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질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by 정성균

알 수 없는 불안, 무너지는 신호의 확산


육체가 보내는 첫 경고


삶이 무너지기 시작한 시점은 아주 미세한 일상의 틈에서 비롯되었다. 단단한 껍데기를 유지하려는 필사적인 노력 아래, 이 변이는 정해진 수순처럼 조용히 흘러갔다. 새벽 4시에 맞춰 놓은 기기 알람 소리가 울려도, 몸은 이불 아래에서 미동 없이 굳어 저항했다. 이 징후는 나의 의지와 책임감이 닿지 않는 영역에서 터져 나온, 깊이 쌓인 피로와 초기 불안의 경고였다. 나는 이 현상이 일시적이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며칠 뒤 텅 빈 방에서 들려오는 가늘고 불안정한 이명(耳鳴) 소리가 청각을 자극하며 확신을 주었다. 버티는 힘이라 믿었던 정신력의 기단에 외부 충격 없이 안쪽으로부터 미세한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그 징후가 표면으로 전이되는 실재였다.


기우는 생애, 비틀린 무게 중심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댄 채, 가장 사소한 결정조차 못 내리고 무력하게 가라앉았다. 이 중력은, 내가 '괜찮음'이라 믿었던 일상이 지나친 책임감과 완벽주의라는 위태로운 각도 위에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는지 알려준 차가운 깨달음이었다. 밀폐된 사무실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찬 공기는, 나 스스로 만든 고립이 외부의 고독을 불러들이는 물리적 현상처럼 느껴졌다. 지난주부터 미뤄두었던 서류 더미가 책상 위에서 불안하게 쏠리는 것을 보았다. 인생의 중심축이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나의 무관심 속에 서서히 꺾여 내려앉고 있었다. 현상 유지를 위한 관성 속에서 나의 스케줄과 건강은 이미 회복 불가능한 비틀림을 향해 쉼 없이 작동 중이었다.


붕괴될까 봐 외면한 본질


거울에 비친 나는, 내가 알던 활기 넘치던 나와 낯설게 달랐다. 생기 잃은 눈빛과 축 처진 어깨는, 타인에게 투사하고 싶었던 이상적인 '성공한 자아'와 지금의 내가 분리되는 잔상이었다. 깨끗하게 다려 입은 옷깃 아래에서도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징후가 느껴졌다. 나는 이 고통의 뿌리를 더 이상 파헤치지 않았다. 나의 나약함을 확인하는 순간, 그동안 쌓아 올린 경력과 관계 전체가 송두리째 해체될 지극한 공포가 나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굳건했던 내 세계는 감지 불가능한 미동 속에서 꾸준히, 멈추지 않고 중심을 잃으며 소진으로 향했다.


'괜찮다'는 장막 뒤에 숨기


억지로 착용한 '괜찮음'의 제복


동료들이 안색을 살피며 안부를 물을 때, 나는 힘없는 고갯짓과 함께 기계적인 대답을 반복했다. "괜찮아요. 일이 좀 많아서요." 그 말은 내게 너무 커서 몸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제복처럼 느껴졌다. '괜찮음'을 착용하는 그 순간부터, 어깨를 누르는 중량과 감정 표현을 옥죄는 불편함이 나의 존재를 파고들었다. 나는 이 텅 빈 허울 아래 나의 불안을 숨기고 수많은 회식과 관계의 조류 속으로 잠식되었다.


무언(無言)이 가져온 치명적인 대가


중요한 회의, 모두 찬성하는 사업 방향과 정반대인 정확한 위험 요인이 머릿속에 날카롭게 떠다녔다. 나는 그 명료한 사실을 억제하고 입을 닫았다. 상사에게 미움을 사지 않음으로써 획득한 '무사함'의 안도감은 짧았고, 그 대가는 치명적이었다. 스스로 실체를 외면한 나의 내부에서는 이미 감정의 해체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날 밤, 텅 빈 방에 홀로 앉아 위장약과 수면유도제를 삼켰다. 급성 고통은 진압했는지 모르나, 혀뿌리에 오래 남는 쓴 맛은 진정성을 포기한 것에 대한 객관적 보상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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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생각과 마음의 결을, 책 속 문장과 함께 조용히 전합니다. 스친 만남이 믿음으로 이어져 각자의 하루에 힘을 더하는 장면들을 담담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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