀들이 모두 독립하고 난 후, 비로소 자신만의 시간을 찾아 꿈에 그리던 세계 일주를 떠났다고 했다. 그들의 삶은 마치 잘 짜인 시나리오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듯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거대한 흐름 속에 있었고, 나만 그 격류에 발을 담그지 못한 채 낡은 둑방 위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삶의 속도가 유독 빠르게 느껴지는 날이면, 나는 더욱 초라해졌다.


내가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은 좀처럼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 사회가 은연중에 제시해온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 있다는 자각은, 종종 나를 걷잡을 수 없는 불안감 속으로 밀어 넣었다. 젊은 시절에는 '이 나이쯤엔 학위를 마치고', '이 나이쯤엔 가정을 이루고', '이 나이쯤엔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있었다면, 중년이 된 지금은 그 압박이 더욱 교묘하고 은밀한 형태로 변형되어 나를 옥죄었다. '이 나이쯤엔 모든 걸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이제는 자신만의 확고한 자리를 굳혔어야 한다', '남아있는 생은 더 이상 무모한 도전을 할 때가 아니다'라는 묵은 기대와 사회적 시선들이 겹겹이 쌓여 나를 짓눌렀다. 어떤 방향으로든 나아가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리면서도, 정작 어디로도 움직이지 못하는 무기력감이 발목을 잡았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서늘하고 근원적인 두려움으로 다가온 것은 바로 이 질문이었다. '나는 진짜 나로 살고 있는 걸까?' 그 물음은 마치 오래도록 굳게 닫혀 있던 내면의 문을 흔들어 깨우는 듯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듯 평온했던 일상 속에, 사실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조용히 틈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틈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고,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감정들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삶이란 어쩌면 그런 미세한 틈 사이로 진정한 질문이 스며들어오는 시간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때 깨달았다. 그리고 그 질문은 나의 삶을 근본적으로 되짚어보는 길고 험난한, 그러나 반드시 거쳐야 할 여정의 시작이었다. 이제까지의 삶이 내가 아는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예감. 그것이 내 안에서 새로운 지도를 펼쳐 들게 했다.


지도는 있었지만, 길은 없었다

나의 삶은 언제나 '정해진 수순'이라는 견고한 틀 안에서 흘러왔다. 어린 시절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나는 주어지는 규칙에 순응하고, 기대에 부응하며, 실수 없이 다음 단계를 밟아나가는 것이 안전하고 올바른 삶의 방식이라 굳게 믿었다. 교육 과정을 착실히 이수하고, 소위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는 것,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워 독립시키는 것, 그리고 은퇴를 준비하며 노년을 설계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은 사회가 암묵적으로 제시하는 견고한 지도와 같았다. 나는 그 지도를 충실히 따랐고, 그 덕분에 겉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는,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비쳤을지 모른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늘 평균 이상을 지향하며, 사회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개인상에 부합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하지만 그 견고한 안정감 속에는 늘 억압된 감정 하나가 그림자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바로 '나의 본모습'을 뒤로한 채 타인의 기대에 맞추려 애쓰는 동안, 나 자신이 나로부터 점점 멀어졌다는 사실이다. "그 정도면 괜찮은 삶이지", "남들 다 그렇게 사는 거야", "이제 와서 뭘 바꾸겠다고"라는 주변의 위로는 언뜻 타당하게 들렸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거울 속 내 얼굴은 분명 나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낯설었다. 그 얼굴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좇기보다, 사회가 권장하는 길, 다수의 사람들이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걸어온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했다. 한때 가슴 깊이 품었던 열정이나 막연한 동경이 떠올랐다가도, 곧 '현실성 없는 이야기', '이 나이에 무슨 객기'라는 자조적인 생각으로 스스로 그 가능성의 싹을 잘라버리기 일쑤였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나중에 해도 늦지 않는다'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했지만, 사실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용기 없음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했다. 나는 내가 만든 거짓 위로에 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분명 숨 쉬고 살아 있었지만,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시간들이었다. 내 삶의 포장지는 화려하고 견고했으며, 외부의 시선으로 보기엔 완벽해 보였다. 그러나 그 안의 내용물은 점점 비어갔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고, 그들의 시선에 나를 가두다 보니,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결은 점점 흐릿해져 갔다. 마치 정교하게 깎아 놓은 조각품의 섬세한 질감이 오랜 시간 속에 마모되듯, 나의 감정은 무뎌지고 나의 욕망은 깊은 침묵 속에 잠겨들었다. 나는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에서 한참 멀어진 채, 오직 타인이 짜놓은 시간표 위에서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수십 년간 쌓아온 익숙한 삶의 방식은 편안했지만, 동시에 나를 옭아매는 거대한 감옥과도 같았다.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삶의 안정감은, 실은 나의 본질적인 욕구와 감정을 억압하는 대가로 얻어진 것이었음을. 이 뒤늦은 깨달음은 나를 더욱 깊은 성찰의 길로 이끌었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침묵의 용기, 고요한 전환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쉼 없이 달려가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홀로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서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다. 익숙한 대열에서 벗어나 내가 선택한 낯선 길로 들어설 때의 고독감은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졌다. 주변 사람들은 나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궁금해했고, 때로는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나의 결정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 어쩌면 나이 들어 객기를 부리는 무모한 고집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뒤따르기도 했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데 왜 갑자기 그래?", "그렇게 해서 대체 뭐가 남는다고 그래?", "나이 생각은 해야지"와 같은 질문들 앞에서 나는 이따금 설명을 포기했다. 구구절절 나의 내면을 설명하는 것이 때로는 구차한 변명처럼 들릴까 봐, 혹은 나의 진심이 온전히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직감 때문이었다. 때로는 텅 빈 공간에 혼자 서 있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 침묵은 분명 외로움과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침묵은 나를 가장 깊고 단단한 내면과 마주하게 하는 귀한 시간이기도 했다. 타인의 이해를 굳이 구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세상의 소음이 사라진 그 고요하고 침묵하는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사회가 그려준 견고하고 획일적인 지도가 아니라, 내가 손으로 더듬어 그려낸 나만의 지도를 따라 걸어갈 때 느끼는 감정은 참으로 복합적이었다. 미지의 길을 향한 막연한 불안감과 동시에, 오롯이 나 스스로의 힘으로 길을 개척하고 있다는 뿌듯함과 해방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낯선 길 위에서 문득 나만의 감각이 깨어나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나의 새로운 면모를 자각하는 순간들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것은 마치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세포들이 깨어나 생동하기 시작하는 듯한, 혹은 흙먼지 속에 묻혀 있던 보석이 빛을 발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나의 내면에 이토록 많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남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아니면 또 다른 예상치 못한 미로가 펼쳐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는 여전히 두려움을 주지만, 이제는 그 두려움마저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의 진정한 감정에 충실할 수 있다. 이것은 결코 작지 않은, 아니 어쩌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성취였다. 누구에게도 굳이 설명하거나 이해를 구할 필요 없이, 내가 내 삶의 방향을 오롯이 나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자각. 그것이 때로는 길을 잃은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을 안겨주더라도, 삶의 가장 깊은 안쪽에서 나를 지탱해주는 견고한 힘이 되어준다. 나는 이 시간을 통해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삶은 완벽하게 짜여진 각본대로 흘러가는 서사가 아니라, 불완전하고 예측 불가능하지만, 오롯이 나 스스로가 한 문장 한 문장 써 내려가는 나만의 고유한 이야기라는 것을. 나의 이야기는 세상의 잣대나 타인의 시선으로는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오직 나만이 이해하고 간직할 수 있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때로는 좌절하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정답 없는 삶, 고유한 문장으로 살아가기

