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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관계를 흔드는 리듬이다

by 정성균

말이 닿기 전의 움직임


살아있는 사람의 활기는 말이라는 정해진 틀 안에 모두 담기지 않는다. 두 사람이 만난 곳의 기세가 미세하게 변하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 낮은 숨소리나 작은 동요 속에서 감정은 이미 경계를 지나 번지기 시작하는 힘이다. 눈으로 잡기 힘든 능력이다. 이름을 붙이기 훨씬 전부터 주변의 느낌을 바꾼다. 눈빛을 흔들고, 손을 굳히는 행동을 만든다. 이 활발한 움직임을 우리는 감정이라 부른다. 이것은 목소리보다 먼저 오는 순수한 신호다. 생각의 순서를 깨고 나아가는 거친 에너지라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는 것은 아닐까?


개체를 처음 알아보는 방법은 이 작은 요동에서 시작된다. 이야기보다 앞서 공간이 커지거나 줄어드는 큰 변화를 보인다. 어떤 의미가 만들어지는 상황을 보게 되는 것이다. 눈빛이 흔들리는 짧은 찰나와 굳게 다물린 입술의 모양 속에서, 느낌은 이미 언어의 영역을 벗어난다. 이는 실존의 이야기를 펼쳐 보이는 방법이다. 정서는 기류의 진동을 타고, 시간의 흐름을 타면서 생명의 겉면을 깨운다. 어떤 의식적인 판단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우리를 휘감는 추진력이 발휘된다.


누군가 무심코 내뿜는 긴장감은 주변 배경의 위치를 바꾼다. 테이블 위의 컵이 갑자기 불안하게 보이는 일이 생긴다. 상대방이 뱉는 한숨은 주변 분위기에 차가운 냉기를 남긴다. 우리 몸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장력 변화를 시각 정보보다 더 빨리 알아차리고 자세를 방어적으로 고쳐 잡는 특성을 가진다. 글자들이 단단한 형태로 의미를 만드는 틀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쓰임을 보여주는 셈이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서의 확산은 살아있는 모든 유기체가 서로에게 전하는 소식이다. 그것은 모양 없는 소리로 실존이 처음으로 세상에 건네는 교류 방식이 되는 핵심이다. 한 사람이 서 있는 곳이 그 개체의 규칙적인 동요 때문에 주변 이들에게 더 무겁거나 가볍게 느껴진다.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이미 육체가 다른 이의 징후에 응답하여 태도를 고쳐 앉는 동작을 드러낸다. 그 느낌이 순간의 상황 모양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꾸는 힘을 소유한다.


감각은 잘 보이지 않지만, 사람의 겉모습과 태세를 먼저 뒤흔드는 징표이다. 그 징표에 몸이 반응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서로 연결의 궤도 속으로 진입하는 모습이다.


몸이 읽어내는 요동의 지도


타인에게서 시작된 마음의 움직임이 몸에 스며드는 순간은, 머리로 사고하는 과정으로 설명될 수 없다. 이것은 함께 동작을 시작하도록 이끄는 무의식의 명령과 비슷하게 작동한다. 누군가 옆에 설 때, 어깨 근육이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는 반응이 나타나는 일이 있다. 숨 쉬는 것이 자연스럽게 얕아지는 예는 흔하게 관찰된다. 개체가 다른 개체를 만났을 때 생기는 근본적인 공명으로 이를 이해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생명 간의 연동을 연구하는 분야는 개체의 신경계가 다른 이의 동세를 자신의 행동처럼 따라 하는 생물학적인 규율을 밝히는 증명이 된다. 흔히 '닭살이 돋는다'는 현상이 바로 신체가 보여주는 직접적인 표시이다. 다른 이의 강한 기운이 피부를 수축시켜 눈에 보이는 움직임을 만드는 결과이다.


정서는 목소리보다 빠르게 ‘육체의 징후’라는 물리적인 형태로 전해지는 정보이다. 이 전이의 경로는 이성적인 판단이 끼어들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메를로퐁티는 몸을 세계와 나 사이의 교차점(The body is the intersection between the world and myself)이라고 했다. 그 말이 딱 맞다. 신체는 타인이 있는 형태를 즉시 읽어내는 감각의 중심이 된다.


상대방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갈라질 때, 그것을 알기도 전에 벌써 손을 내밀어 위로하려는 몸짓을 드러낸다. 직장 상사의 초조함이 발을 까딱이는 버릇으로 나타날 때, 옆에 있는 직원의 맥박이 빨라지는 응답이 생긴다. 기운의 번짐은 마음이 같아지는 상황으로 오해될 수 있지만, 실제는 신체가 함께 응답하는 물리적 작용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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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상담가로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소중한 순간들을 글로 기록해 나가고 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이를 통해 깊이 있는 사유와 글로 표현하며 교감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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