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계절을 나만의 걸음으로

by 정성균

2장. 나만의 작은 성공을 축하하는 법


어둠 속의 지평선, 잉크로 새기는 하루


이웃집 현관의 센서등이 마지막으로 깜빡인 뒤 긴 어둠에 잠기면, 비로소 동네는 온전한 휴식에 든다. 멀리서 들려오던 자동차의 흐름마저 잦아들고 나면, 세상은 거대한 침묵의 바다로 변모한다. 소음이 걷힌 거리는 검고, 방 안의 공기는 낮의 분주함을 머금은 채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책상 위, 둥근 불빛 하나만이 좁은 지평선을 만들고 그 아래 놓인 백지 위에서 하루의 소란했던 기억들이 먼지처럼 내려앉는 시간. 펜을 쥐는 손의 무게가 유난히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세상의 모든 역할로부터 벗어나 비로소 한 개인의 윤곽이 뚜렷해졌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등 뒤에서는 하루 동안 갑옷처럼 입고 있던 외투가 낮은 탄식을 뱉으며 의자 위로 스러져 있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부여받았던 사회적 가면과 이름표들이 벗겨져 나간 자리에, 이름 없는 한 사람의 실루엣만이 선명하다. 이 순간의 고요는 소리의 부재가 아니라, 내면의 언어가 싹틀 수 있도록 마련된 비옥한 토양과 같다.


펼쳐진 노트 위로 만년필 촉이 미끄러진다. 사각거리는 마찰음, 종이의 결을 따라 푸른 잉크가 번져나가는 풍경은 이 정적 속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언어다. ‘오늘 당신의 세계는 안온하였는가?’ 외부를 향한 질문이 아닌, 존재의 내핵을 향해 파고드는 낮은 물음이 시작된다. 그 답을 찾는 과정은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짓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머릿속을 부유하던 상념의 파편들을 그러모아 하나의 의미 있는 실로 꿰어내는 일. 어지러운 단어들의 배열을 바로잡고, 호흡을 가다듬어 마침내 마침표를 찍는 순간, 안도의 숨이 터져 나온다. 이것은 세상의 갈채를 향한 외침이 아니다. 흩어졌던 조각들을 그러모아 깨진 거울을 다시 맞추고, 그 거울을 통해 스스로의 눈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행위에 가깝다. 표면에 남은 미세한 균열의 흔적을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 그 무언의 긍정이야말로 하루의 소란을 잠재우는 깊은 위안이며, 스스로 바로 서기 위한 경건한 의식이다.


꺼진 조명 아래서, 나를 발견하다


이곳에 쌓이는 글줄들은 타인의 평가를 위한 증명서가 아니다.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내면의 분투이며, 수없이 기울어졌던 걸음을 바로 세우려 애썼던 균형의 흔적이다. 과거의 나는 날 선 비판에 익숙했다. 내면을 향한 채찍질은 성장을 위한 가장 손쉬운 자기 관리 방식이라 믿었다. ‘더 잘할 수 있었잖아’, ‘왜 그 정도밖에 하지 못했지?’ 같은 질책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하지만 이제는 그 혹독했던 비판의 목소리가 머물던 자리에 다른 언어를 채워 넣는 법을 배운다. “괜찮다. 그것으로 되었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다.” 소리 내지 않아도 충분한 격려가 등 뒤의 창문을 연다. 서늘한 밤공기가 밀려 들어와 방 안을 휘돌며 낮 동안 축적된 긴장과 피로의 미세한 입자들을 부드럽게 쓸어간다. 모든 것이 씻겨나간 자리에 단단하고 평온한 기운이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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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생각과 마음의 결을, 책 속 문장과 함께 조용히 전합니다. 스친 만남이 믿음으로 이어져 각자의 하루에 힘을 더하는 장면들을 담담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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