삶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수없이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내가 지금 가는 이 길이 맞는 걸까?', '내가 내린 이 선택은 옳은 걸까?'. 그리고 놀랍게도, 그 질문은 어떤 확고한 확신으로도 완전히 잠재워지지 않는다. 삶에는 명확한 정답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정리하고 싶었고, 내 삶의 모든 불확실성을 제거하여 안정적인 틀 안에 가두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지럽고 불완전한 상태 그대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불안정함 속에서도 균형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삶의 본질임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 것이다. 삶은 학교 시험처럼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탐색하고 자신만의 길을 발견해가는 위대한 모험이다. 그 모험 속에서 정답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깊은 곳에서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다. 과정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은 나에게 커다란 자유를 안겨주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빛깔과 질감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 모두가 똑같은 그림을 그릴 필요는 없다. 다른 속도로 나아가고, 다른 모양으로 자신을 빚어내며,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존재들이 많다는 사실은 오히려 삶을 더 풍요롭고 다채롭게 만든다. 사회가 맹목적으로 제시하는 성공의 정의나 행복의 기준에 억지로 나를 끼워 맞추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더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이나 세상의 통념이 아니라, 내가 지금 어디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 길이 나의 내면에 어떤 진정한 감정과 울림을 남기는지이다. 나에게 진정한 의미와 기쁨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색하는 과정 자체가 삶의 가장 큰 선물이다. 다른 이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대신, 나만의 흔적을 남기는 용기가 필요하다.


스스로 선택한 삶은 때때로 거칠고 예측 불가능하며 불안정할 수 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 위에서는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좌절감을 맛볼 수도 있다. 때로는 길을 잃은 듯 막막하게 느껴질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길 위를 걷는 발걸음만큼은 그 무엇보다 진짜이며, 그 어떤 포장도 필요 없는 순수한 움직임이다. 그 발걸음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세나 외부의 인정을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나의 진정한 욕망과 의지가 담긴 고유한 움직임이다. 그리고 그 진실한 발걸음이야말로, 내가 나로서 온전히 살아가고 있다는 가장 분명하고도 아름다운 증거가 된다. 이 깨달음은 나에게 다시 살아갈 힘과 의미를 주었다.


"정답이라는 단어에 목숨을 걸지 않게 된 순간, 나는 진짜 나를 만나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안다. 삶은 단 하나의 정해진 길이 아니며, 수많은 가능성과 선택지 앞에서 끊임없이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러니 누구의 삶도 같지 않다는 사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그 다름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결로 빚어진 삶을 살아간다. 흐트러진 문장도, 비워진 페이지도 괜찮다. 당신이 멈춰 선 자리에서도 이야기는 계속되고, 한 줄 한 줄 적어내는 그 문장이 곧 당신의 삶이 될 것이다.


조금 더디더라도, 남들과 다르더라도,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선택한 길 위에서 쓰이고 있는 문장이라면 충분하다. 설명할 수 없어도 괜찮고,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다. 그 문장은 누군가의 잣대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로 완성되어가고 있으니.


정해진 결말이 없기에, 삶은 언제나 다시 시작될 수 있다.


당신만의 문장으로, 오늘도 그렇게 살아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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