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로 설명되지 않는 마음들

by 정성균

숫자가 가린 하루의 무미건조한 얼굴


하루의 시작은 머리맡에 둔 기기의 짧고 매끄러운 소리가 알린다. 밤새 손목을 감싸고 있던 장치는 잠든 사이의 호흡과 심장 박동을 잘게 나누어 데이터로 바꿔 보고한다. 얕은 잠의 비율과 깊은 단잠의 양. 눈으로 확인하는 셈의 결괏값을 훑고서야 우리는 비로소 제 몸 상태가 어떠한지 가늠한다.


잠기운이 가시지 않은 눈꺼풀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수면 점수 88점의 희고 건조한 불빛. 선명한 형광빛 숫자는 오늘의 활기를 미리 재단하려는 듯, 아침의 문턱에 서서 서늘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매겨진 그래프의 굽은 선을 살폈다. 꿈속에서 나를 휘감았던 식은땀의 서늘함보다, 통계가 선사하는 안도감이 더 차분하게 발등을 타고 올라온다.


일터로 가는 길은 빈틈없이 엮인 계산의 그물망이다.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열량은 건강 관리 앱에 곧장 기록되고, 손바닥 위 매끄러운 유리면에는 쓰인 돈과 남은 잔액이 수시로 깜빡인다. 사무실 책상 위 모니터는 오늘 해치워야 할 일감을 줄 세워 나열한다. 마감 시한, 진척도, 우선순위. 우리는 그것을 업무라 적어둔다. 할 일을 적어둔 글자 위로 취소선이 하나씩 그어질 때마다, 우리는 그 좁은 틈새에서 겨우 짧은 숨을 고른다.


메모의 바깥으로 밀려나는 생생한 몸의 기운


써 내려간 흔적의 선명함에 매달릴수록 몸의 느낌은 밀려난다. 시계는 일만 번의 횟수를 새겨두지만, 그 걸음 사이사이 발바닥으로 전해졌던 보도블록의 울퉁불퉁한 요철이나 비 갠 뒤 공기에 섞여 있던 짙은 풀내음은 담아내지 못한다.


앱은 다 써버린 400칼로리를 매끈하게 보여주나,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을 때 가슴속을 쿵쿵 울리던 심장 소리와 온몸에 번지던 뜨거운 열기만큼은 기호로 옮기지 못한 채 그냥 흘려보내고 만다. 오래도록 남는 잔상은 적어둔 결과와는 다른 결로 자리 잡았다.


합격 여부를 가른 점수보다, 그 소식을 듣던 찰나 멍하니 내려다본 낡은 운동화의 터진 앞코와 그 사이로 삐져나온 실밥의 잦아드는 흔들림이 더 또렷하다. 커다란 일의 끝에 손에 쥔 성과급보다, 마감 직전 자판기 앞에서 움켜쥐었던 캔커피의 차가운 금속 질감과 입안을 맴돌던 달큼한 뒷맛이 더 깊이 육신에 남는다.


지식과 체감 사이 벌어진 넓은 틈


정보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남길뿐, 그 순간이 어떤 결이었는지는 끝내 드러내지 못한다. 깨달음과 경험 사이에는 넓은 틈이 벌어져 있다. 삶을 붙잡으려 받아쓰기에 열중하는 동안 실제 감각은 펴진 손바닥 위에 고인 물이 손목을 타고 흘러내리듯 속절없이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지난 주말, 사진을 찍느라 커피가 식어가는 줄도 몰랐다. 잔 위로 피어오르던 고소한 향기는 놓치고 말았다. 사진기 속에는 구도가 잡힌 찻잔이 남았지만, 혀에는 차갑게 식어버린 액체의 쓴맛만이 덩그러니 남았을 뿐이다.


까닭의 감옥에 갇힌 직관의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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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생각과 마음의 결을, 책 속 문장과 함께 조용히 전합니다. 스친 만남이 믿음으로 이어져 각자의 하루에 힘을 더하는 장면들을 담담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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