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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움과 생활을 같은 리듬으로 살고 있는가?

by 정성균

계단과 층계참


인생은 하나의 계단을 오르는 여정과 같다. 누구나 위를 향해 발을 옮기지만, 허벅지에 묵직한 무게가 느껴질 때쯤 어김없이 층계참이 나타나 우리의 행보를 붙잡는다. 그 지점에 서면 비로소 지나온 궤적과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이 한눈에 들어왔다. 잠시 가쁜 호흡을 고르며 스스로에게 깊은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다.


‘지금까지의 행로는 올른가?’


‘다음 선택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세상은 끊임없이 더 빠른 속도를 요구한다. 하지만 사람의 보폭은 언제나 일정하지 않았다. 확고하다 믿었던 가치가 빛을 잃고 익숙한 경로마저 낯설어질 때, 마음은 좌표를 잃고 나부꼈다. 하지만 그 시기는 실패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가능성을 살피라는, 잠시 숨을 고르라는 삶의 다정한 신호가 아니었을까. 층계참은 바로 그런 사유의 자리를 우리에게 기꺼이 내어주는 공간이다.


걸음을 멈춘 사람들


성과를 향해 쉼 없이 질주하던 김 과장이 있었다. 그의 기획서는 빈틈이 없었고, 회의실에서 그의 해결책은 언제나 명확했다. 그러나 어느 날 밤, 그는 자신이 정해진 궤도 위를 공허하게 움직이는 기계가 아닐까 자문했다. 중요한 발표를 성공적으로 마친 날이었지만, 성취의 환희는 짧았고 새로운 과업의 무게가 곧바로 어깨를 짓눌렀다. 야근 후 탑승한 택시의 차창에 무표정한 얼굴이 비쳤다. 감정 없는 얼굴 위로 보고서의 빼곡한 숫자들이 어른거렸다. 그는 오르던 계단 위에서 처음으로 방향을 상실한 아이처럼 깊은 막막함에 휩싸였다. 집에 도착해 냉장고에 붙은 딸아이의 그림을 보았다. ‘아빠 힘내세요’라는 글씨 옆에 그려진 해가 언제부터 저기 붙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오랜 세월 교단을 지킨 한 스승도 있었다. 종이 울리면 그는 강단에 섰고, 아이들의 빛나는 눈을 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 견고한 일상이야말로 그의 인생을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시를 가르치던 어느 날, 유독 무기력해 보이던 학생 하나가 수업이 끝난 뒤 조용히 다가와 “선생님 덕분에 시가 좋아졌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그 순간의 충만함으로 몇 달을 버티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 종소리가 멎고 텅 빈 교실에 홀로 남았을 때, 형언할 수 없는 공허가 마음을 휘젓고 갔다. 칠판에는 희미한 분필 자국이, 교탁 위에는 주인을 잃은 연필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그는 창밖으로 길어지는 그림자를 보며 되뇌었다.


“나는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저 아이들의 마음에 작은 씨앗이라도 심었을까, 아니면 그저 스쳐 가는 바람이었을까.”


병동의 한 간호사도 그랬다. 그녀는 하루 종일 환자의 곁을 지키며 분주히 오갔다. 생명이 오가는 긴박한 공간에서 그녀의 움직임은 정확하고 빨라야 했다. 교대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 몸을 짓누르는 피로 속에서 동료의 한마디가 오래도록 맴돌았다. “이렇게 버티다 보면, 내 삶이 전부 사라질 것 같아.” 그 말은 날카로운 파편처럼 그녀의 마음에 박혔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던 손가락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병원의 소독약 냄새와 희미한 신음 소리, 보호자들의 불안한 눈빛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리고 조용히 자문했다.


“나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 걸까.”

삶은 이렇듯 누구에게나 각자의 층계참을 내민다. 제자리에 있으라는 명령이 아니다. 잠시 자신을 돌아보라는 따뜻한 초대장이다.


옳음보다 어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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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상담가로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소중한 순간들을 글로 기록해 나가고 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이를 통해 깊이 있는 사유와 글로 표현하며 교감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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