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푸른빛이 채 스며들기도 전에, 날카로운 알림음이 먼저 잠을 깨우는 도시의 아침이다. 밤새 멈추지 않았던 시계는 다음 시간을 재촉하고, 스크린의 불빛은 떠오르는 태양보다 먼저 우리의 의식을 장악한다. 창밖 풍경 속,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는 사람들. 이것은 성실함의 풍경이면서, 동시에 멈춤을 허락하지 않는 ‘가속사회’의 거대한 단면이다. 우리는 약속된 역할을 수행하며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지만, 그 안쪽에서는 무언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을지 모른다. 조용한 균열이 생기고, 버텨왔던 마음의 토대가 소리 없이 내려앉는 감각. 지금 이 시대의 삶은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짐을 지우고, 어떤 속도로 달려가라고 말하는 걸까. 그 끝 모를 질문 앞에서 우리는 다시 현관문을 나선다.
소진의 감각은 이제 특정한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성과로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문화 속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이기보다 타인의 기대를 수행하는 정교한 도구가 되어감을 느낀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침식되는 것은 바로 ‘진정성’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유능한 ‘나’, 관계가 기대하는 다정한 ‘나’를 연기하기 위해, 스스로의 서툰 감정과 고유한 욕망을 뒤로 미루는 일에 익숙해진다. 그렇게 본래의 ‘나’와 연기하는 ‘나’ 사이의 거리가 아득히 멀어질수록, 내면의 불씨는 희미한 잔불로 사그라든다. 시대의 아픔은 그렇게 각자의 삶에 다른 무늬로, 다른 깊이로 새겨진다.
바로 그 지점에서 시간의 질서는 붕괴된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흘러가는 시간(크로노스)의 노예가 되어, 삶의 의미를 길어 올리는 질적인 시간(카이로스)을 송두리째 잃어버린다. 노트북을 닫아도, 손안의 작은 화면은 꺼지지 않는 사무 공간이 되어 우리의 밤을 잠식한다. 모든 것을 쏟아붓고 정신없이 달리다 문득 멈춰 선다. 소음 속에서 메아리만 남는 사색의 자리. 주변의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 찾아오는 것은 평온이 아닌, 텅 빈 방에서 소리마저 삼켜버린 깊은 메마름이다. ‘카이로스’를 경험하지 못한 영혼의 깊은 갈증이다. 풍경 없는 러닝머신 위를 달려온 사람처럼, 발밑은 헛돌고 시선은 머물 곳을 찾지 못한다.
이러한 단절감은 수많은 사람 속에서 더욱 낯설게 다가온다. 가속화된 사회는 깊이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여유, 기다림의 미학을 허락하지 않는다. 마음은 각자의 섬에 표류하고, 기술은 무수한 연결을 약속하지만 그 이면에서 우리는 오히려 섬처럼 남겨진 자리를 배운다. 연결될수록 고립되는 시대의 역설이다. 고립감은 이내 관계의 피로로 이어진다. 진정성을 감춘 채 맺는 얕은 친밀감, 의미보다 형식만 남은 과잉된 소통 속에서 마음은 소리 없이 지쳐간다. 가면을 벗고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하며 기댈 수 있는 관계에 대한 갈망은 그래서 더욱 깊고 간절해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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