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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종단을 다시 시작하며 - 25화

경북 상주 모동면

by 조성현

국토종단을 다시 시작하며 / 상주 모동


1일 차(4월 6일)

경북 상주 모동면~모서면~49번 지방도로~화동면~신의터재~어산리 14km


1년 만이다. 작년 4월 다리 다쳐서 국토종단을 중단했을 때 지인들은 실패가 아니라 360km까지 성공한 것이라 하였다. 성공이냐 실패냐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남은 거리를 걷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게 뻔했다. 비록 내가 두 번의 장거리 도보여행 경험이 있다 하여도 육체의 고통과 불편함을 알기에 수백 킬로미터 도보여행을 결심하기는 쉽지 않았다. 한동안 고민했으나 결론은 이미 나 있었다. 코스를 다시 점검하면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재작년 목포에서 서울까지 1차 도보여행을 마치고 나서 자신감이 생겼다. 정확히 말하면 자만심이었다. 조조의 100만 대군이 적벽대전에서 10만도 안 되는 손권 유비 연합군에 패한 것은 연승으로 인한 조조의 자만심 때문이었다. 목포~서울 국도 1호선 길은 주로 평지였으나, 한반도를 오른쪽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2차 도보여행은 산악 지형이 많은 내륙을 관통하므로 하루 도보거리를 전년보다 짧게 잡아야 했다. 그러나 나는 거꾸로 길게 잡았다. 30km를 기본으로 36km까지 걸었다. 나에게는 무리였다. 올해에는 강원 산간도로도 걸어야 하므로 하루 평균 25km 정도로 잡았다. 그러나 어떤 복병이 딴죽을 걸지 모른다.


작년에 멈춘 그 자리, 상주시 모동면 초입에서 점심을 먹고 걷기 시작했다. 배낭 무게가 만만치 않다. 늘 겪는 일이지만 처음 며칠 동안은 배낭이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오늘은 야트막한 재를 하나 넘었다. 해발 280m ‘백두대간 신의터재’다. 오르막은 완만하나 내리막은 경사가 조금 있고, 구불구불하다. 문경새재까지 재 넘을 일 없을 것 같다.


고개 정상 팔각 정자에 중년 남녀 네댓 명이 술과 음식을 펼치고 권커니 잣거니 한다. 걷다 보면 이런 모습을 가끔 본다. 아무래도 먹는 게 부실하여 허기가 자주 진대다가 몸도 지치므로 음식의 유혹이 여간 크지 않다. 도보 여행자라 하며 슬며시 앉아 한 잔 달라고 하면 그들이 내치지야 않겠지만 차마 그러고 싶진 않다. 동냥도 낯이 두꺼워야 한다는데 배가 덜 고프기 때문이다. 오늘은 여행 초반이라 허기가 지지 않아 나부터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재를 넘는 건 도보여행의 별미다. 고갯마루에서 양말 벗고 쉴라치면 밀려드는 상쾌함에 가슴이 뻥 뚫린다. 내리막이라고 신이 나서 걸으면 무릎이 고생한다.


어제 이곳 상주 모동으로 내려와 민박에서 짐을 풀고 아래층 식당에 저녁 먹으러 갔다. 주인은 나에게 근처에 등산할 산도 없는데 배낭 메고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여차여차 강원도까지 걸어서 간다니까 대단하다며 도중에 먹으라고 사과 두 개를 건넨다. 기실 대단할 것 하나 없다. 남들은 생업에 열중인데 나는 돈 쓰면서 놀러 다니는 것이니 이런 말을 듣기가 거북하다. 하루도 쉬지 않고 식당 일하는 그녀 앞에서 대단하다는 말을 들을 자격이 없다. 구름이 잔뜩 끼어 날이 어둡다. 내일은 상주시 입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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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6_153853.jpg 농촌 어디나 서 있는 흉물스러운 "바르게 살자" 석물. 저 석물이 서 있어야 할 곳은 농촌이 아니다.
20160406_154118.jpg sㅗㅇ촌
20160406_160140.jpg 갓길이 없어서 지나는 차량에 위험이 노출되지만 그래도 이런 한적한 길은 걷기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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