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立秋)가 지나고, 처서(處暑)도 저만치 물러났다. 절기에서는 더위가 한풀 꺾인다고 말하지만, 올해의 기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기상청은 최근 ‘1개월 기후 전망’을 통해 오는 9월에도 고기압의 영향이 이어져 평년보다 높은 기온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절기와 현실의 어긋남은 삶과 닮아 있다. 물러날 때가 되었음에도 쉽게 물러나지 못하는 것들. 더위처럼 감정도 한순간에 식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에는 물러서며 다른 계절을 불러온다. 거절도 그와 다르지 않다. 때가 되면 배워야 하는 삶의 기술이다.
나는 자주 생각한다. 거절은 끊어내는 말이 아니다. 오늘의 “아니요”가 내일의 “예”로 이어지려면, 지금 잠시 멈추어 둘 자리가 필요하다. 거절은 끝맺음이 아니라, 다시 만남을 위한 조용한 약속이 된다.
다정한 물러남이 관계를 지킨다
살다 보면 수많은 요청과 부탁이 다가온다. 어떤 것은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어떤 것은 물러서야 한다. 모든 것을 수용하면 자신이 지치고, 모든 것을 막아내면 관계가 흔들린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다정한 물러남이다.
회사에서 동료의 제안을 거절해야 할 때가 있다. 무심한 말투로 잘라 말한다면 관계는 금세 닫히고 만다.
“이번엔 어렵습니다.”
동료의 표정이 굳는다.
“대신 다음 기회엔 꼭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짧은 대화 안에 거절과 존중이 함께 담긴다. 같은 “아니요”라도 표현의 결은 달라지고,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존중이 스며든 거절은 오히려 신뢰를 깊게 만든다.
나도 그런 순간을 여러 번 겪었다. 회의 자리에서 이미 마음은 거부를 말하고 있었는데, 입술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밤, 오래도록 마음이 눌려 있었다. 말하지 못한 한마디가 그렇게 오랫동안 무거운 그림자로 남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친구 관계에서도 거절은 필요하다. 모든 약속에 억지로 응하는 것보다,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전하는 편이 관계를 오래 지킨다.
“오늘은 함께하기 힘들어.”
잠시 고요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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