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 몸 · 공간, 일상이 들려주는 세 가지 이야기
서늘해진 공기 속, 발걸음은 다소 완만해진다. 앞만 향하던 행진의 목표가 희미해지고, 그제야 거쳐온 자취를 돌아보게 되는 때가 온다. 뜨거웠던 나날의 기세는 멀리 물러났고, 저물녘 미풍은 얇은 직물 사이를 파고들어 어깨를 낮게 덮는다. 시기의 변천은 항상 기온의 미묘한 농도에서 먼저 인지된다. 한 시절의 소란과 열기가 가라앉은 터전은, 낮은 풀벌레 울음이 메우고, 숲 속 광채는 여름의 강렬함을 벗고 부드러움을 갖춘다. 나뭇잎은 아직 낙하할 채비가 없으나, 가장자리에 퍼지는 옅은 색 변화를 따르면 다가올 헤어짐의 품위를 감득한다. 초가을의 징조는 지난날에 보내는 고요한 인사이며, 새로운 주기(週期)의 서두에 놓인 첫 문장과 같다.
젊은 날에는 이 섬세한 온도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세상은 언제나 양 극단의 긴장 가운데 있었고, 나는 팽팽한 경계선 위에서 스스로를 몰아붙이듯 나아갔다. 멈추면 무너질 것 같았고, 회고하면 다시는 시작할 수 없을 듯했다. 이제야 깨닫는다. 내가 잠시 숨을 고르며 멈춰 선 동안에도 만물은 고유한 속도로 운행하고 있음을. 그리고 오직 보폭을 늦춰야만 드러나는 전경(前景)이 있음을. 느긋한 걸음으로 마주하는 풍경을 사람들은 ‘이완의 안락함’이라 말하지만, 내게는 오래 묵은 평정(平靜)의 다른 이름으로 다가선다. 빛바랜 천처럼 포근하고, 저녁놀처럼 맑은 정적이 마음 바깥을 감싸 안는다. 생의 균형은 서로 다른 온기가 한자리에 공존할 때 나타난다. 그 조화 속에서 나는 호흡을 가다듬는다.
결실 시기를 맞은 수목(樹木)은 말이 없으나, 그 정적인 실루엣 안에는 회귀의 질서가 감춰져 있다. 나이가 들면서 대지의 언어가 서서히 몸에 스며든다. 여름 동안 온 힘을 다해 피워 올렸던 잎사귀들이 서서히 대지로 떨어진다. 잎이 지는 모습을 바라보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잔잔한 깨달음이 샘솟는다. 젊었을 적의 나는 오직 더 많이 쌓고 더 멀리 가야 한다는 생각에 몰두하였다. 손에 닿는 것만이 의미 있다고 믿었고, 애정마저 내 소유권 안에 두어야 안심하였다. 타인의 생활과 감정을 고스란히 수용하지 못하면 초조했고, 집착을 간절함이라 오판하였다. 이제는 다르게 느껴진다. 보존할 것과 놓아주어야 할 것을 구별하는 감각이 생겨나고, 새로 얻은 감지력이 내심의 부담을 다스린다. 쟁취하는 일의 성취감과 이탈하는 일의 안정된 정서 역시 생명(生命)의 몫임을 인지하게 되었다. 따라서 비워냄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예비 작업에 가깝다.
낙엽이 떨어지는 순간은 온 세상이 스스로를 정리하는 잠잠한 때이다. 잎을 내려놓는 과정을 통해 대지는 쇄신을 준비한다. 지금의 풍요를 잠시 포기하고, 다가올 봄을 위한 여백을 남긴다. 사람의 일생 또한 세상의 이치를 본뜬다. 한 시기를 매듭지으며, 내면 한편이 공허해질 때마다 또 다른 숨결이 유입된다. 연인을 떠나보낼 때의 침묵 속에도 여전히 따뜻한 기류가 이어진다. 이별의 적막 속에서 관계의 본질이 서서히 나타나고, 잔잔함 속에서 사랑의 형태가 새롭게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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