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는 좀처럼 보지 못하는 교회 종탑을 시골에서는 종종 본다. 오늘도 비록 녹이 슬었지만, 철제 구조물 꼭대기에 매달린 교회 종과 종탑을 보았다.
나의 외가는 경상북도 봉화였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이면 나와 형은 외갓집에 한 달씩 머물렀다. 기독교 신앙이 돈독한 할머니를 따라 우리는 일요일마다 예배에 참례하였다. 평일에는 교회 종탑 나무 구조물에 매달려 놀았다. 오래되어 색깔이 변한 거무튀튀한 무쇠 종을 장난으로 소리 내어 어른들의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는 종 모양의 장식이 매달려 있다. 댕댕 울리는 종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그 무언가가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옆 교회 종탑에 커다란 종이 걸려 있다. 색이 누런 게 놋쇠처럼 보였다. 종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기대하였지만, 아직 듣지 못했다. 종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사방에 줄로 묶여 있다.
우리나라 종은 종 외면에 당목(撞木)을 부딪쳐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바람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반면 서양종인 교회 종은 종 안에 달린 종추가 내면과 부딪혀 소리를 내므로 높은 곳에서 바람이 강하게 불면 스스로 소리를 낸다. 그 교회에서 종을 묶어둔 이유는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항의를 우려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근처 천주교 성당 신부가 그 종을 보고 교회를 찾아가 종을 울리면 어떻겠는가,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단다.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종소리는 땡그랑거리는 서양 종이 아니라 은은하고 깊은 소리를 내는 우리의 종이다. 몇 년 전 화엄사에 며칠 묵을 때 새벽예불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었다. 잠자고 있던 만물에 첫새벽을 알리고 산천초목을 깨우는 종소리였다. 깊고도 깊은 소리의 울림이 아직 내 가슴에 남아 있다.
4월 농촌에는 한창 논과 밭을 가는 중이다. 이미 갈아엎은 논도 있고 아직 풀로 덮인 논도 있다. 후자의 논 주인을 게으르다 할 수 없다. 며칠 이르거나 늦은 것을 두고 농부의 근면성을 평가하는 것은 지극히 도회적 사고다. 며칠 늦는다고 일 날 게 없다.
농부들 대부분이 노인이다. 노인들이 경운기를 몰고, 로터리를 치고, 밭에 비닐을 씌우고 있다. 폐가도 줄을 잇는다. 이 늙은 농부가 세상을 떠나면 그가 살던 집도 폐가가 될지 모른다. 노인이 먹거리를 생산하는 이 땅의 현실이 안타깝다.
오늘 압치고개(학산재)를 넘으며 정상에서 전라북도와 작별하는 동시에 충청북도와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내일은 충북 영동 황간까지 갈 예정이다. 오늘로 누적 300km를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