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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는 가장 따뜻한 철학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떻게 꽃이 되는가

by 정성균


인간은 섬이다. 저마다의 우주를 품고 고독하게 떠 있는 존재. 그 섬과 섬 사이를 잇는 최초의 다리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사'라는, 세상에서 가장 짧고도 깊은 시(詩)다. 우리는 인사를 통해 비로소 타인의 우주에 노크하고, 나의 세계로 그를 초대한다. 이것은 정해진 음절의 나열이나 신체의 굽힘이 아니다. 한 존재가 다른 존재의 실존을 온전히 긍정하는 장엄한 사건이며, 관계라는 거대한 교향곡의 첫 음표다. 인사는 '당신이 여기에 존재함'을 내가 '알아차리고 있음'을 알리는 가장 근원적인 소통 행위인 것이다.


형식을 넘어선 진정성


인사의 미학은 그 진정성에 있다. 공자는 『논어』 「안연편」에서 "예(禮)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고 하였다. 이는 형식을 앞세우기보다 마음의 태도를 바로 하라는 가르침이다. 진심이 결여된 인사는 그저 소음에 불과하다. 그 진정성을 실어 나르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몸이다. 상대의 눈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시선, 마음의 빗장을 여는 따뜻한 미소, 신뢰를 전하는 목소리의 온기. 이 비언어적 언어야말로 천 마디 말보다 더 깊은 감정을 전한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지만, 진심 어린 눈빛과 미소를 머금은 인사는 상대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한 줄기 햇살이 되고, 보이지 않는 신뢰의 씨앗을 심는다. 첫인상이 7초 안에 결정된다는 현대의 분석은, 결국 이 짧은 순간에 우리가 얼마만큼의 진심을 담아 상대의 존재를 긍정하는지에 달려 있음을 시사한다.


존중의 다른 이름들


나아가 품격 있는 인사는 문화적 차이라는 다채로운 옷을 입는다. 동양의 깊은 숙임은 자신을 낮추어 상대를 드높이는 겸양의 미학을 담고 있으며, 서양의 악수는 동등한 개인 간의 신뢰와 약속을 상징한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따뜻한 포옹이, 또 다른 곳에서는 코를 비비는 행위가 가장 진한 유대의 표시다. 이처럼 인사의 언어는 저마다 다르지만, 그 본질에는 타인에 대한 존중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흐른다. 진정으로 열린 마음은 이러한 문화적 다름을 이해하고 기꺼이 존중할 줄 안다. 나의 방식만을 고집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상대의 언어로 말을 걸어줄 때, 우리는 비로소 세계인으로서의 품격을 갖추게 된다.


삶의 가장 가까운 무대


일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우리는 매일같이 품격의 언어를 연습한다. 가정의 아침을 여는 "좋은 아침"이라는 인사는 밤새의 평안을 확인하고 오늘 하루 당신의 시작이 순탄하기를 바라는 다정한 기도다. 직장에서 동료에게 건네는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는 고된 노동의 무게를 함께 나누려는 따뜻한 연대의 표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낯선 이에게 건네는 가벼운 목례는, 이름도 모르지만 이 협소한 공간과 짧은 시간을 공유하는 동반자로서의 예의를 표하는, 도시의 소리 없는 시(詩)다. 때로는 슬픔에 잠긴 이에게 건네는 침묵의 눈인사가 백 마디 위로보다 깊을 수 있듯, 인사는 상대의 상황과 감정을 헤아리는 공감 능력의 섬세한 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사의 진정한 가치는 평온한 관계 속에서보다 오히려 불편한 침묵이 흐르는 관계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갈등의 골이 깊은 상대에게 먼저 건네는 인사는 단순한 안부를 묻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를 회복하려는 용기 있는 첫걸음이며, 문제의 본질과 별개로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성숙함의 표시다. 이 어려운 인사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감정을 넘어서는 더 큰 사람이 된다.


세계와의 교감


우리의 인사는 인간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이른 새벽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에게 건네는 무언의 감사,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고목(古木)을 향한 경외의 시선, 고된 하루의 끝에 나를 반기는 반려동물과의 교감. 이 모든 것이 저마다의 언어로 표현되는 깊은 인사다. 우리는 이러한 교류를 통해 생명이 깃든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이 거대한 세계의 일부임을 확인한다. 존재를 향한 인사는 우리의 세계를 인간 사회의 경계 밖으로 확장시키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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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상담가로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소중한 순간들을 글로 기록해 나가고 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이를 통해 깊이 있는 사유와 글로 표현하며 교감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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