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의 풍경이 된다

by 정성균

3장. 각자의 길 위에서 만나는 우리


질문에서 시작되는 길


나는 오늘, 가장 가까운 이의 행로를 얼마나 존중했는가. 하루의 끝, 모든 소음이 가라앉은 시간에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건네면 마음 한쪽이 서늘해진다. 우리는 ‘이해한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는다. 배우자의 지친 얼굴, 자녀의 선택, 친구의 고민 앞에서 그 표현을 쓰곤 한다. 그러나 존중은 이해와 다른 자리에 있다. 이해가 나의 시선으로 상대를 끌어당기는 일이라면, 받아들임은 그의 세계를 침범하지 않고 멀리서 지켜보는 일에 가깝다. 이 글은 해답을 내세우려는 시도가 아니다. 인생의 흐름이 고요히 굽이치는 지점을 지나며 내 안에 남은 질문들을 당신과 나누려는 작은 이야기다. 젊을 때는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가 그저 마음만 나누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다. 말보다 무겁게 다가오는 것은 서로의 다름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 하는 문제라는 것을. 나는 더 이상 관계가 주는 표면적인 온기에 기대지 않는다. 머묾이라는 이름의 깊은 기둥 없이는 어떤 친밀함도 오래 버티기 어렵다는 사실을 자주 실감한다.


‘이해한다’는 착각의 자리


이해라는 말은 흔하지만, 실은 나의 불안을 잠재우려는 도구일 때가 많다. 상대의 혼란스러운 상황 앞에서 느끼는 나의 무력감을 감추기 위해, 우리는 서둘러 그의 삶을 해석하고 재단한다.


오래 함께한 이의 얼굴에 피로가 내려앉은 순간, 낮게 깔린 목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초침은 무심히 제 길을 이어갔고,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은 이미 식어 있었다. 나는 그 말끝이 다 흘러가기도 전에 서둘러 해답을 꺼냈다. 원인을 분석하고, 더 나은 길을 제시하며 논리를 나열했다. 그러나 맞은편의 눈빛은 점점 굳어갔고, 우리의 대화는 이내 끊어졌다. 공기에는 설명할 수 없는 무게만이 남아 있었다.


그 순간, 내 말이 그를 향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달래려는 방편이었음을 문득 알았다. 위로처럼 보였던 말들은 사실 나를 향한 방어였고, 그 순간의 고요는 내 언어가 닿을 수 없는 경계를 드러냈다. 굳게 닫힌 방문 앞에 서 있던 나는 오래 서성였다. 그 앞에서 과거의 수많은 장면이 떠올랐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 속에서 쌓아온 습관이, 가장 가까운 사람의 고통 앞에서도 어김없이 발동했던 것이다.


그 밤, 가장 가까운 이에게 필요한 것은 논리의 방향이 아니라 곁에 머무는 수용이었음을 비로소 느꼈다. 상담학자 칼 로저스가 말한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은 바로 그 자리에서 이해되었다. 조건이 붙은 해답은 순간의 허기를 달랠 뿐이었지만, 조건 없는 받아들임은 존재 자체를 견디게 하는 토대였다. 상대를 변화시키려는 조언보다, 지금 그대로의 삶을 인정하는 태도가 더 깊은 힘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종종 ‘이해한다’는 말로 상대의 삶을 가볍게 재단한다. 손 안의 화면에서 흐르는 정보들을 보며 그의 여정을 다 아는 듯 착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그의 고유한 속도를 침범하는 방식이 된다. 성인이 된 자녀의 선택 앞에서 불필요한 충고를 덧붙이거나, 친구를 위한다며 던진 말이 정작 그의 마음에 무겁게 내려앉기도 한다. 정보가 많다고 해서 공감의 깊이가 더해지는 것은 아니다.


모른다는 인정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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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생각과 마음의 결을, 책 속 문장과 함께 조용히 전합니다. 스친 만남이 믿음으로 이어져 각자의 하루에 힘을 더하는 장면들을 담담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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