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기가 가신 뒤에도 남는 관계를 위하여

by 정성균

한 잔의 술, 인위의 온도


퇴근 후의 공기는 언제나 약간의 피로와 묘한 해방감으로 뒤섞여 있다. 그날도 그랬다. 어색함이 감도는 좁은 테이블 위로 투명한 액체가 채워진 잔들이 놓였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지만, 사회적 삶을 영위하는 한 술자리를 완전히 피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고기 굽는 냄새와 사람들의 낮은 말소리, 잔이 부딪히는 청명한 소리가 뒤엉킨 공간에서, 나는 홀로 맑은 정신을 지킨 채 뜨거워지는 주변을 관망했다.


첫 잔이 사람들의 목을 타고 넘어갈 때,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경직되었던 어깨의 힘을 풀었다. 그 한 잔은 그렇게 즉각적이고 효율적인 온도를 만들어냈다. 나의 또렷한 시야 속에서 차가웠던 분위기는 서서히 데워졌고, 무표정했던 낯선 얼굴들 위로 희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사회적 생존을 위해 오랜 세월 체득한 영리한 의례였다. 사람들은 한 잔의 온기를 매개로 서로의 경계에 조심스럽게 발을 들였다. 웃음소리는 점점 커졌고, 대화의 주제는 업무의 영역을 미끄러지듯 벗어나 사적인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오랜 친구처럼 보였다.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따뜻함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알코올이 뇌를 마비시켜 만들어낸 화학적 작용일까, 아니면 연결에 대한 원초적인 갈증이 빚어낸 집단적 환상일까. 그날의 웃음은 진심이었을까, 잘 짜인 분위기의 산물이었을까. 질문은 흩어지는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술잔 없이 세상을 마주하는 내게, 사람과 나 사이의 거리를 평생에 걸쳐 묻게 할 화두의 시작이었다.


온도의 소멸, 명료한 거리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 마음을 열게 된다고 믿는다. 어쩌면 그것은 자기방어기제를 잠시 무장 해제시키는 것에 가까울지 모른다. 술은 이성의 단단한 벽을 허물기보다 감정의 수위를 비정상적으로 높여 그 벽을 넘치게 만든다. 그렇게 흘러나온 이야기들은 대부분 다음 날 아침이면 알코올과 함께 증발해 버린다. ‘취한 용기’에 기댄 고백과 약속들은 맑은 정신의 냉정한 햇살 아래에서 힘을 잃고 만다. 알코올이 증발하며 차갑게 식어버린 대화처럼, 그날의 뜨거웠던 온도는 다음 날의 서먹한 거리감으로 정확하게 환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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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생각과 마음의 결을, 책 속 문장과 함께 조용히 전합니다. 스친 만남이 믿음으로 이어져 각자의 하루에 힘을 더하는 장면들을 담담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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