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담과 시기의 언어가 남기는 마음의 지도
잠들기 전, 차가운 액정 위를 미끄러지는 손가락이 무심코 소셜 미디어 피드를 연다. 누군가의 행복을 전시한 사진들 사이로 겨냥된 문장들이 뒤섞여 흐른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파고드는 가십, 일반인의 실수를 조롱하는 댓글들이 여과 없이 시야에 들어온다. 익명의 광장에서는 타인의 삶이 너무나 쉽게 안줏거리가 된다. 이런 현상을 마주할 때마다 질문하게 된다. 사람들은 어째서 남을 깎아내리며 위안을 얻으려는 걸까. 말은 처음에는 서로를 부르기 위한 신호였으나, 어느새 상처를 남기는 도구가 되었다. 키보드를 떠나는 순간 흩어지는 듯하지만, 그 의미는 읽는 사람의 기억 속에 흔적을 남긴다. 때로는 한 구절이 의식의 표면을 떠나지 않고 하루를 지배하기도 하는데, 그 한마디는 어디에서 온 것이었을까.
험담의 배경에는 스스로를 향한 불안이 자리한다고 심리학자들은 설명한다. 남의 시선이 자아상에 미치는 영향은 커서, 우리의 정체성은 다른 이의 판단에 좌우된다. 리언 페스팅어가 제창한 ‘사회 비교 이론’은 이러한 심리를 더욱 명확히 보여준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과 의견을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 타인과 비교하려는 본능적 욕구를 지니며, 이 과정에서 자신보다 우월한 대상에게는 질투심을, 열등한 대상에게는 우월감을 느끼며 자기 가치를 확인한다는 것이다(Festinger, 1954). 스스로의 부족함이나 불안정함을 직면하는 대신, 그 감정을 외부의 특정 대상에게 투사하여 안도를 찾는다는 것이다. 시기심 또한 비교하는 습관에서 자라난다. 남의 성취가 내 실패처럼 느껴지고, 다른 사람의 행복이 불행의 근거로 착각되는 감정의 오류다. 자기혐오의 그림자는 타인을 향한다. 험담을 하는 이의 마음은 공허한 경우가 많다. 그들은 남의 실패담 속에서만 희미하게 제 존재를 실감한다. 열등감의 구조 속에서 자존감은 조금씩 부식되어 간다. 대화가 끝난 후, 누군가 자리를 비운 직장의 휴게실이나 모임의 뒤편에서 그 기류는 감지된다. 목소리의 톤이 미세하게 낮아지고, 공기의 밀도가 달라지는 그 순간, 부재한 이를 향한 이야기들이 조용히 흐르기 시작한다.
회사 점심시간, 몇몇이 모인 테이블에서 누군가 자리에 없는 동료의 실수를 가볍게 언급한다. 이야기가 본격적인 험담으로 흐르기 시작하는 그 미묘한 경계에서, 한 사람은 따뜻한 찻잔을 쥔 채 말없이 수저를 움직인다. 그는 대화에 직접 끼어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화제에서 벗어나려 하거나 자리를 피하지도 않는다. ‘굳이 분위기를 깰 필요는 없지.’ 혹은 ‘나까지 밉보일 수는 없어.’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화자를 향해 미세한 끄덕임을 보내거나 짧은 추임새를 넣는다. “아, 그랬구나.” 그 한마디에는 어떤 판단도 담겨 있지 않지만, 이야기를 계속해도 좋다는 안전한 신호가 된다. 그는 스스로를 중립적인 관찰자라 여기며 그 자리에 머물 뿐이다. 조직 내의 힘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정보 수집일 뿐이라고 합리화한다. 그 침묵은 험담의 불씨에 마른 장작을 더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스스로 지핀 불이 아니라고 정말 생각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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