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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을 짓는 고요한 건축술

by 정성균

소음 속 맑은 판단력과 담백한 이해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모든 순간은, 낯선 파도와 익숙한 징후들이 쉴 새 없이 밀려드는 마음의 해변과 같다. 그 표면의 요동 속에서, 스스로의 내적 소음과 외부의 혼란스러운 징후들을 분리해 낼 틈을 찾는 것이 우리가 마주하는 최초의 과제이다. 세상은 늘 수많은 정보와 타인들의 기대, 그리고 스스로에게 부여한 과제들로 얇은 공기처럼 주변을 에워싸며 우리의 시야를 흐리는 셈이다.


이 복잡하게 뒤얽힌 장막 속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을 멈춰 세우고 상황의 핵심만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맑은 판단력일 것이다. 마음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작동시키는 일종의 정화 필터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노련한 항해사가 거친 파도 속에서도 수평선이라는 절대 기준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우리는 눈앞의 현상에서 불필요한 감정의 색채나 과잉된 의미를 걷어낸다. 그 힘이 곧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고유한 지도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징후들을 지나치게 확장하거나 왜곡하여 해석하지 않으려는 담백한 이해를 통해 비로소 마음의 닻을 가장 안정적인 지점에 내릴 수 있다. 이 담백함은 단순히 무관심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대상이 가진 본연의 모습을 존중하고 인정하려는 가장 정직한 시선의 선택에 가깝다. 판단은 기민하되, 그 판단의 근거는 언제나 고요하고 투명해야 한다는 이율배반적인 과제가 우리의 정신에 놓여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주변의 모든 것을 끌어안으려 애쓰기보다, 흐르는 강물 속에서 옥석만을 가려내듯 정수의 가치만을 품으려는 마음의 솜씨를 연마해야 한다.


느린 호흡으로 얻는 간결한 직감


고요하게 앉아 창밖의 나무 그림자가 서서히 기울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일. 혹은 커피 잔의 온기가 손가락 마디를 타고 천천히 스며드는 것을 느끼는 일. 그 지루해 보일 수도 있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서두르지 않으려는 느린 호흡의 가치를 되찾게 된다. 급하게 결론을 내리고자 하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당장 눈앞에서 해답을 찾지 못해도 괜찮다는 여유가 마음속에 잔잔히 고이는 것이다. 잠시 멈추면 비로소 보이지 않던 길이 열린다.


이러한 느슨함은 허술함을 낳지 않는다. 오히려 깊은 우물을 파듯, 외부의 소음이 차단된 곳에서 스스로의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는 힘이 된다. 이 여유는 곧 관찰로 얻은 조용한 통찰력으로 이어진다. 대상을 오래, 그리고 집요하게 바라볼수록 사물의 이면에 감춰진 구조와 원리가 드러나기 마련이며,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하고 핵심을 꿰뚫는 조직력 역시 그 느긋함 속에서 비로소 탄생하는 것인지 모른다.


빠른 결정을 돕는 간결한 직감이 번뜩이는 순간 역시, 모든 가능성의 깃발들을 마음속에서 충분히 펄럭이게 한 후 잠시 멈춰 섰을 때 찾아오는 작은 선물인 듯 느껴진다. 느림은 지연이 아니라, 사물의 움직임을 가장 정확하게 측정하려는 미세한 센서의 작동 방식과 같다. 우리가 잃어버렸던 삶의 고유한 리듬은, 이 느린 호흡을 되찾을 때 가장 선명하게 재생되는 것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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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상담가로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소중한 순간들을 글로 기록해 나가고 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이를 통해 깊이 있는 사유와 글로 표현하며 교감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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