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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구경도 좋지만 - 27화

경북 상주 함창

by 조성현 Jan 15. 2025

꽃구경도 좋지만 / 상주 함창     


3일 차(4월 8일)

경북 상주 부원~공검면~함창~문경시~유곡 점촌북초등학교 25km / 누적 60km   

  

어제는 가는 길 곳곳에서 노란 개나리와 하얀 벚꽃이 나와 동행했다. 꽃구경 유람이다. 바람에 벚꽃이 꽃비가 되어 내 손에도 내려앉는다. 촉촉하고 보드라운, 여린 이파리가 내 마음을 앗아간다. 4월의 도보 여행자는 꽃 선물을 안고 다닌다. 나는 매년 4월에 아랫녘에서 북으로 걸어 올라가기에 걷는 내내 꽃비를 맞으며 간다. 이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이번 여행에서도 벚꽃의 향연을 실컷 누리고 있다. 어딜 가나 벚꽃과 꽃비에 취했다. 길 양쪽 활짝 핀 벚꽃 터널도 지났다. 


벚꽃 하면 전주와 군산을 잇는 전군가도가 유명하다. 나라를 빼앗은 일본이 곡창 호남평야의 쌀을 공출하며 운송의 편의를 위해 이 길을 내었다. 일명 수탈의 길이다. 1975년 일본에 살던 전북 출신 동포들의 성금과 정부 예산을 합하여 100리 길에 벚나무를 심었다. 40km에 달하는 전군가도는 그 자체로 벚꽃 길의 대명사였다. 일제 수탈 길에 일본을 상징하는 벚꽃이 줄지어 서 있어서 한때 ‘사쿠라 길’이라는 오명도 들었다. 


꽃이 무슨 죄가 있나. 벚꽃은 일본 국화(國花)라고 잘못 알려져 있다. 일본에는 공식적인 국화가 없다. 다만 국화(菊花)는 일왕과 왕실의 상징이다. 일본인들은 벚꽃을 좋아할 뿐이다. 우리나라 벚나무는 제주가 원산지인 왕벚나무다. 목포~서울 걸을 때 전남 백양사 벚꽃 길도 장관이었다. 


오늘은 상주에서 문경 점촌으로 향하며 지방도로와 시멘트 길을 따라 걸었다. 바로 옆에 자동차 전용도로가 있어서 질주하는 자동차 소음으로 호젓하지는 않았다. 당연히 도로변에 꽃도 거의 없었다. 꽃구경 기대를 버리려는데, 상주 끝자락 함창으로 들어가며 벚나무가 1km 넘게 도로 양쪽에 줄지어 서 있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바람에 눈송이가 되어 휘날린다. 


어른들의 탐욕과 무능으로 꽃잎처럼 여린 수백 명의 꽃다운 학생들이 남도 끝 바다에서 하늘나라로 떠난 4월은 분명 잔인한 달이었다. 꽃구경하기 좋은 이 4월이 더더욱 잔인한 이유다. 


오늘은 세 끼 모두 밥을 먹는 호사를 누렸다. 아침엔 황태해장국, 점심엔 소머리국밥, 저녁엔 친구가 알려준 점촌역 앞 맛집에서 뼈다귀해장국을 즐겼다. 엊그제와 어제 워밍업으로 몸이 조금 풀리나 보다. 25km 걸었다. 아직은 몸이 길에 익지 않았지만 혼자 유람하는 자유로움에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아 훨훨 날아다닌다. 

내일은 문경새재 도립공원 밑자락까지 갔다가 모레엔 새재를 넘어 충북 땅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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