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일보다 오래 할 수 있는 일

재능은 타고나지만, 능력은 지켜내야 한다

by 정성균

한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보고서


유년의 어느 오후, 다정한 손길이 어깨에 닿으며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이걸 참 잘하는구나.” 그 말에 교실의 공기가 미세하게 술렁였다. 세상이 잠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 듯한 기분 속에서, 내면 깊은 곳의 어떤 감각 하나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날 이후, 나는 그 감각을 조심스레 품은 채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잘함’이 품고 있던 순수한 기쁨은 서서히 형태를 바꾸어, 보이지 않는 무게로 나를 눌렀다. 사람들은 ‘타고난 소질’이라는 말을 칭찬처럼 건넸지만, 그 말은 언제부턴가 나를 둘러싼 단단한 틀이 되어 있었다. ‘잘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하고 싶다’는 자유를 덮을 때, 마음 한편이 묘하게 흐려졌다. 다른 아이들이 자유롭게 그리고 지우며 낙서를 즐길 때, 나는 ‘잘 그린 그림’의 기준을 먼저 떠올렸다. 그 칭찬은 나에게서 서투를 수 있는 권리,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자유를 빼앗았다. 타고난 천성은 축복일까, 아니면 아직 해답을 찾지 못한 생의 숙제일까.


살다 보면 우리는 소질의 신화와 노력의 격언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누군가는 타인의 뛰어난 재능 앞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조용히 닫아버리고, 또 누군가는 아무리 애써도 닿지 않는 세계를 바라보며 무력감을 느낀다. 그때마다 오래된 질문이 고개를 든다. 타고 남은 운명일까? 숙련은 성실의 산물일까, 혹은 삶을 대하는 태도의 또 다른 이름일까.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길고 느린 탐색의 기록이다. 우리는 이 여정에서 잠재력이라는 막연한 단어를 하나씩 벗겨내고, 기량이라는 구체적이고 살아 있는 힘의 실체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심리학이 말하는 지속의 동력, 철학이 탐색하는 자기완성의 의지, 예술이 증명하는 표현의 과정을 따라가며, 우리는 마침내 우리 안에 잠든 가능성의 진짜 얼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글에서 ‘소질’은 타고난 기울기, ‘숙련’은 그 기울기를 세공하며 자신만의 형태로 다듬어 가는 힘으로 부른다.


타고난 가능성과 쌓이는 습관


심리학에서 소질은 가능성이 빠르게 깨어나는 출발점으로 설명된다. 경주의 시작을 유리하게 이끌 수는 있으나, 그 자체로 완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타고남이 좋은 씨앗이라면, 숙련은 그 씨앗을 틔우고 뿌리내리게 하는 매일의 물과 햇볕이다.


그 진실은 위대한 예술가나 천재 과학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늦은 밤, 낡은 소파에 앉아 갓 태어난 손주에게 줄 스웨터를 뜨는 할머니의 손길을 떠올려본다. 창밖은 어둡고, 낡은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낮은 소리만이 방 안의 공기를 데운다. 양모 실이 대바늘에 감기는 소리가 그 고요를 깨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다. 돋보기 너머로 침침해진 눈을 한 번씩 비비면서도, 그 손은 한 치의 오차 없이 움직인다. 수십 년간 반복해 온 그 움직임에는 어떤 과시나 의무도 없다. 그저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며 한 코 한 코 쌓아 올리는 시간의 더미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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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생각과 마음의 결을, 책 속 문장과 함께 조용히 전합니다. 스친 만남이 믿음으로 이어져 각자의 하루에 힘을 더하는 장면들을 담담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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