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움, 거리, 그리고 느린 회복력 -
우리의 삶이 정교하게 설계된 기계처럼 쉼 없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아침 알람과 함께 차곡차곡 쌓인 메시지 알림 속에서 선명하게 깨닫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기계는 삐걱거린다. 경고음 대신, 우리의 몸과 마음은 뜨거운 쇳물처럼 녹아내릴 듯한 한계 상태에 진입한다. 바쁜 일정만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깊고도 끈적한 피로가 그 자리에 남는다.
과도한 카페인 섭취는 몸을 예민한 깨움 모드에 머무르게 하고, 긴장을 오래 잡아둔다. 몸은 잠시 멈췄으나, 목 뒤와 어깨에서는 무의식의 긴장이 쉬지 않고 팽팽히 당겨진다. 더 채우기도 전에, 소화되지 못한 잔여물이 눈앞의 풍경을 안개처럼 가려버리는 현상, 그것이 바로 정보 피로다.
마음은 또 어떤가. 불필요하게 오래 끌어안고 있는 남아 있는 정서의 흔적, 미해결된 마음에 머문 잔류 기운이 누적되어 잔기류를 일으킨다. 불을 끄고 누웠는데도, 어제 들었던 말 한 줄이 천장에 희미하게 떠올라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짐을 잔뜩 짊어진 채 경사를 오르는 듯한 체감이 이어진다. 가중되는 무게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수면 회복에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의 삶을 가볍게 만들기 위한 첫걸음은 이 잔여물의 존재를 정직하게 인식하는 데 있다.
우리 일상에서 자주 쓰는 ‘해독(Detox: 디톡스)’이라는 표현은 본래 몸속의 독성 물질을 밖으로 빼내는 의학적 행위를 가리킨다. 지금 우리가 겪는 과부하는 그 의미권을 벗어나 마음과 생활 구조에까지 스며든 모습에 가깝다. ‘정리의 기술’은 물건을 비워내는 행위보다 ‘남겨둘 기준’을 세우는 관점에 가깝고, 그 기준이 삶의 방향을 정한다. 불필요한 전부를 덜어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스스로를 지탱하는 가치와 앞으로의 확장을 돕는 최소한의 자극을 선별해 남겨두겠다는 태도가 더 깊게 작동한다.
결국 내려놓으려는 대상은 짐 그 자체보다,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강한 압박에 가까울지 모른다. 조금 비워낸 자리에는 복잡한 자극이 빠져나간 틈이 생기고, 그 틈에서 투명한 여백이 서서히 드러난다. 소란에 가려졌던 나의 본래 결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이 이어진다.
그 흐름은 폭풍 속에서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 개인의 중심을 붙드는 닻을 내리는 행위와 닮아 있다. 안쪽 공간이 확보될 때 스스로의 중심축을 다시 확인하게 되고, 그 확인이 조용한 힘으로 자리 잡는다. 감정과 생각, 그리고 관계 중 무엇이 소모를 일으키고 무엇이 에너지를 채우는지 살피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서둘러 해석하려는 습관을 잠시 내려두고 주변의 흐름을 관찰하는 감각을 예민하게 세울 필요가 있다.
정작 우리를 무겁게 만드는 것은 강한 외부 압력보다 작은 자극에도 흔들리는 과민한 반응일 때가 많다. 모든 상황에 빠르게 의미를 붙이는 태도를 멈추면, 안쪽에서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기운이 조금씩 내려앉는다. 그때 비로소 ‘무엇을 없앨지’보다 ‘느린 회복을 돕는 요소가 무엇인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렇게 하루의 중심이 다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우리는 주의력을 무한한 자원처럼 써왔다. 그러나 실상은 가장 빨리 고갈되는 에너지에 가까워 보인다. 한 대상에 머물던 시선이 쉽게 흐트러지고, 방금 전까지 무심히 들리던 소리가 어느 순간 신경을 건드린다.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습관은 주의력의 어느 부분까지 흩어졌는지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화면을 스와이프 하는 손의 잦은 움직임, 그 반복된 동작이 집중의 틈을 빠르게 파고드는 구조다.
알림음이 울릴 때마다 중요한 일을 진행하던 중에도 즉각 반응해야 한다는 ‘즉시 대응 압력’이 마음 깊은 곳의 긴장을 높여 놓는다. 이런 흐름이 주의력 소모를 가속하는 배경에 놓여 있다.
주의력 회수(Attention Recovery)는 디지털 기기를 내려놓는 행동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현대 심리학자들이 ‘주의력 위생(Attentional Hygiene)’을 거듭 언급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 있다. 산만한 환경에 적응한 정신을 다시 한 지점에 머물도록 훈련하는 과정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매일 30분 정도는 스마트폰을 물리적으로 다른 방에 두고 알림 없이 머무는 시간을 확보하는 편이 도움이 된다. 그 시간 동안 의도적으로 지루함을 허용하는 순간이 필요하다. 흩어졌던 주의력을 한 곳으로 모으는 감각이 천천히 회복되며, 집중이라는 근육이 서서히 살아나는 과정이 펼쳐진다. 조용한 방 안에서 사고의 속도가 자연스럽게 늦춰지고, 가슴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옅어지는 경험이 스며든다. 호흡의 깊이가 달라지는 이 짧은 간격이 집중력 회복의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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