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하지 않은 한 줄

by 정성균

입력하지 않은 한 줄 메시지를 보내려다 결국 카톡 대화창을 닫고 말았다. 불빛 위를 맴돌던 손가락은 갈 곳을 잃었고, 이내 책상 위로 엎어진 전화기는 몇 초 지나지 않아 다시 내 손에 쥐어졌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괜스레 액정을 켰다 끄기를 반복한다. 마지막 통화 기록은 정확히 3년 전. 텅 빈 입력창 위로 커서만 느릿하게 깜박일 뿐이다. 가벼운 안부 한마디면 족할 텐데, 어째서인지 첫 글자는 끝내 떼어지지 않는다. 전원 버튼을 눌렀다가 다시 켰다. 같은 이름, 같은 채팅방, 같은 빈칸.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 또 닫았다. 전화기를 책상 위에 엎어 두었다가 잠시 뒤 다시 들었다. 변한 건 없었다.


예전에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이토록 복잡한 셈을 치를 필요가 없었다. 퇴근 시간이 우연히 맞아떨어지면 곧장 문자를 띄웠고, 답장 역시 오래 기다릴 필요 없이 경쾌하게 돌아오곤 했다. 근처 식당에 마주 앉아 밥을 먹다가도 서로 먼저 밥값을 내겠다며 가벼운 실랑이를 벌였으며, 문을 나서며 다음 만남을 대충 맞추는 일련의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유독 일이 늦게 끝나는 날이면 아쉬운 대로 커피 한 잔만 마시고 헤어지기도 했지만, 굳이 캘린더를 펼쳐 보지 않아도 서로의 삶 속에 비어 있는 시간이 존재했고 우리는 자연스레 그 틈에서 마주 앉았다. 하루가 저물면 다음 날이 오듯 만남은 이어졌고, 소통은 특별한 계기 없이도 일상처럼 계속되었다.


지금은 순서가 완전히 달라졌다. 누군가를 떠올리기 전에 달력을 먼저 연다. 회의 시간, 보고 마감, 외근 날짜, 교육, 가족 행사, 병원 예약이 이미 칸을 채우고 있다. 이동 거리를 계산하고 다음 날 계획까지 같이 확인한다. 모임 하나를 넣으려면 다른 일과 하나를 옮겨야 한다. 한 번 미루면 뒤에 있는 계획도 줄줄이 바뀐다. 그렇게 몇 번만 수정해도 하루가 금방 꽉 찬다. 결국 실제로 시간을 맞출 수 있는 사람만 계속 만나게 된다. 따로 정한 기준은 없지만 생활 방식이 그렇게 정리해 놓는다.


처음에는 그래도 관계를 이어 보려고 했다. 날짜를 맞추다 한 번 미뤘고, 다시 잡으려다 또 어긋났다. 만남을 세 번 미룬 뒤에는 다음에 보자는 말만 남겼다. 채팅방에는 그 문장이 마지막으로 남아 있다. 그 뒤로 추가된 글은 없다. 다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큰 말이 오간 것도 아니다. 그저 다음 날짜가 정해지지 않았다. 전화 내역도 그 시점에서 멈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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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생각과 마음의 결을, 책 속 문장과 함께 조용히 전합니다. 스친 만남이 믿음으로 이어져 각자의 하루에 힘을 더하는 장면들을 담담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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