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 몸 · 공간, 일상이 들려주는 세 가지 이야기
동이 트기 전, 세상이 희미하게 번지는 검정 잉크처럼 푸르스름한 어둠에 젖어들 때 잠이라는 깊은 골짜기를 헤매던 의식은 어슴푸레한 빛을 따라 육신이라는 집으로 돌아온다. 아직 꿈의 잔상을 털어내지 못한 몸은 무겁고, 정신은 아직 떠날 채비를 마치지 못한 채 여명이라는 문턱에 잠시 멈춘다. 우리는 그 찰나의 경계에서, 하루를 향해 열린 투명한 시작선 너머로 조용히 첫발을 내딛는다. 그 순간, 밤의 정수를 머금은 서늘한 공기가 허파 가장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존재의 현을 팽팽하게 조율한다. 빛은 닫힌 눈꺼풀의 붉은 막을 투과해 암흑에 길들여진 시각에 최초의 색을 각인시킨다. 피부의 모든 감각점이 깨어나 공기의 미세한 입자들을 느낄 때, 비로소 흐릿하던 사물의 윤곽은 제 이름과 무게를 되찾는다. 바로 그 순간, 텅 빈 공간과 나의 내면에서 새로운 질서의 서곡이 조용히 울리기 시작한다.
그 첫자리는 세계를 가두는 벽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가장 깊은 내면과 광활한 외부가 만나는 고요한 경계다. 안과 밖을 가르면서도 서로를 투명하게 비추는 역설의 공간. 그곳에 발을 딛는 행위는 잠에서 깨어나는 물리적 움직임, 그 이상이다. 나의 작은 우주가 거대한 세계와 처음으로 공명하며 ‘오늘’이라는 시간을 기꺼이 제 삶으로 맞아들이는 경건한 서약이다. 빛이 어둠을 밀어내며 잠들었던 세상을 복원하듯, 아침의 첫 광선은 나의 의식을 불러 세워 일과의 박동을 조율한다. 시간은 보이지 않는 혈관으로 흘러들어 ‘나의 하루’라는 빈 악보에 생명의 첫 음표를 그려 넣는다. 새벽의 초입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문이자, 흩어진 감각을 우주의 속도에 맞추어 섬세하게 조율하는 고요하고 거룩한 의식으로 마무리된다.
아침 햇살로 조율된 하루는 이내 무수한 사건과 관계, 감정의 파도로 채워진다. 시간은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공평하게 전진하는 듯 보이지만, 우리가 온몸으로 겪어내는 시간의 실체는 결코 균질한 직선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밀도와 온도가 저마다 다른 물길들이 겹겹이 흐르는, 마음의 거대한 삼각주에 가깝다. 우리는 시계가 새기는 물리적 시간의 격자 위를 걸으면서도, 동시에 그 아래 흐르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강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 그 흐름은 때로 격렬한 여울목에서 소용돌이치다가, 때로는 모든 것을 삼킬 듯 깊고 느린 심연이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이와 눈을 맞추는 찰나에 몇 시간이 증발하고, 고통스러운 기다림 속에서 1분이 영원처럼 더디게 흘러가는 체험이 이를 증명한다. 기쁨으로 분초가 빛의 입자가 되는 순간이 있고, 불안으로 시간이 납덩이처럼 무겁게 가라앉는 때가 있으며, 깊은 몰입 속에서 시간의 흐름마저 잊고 그것과 하나가 되기도 한다. 한낮의 시간은 이처럼 측정 가능한 시각과 체험되는 순간이 삶이라는 태피스트리의 날실과 씨실처럼 엮이며,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고유한 무늬를 새겨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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