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안의 정원을 거닐며 삶을 가꾸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

by 정성균

주황빛 노을이 창가에 내려앉을 무렵, 나는 종종 생각에 잠기곤 한다. 하루 종일 나를 몰아세우던 세상의 소음이 잦아들고 고요가 찾아오는 그 짧은 틈, 비로소 안쪽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분주했던 하루의 끝에서 나의 안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 우리는 종종 행복이 성취의 정점에서 손에 쥐는 과실이라 믿는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부단히 나아가고 타인의 인정을 받으며, 마침내 도달할 어떤 상태를 꿈꾸는 것이다. 하지만 그토록 원하던 것을 얻은 뒤에도 마음 한편이 허전했던 경험은, 행복의 본질이 다른 곳에 있음을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충족감은 획득의 대상이기보다, 가꾸어가는 내적 풍경에 가깝다. 그 풍경에는 저마다 다른 씨앗이 잠들어 있고, 각자의 속도에 맞는 햇살과 물을 필요로 하는 법이다.


이제 바깥을 향하던 분주한 시선을 거두어, 우리 안쪽의 풍경을 거닐어볼 시간이다. 이 여정은 깊은 곳에 잠든 현자를 깨우는 네 개의 길표를 따라 걷는 길이다. 찰나의 쾌감을 가로질러 영혼의 목적지에 닻을 내리고, 세상의 소란 속에서 굳건한 요새를 쌓으며, 시련의 불꽃으로 더 순수한 자신을 벼려내고, 마침내 타인과의 깊은 교감 속에서 존재의 온기를 회복하는 길. 이 안내서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우리는 삶이라는 위대한 질문에 스스로 답을 써 내려갈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첫째, 스쳐 가는 즐거움을 지나 존재의 이유를 세운다


늦은 밤, 손 안의 휴대전화 화면이 세상의 유일한 빛이 될 때 나는 무엇을 갈망하는 것일까. 손가락의 움직임 하나에 펼쳐지는 새로운 자극과 즉각적인 반응들. 감각을 간질이는 쾌락, 즉 ‘헤도니아(Hedonia)’¹의 파도는 거세다. 뇌는 이 짧은 희열을 기억하고 더 강한 자극을 찾아 나를 부추긴다. 하지만 그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이내 공허의 모래밭이 드러날 뿐.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고, 텅 빈 눈으로 새벽을 맞이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밤의 서가에는 읽지 않은 책들이 조용히 늙어간다.


우리의 시간을 가슴 벅찬 보람으로 채우는 한때를 돌이켜보자. 복잡한 코드 속에서 밤새 헤매다 마침내 오류를 잡아냈을 때의 그 명료한 희열, 흙덩이를 물레 위에 올리고 온 신경을 집중해 하나의 그릇을 빚어내는 도공의 시간. 수없이 무너지고 다시 시작하는 인고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세상에 없던 고유한 형태가 손끝에서 태어나는 그 찰나의 가득 참.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²라 명명한 완전한 좋음은 바로 이런 성질의 것이다. 자신의 잠재력을 남김없이 발휘하여 의미 있는 목적을 향해 나아갈 때, 온 존재가 확장되는 듯한 깊고도 지속적인 고양감. 그것은 성취의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의 모든 순간에 스며 있는 충만함 그 자체를 뜻한다.


이러한 몰입은 위대한 예술가에게만 허락된 시간이 아니다. 사무실 책상 위에서 복잡한 데이터를 정리하며 하나의 명료한 보고서를 완성할 때, 아이와 함께 블록을 쌓아 올리며 균형을 맞춰갈 때, 우리는 시간을 잊게 만드는 집중의 순간을 경험한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외부의 평가나 결과에 대한 불안을 잊고, 행위 그 자체와 맞물린다. 바로 그 상태에서 느껴지는 조용한 활력과 명료한 정신, 그것이 내 영혼을 살찌우는 진정한 양식이다. 오늘 당신의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인 순간은 언제였는가.


둘째,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세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정성균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생각과 마음의 결을, 책 속 문장과 함께 조용히 전합니다. 스친 만남이 믿음으로 이어져 각자의 하루에 힘을 더하는 장면들을 담담히 써 내려갑니다.

582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30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27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