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마무리하려는 시간, 말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 순간이 찾아온다. 오늘을 어떤 이름으로 남겨야 할지 잠시 망설이게 된다. 특별히 떠오르는 장면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다고 넘기기에는 하루가 몸에 남긴 감각이 분명하다. 어깨에 남은 묵직함과 잠자리에 누워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 생각은 시간이 허투루 지나가지 않았음을 조용히 전한다. 그런 틈에서 ‘만족’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이유를 묻지 않고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은 채 오늘을 대신 부르는 말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차지한다.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사용 방식 탓에 이 말은 감정의 언어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느꼈던 순간들을 차분히 되짚어 보면, 마음의 변화보다 앞서 이어진 흐름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기분이 좋았는지 나빴는지를 생각하기 전에, 하루가 충분했는지를 먼저 따져본다. 받아들일 수 있는 분량이었는지, 이 정도면 넘겨도 괜찮은지를 짧게 가늠한다. 그 판단이 마무리된 뒤에야 마음은 느슨해지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을 드러낸다. 만족이라는 말은 그렇게 하루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기능을 얻는다. 느꼈다는 표현 뒤에는 이미 판단을 마친 시간이 놓여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왜 이러한 판단의 과정을 마음의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판단이라는 절차를 감정이라는 표현으로 바꿔 부르는 편이 삶을 정리하기에 더 수월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매일의 시간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보다, 적당한 말로 묶어두는 방식이 덜 부담스러웠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하루를 기록하고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정직함을 지키려 한다면, 그 과정에서 작동하는 구조를 끝내 외면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정리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깊이 들여다보면, 기준은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기억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미 존재해 왔다. 시작점을 정확히 짚기는 어렵지만, 보이지 않는 선은 늘 같은 자리에 놓여 있었다. 일정한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는 생각, 아직 멈추기에는 부족하다는 판단, 조금 더 나아가야 한다는 압박은 별다른 설명 없이 삶 속에 스며들었다. 이런 잣대는 의식적인 선택의 결과라기보다,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익혀온 감각에 가깝다. 질문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당연한 바탕으로 작동했고,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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