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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산 진부령을 넘다 - 45화

고성 진부령

by 조성현

어머니의 산 진부령을 넘다 / 고성 진부령


19일 차(4월 24일)

백담사 입구 버스터미널~진부령~간성향교 29km / 누적 445km


아침에 친구와 이곳의 명물 황태해장국으로 배를 채우고 진부령을 향해 걸었다. 서울에서 동해안을 가려면 네 개의 큰 고개 중 하나를 넘어야 한다. 대관령, 한계령, 미시령 그리고 오늘 내가 넘은 진부령이다. 한계령은 1,000M가 넘고 미시령과 대관령도 800M 이상이다. 그러나 진부령은 520M에 불과하다.


한계령과 미시령은 갑옷을 입은 골리앗의 모습이다. 주변 산세도 위압적이다. 직벽의 거대한 바위가 곳곳에 터를 잡고 있다. 그 위세가 어찌나 당당한지 보는 이들은 압도당한다. 두 준령은 사람과의 경계선을 분명히 그으며 사람을 품어주지 않는다. 단지 인간은 한계령 정상에서 산 아래를 바라보며 탄성만 지를 뿐이다. 미시령에서는 우람한 울산바위에 눌려 기가 꺾인다. 두 고개 모두 길 한쪽은 깎아지른 낭떠러지라서 오르내리는 이의 자기보호 본능을 자극한다. 조심할 수밖에 없다. 친근하게 다가가기 어려운 이유다. 한계령 미시령은 자신들의 속마음을 내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 진부령은 같은 강원도 준령임에도 다른 세 곳과는 이복형제다. 진부령 길 양옆으로 산에는 나무가 빽빽하되, 하나같이 둥글다. 직벽이 없다. 마치 갓난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엄마처럼 순수하다. 한편으로는 죄를 짓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아들을 보듬어 주는 어머니 같다. 진부령 오르는 길에는 낭떠러지가 없다. 그저 편하게 오르면 그만이다. 길옆으로는 한반도 서쪽 지역을 풍요롭게 해주는 젖줄이 흐른다. 진부령 정상 못 미쳐 발원한 물줄기는 소양강에 제 몸을 내맡긴다. 그 물은 거대한 소양호가 되고 계속 흘러 흘러 한강의 기적을 이룬 위업에 일조한다. 오대천과 내린천이 장강의 위용을 자랑한다면, 여기 북천은 갓 머리 깎은 여승처럼 겸손하다. 산의 경사가 완만하므로 사람이 들어와 산다. 사람이 살고 있어서 객은 외롭지 않다.


감탄사가 나오는 절경은 없지만 난 그 포근함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 사진 찍는 내 솜씨가 따라주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진부령 정상에서는 고산준령에서 만날 수 없는 이색적인 건물이 객을 반긴다. 진부령미술관이다. 어떻게 고갯마루에 미술관 지을 생각을 했을까? 근처에 알프스 스키장이 있었지만, 오래전에 문을 닫아서 겨울 스키족을 위한 것도 아닐 테다. 진부령은 오가는 차량도 적다. 누굴 위해, 대상이 누군지 생각해 보다가 잇속을 따지는 순수치 못한 나 자신을 꾸짖었다. 비록 오가는 이 적어도 예술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이 있을진대….


고성방면 내리막길은 조금 더 경사가 있다. 그러나 그 정도는 내가 자주 오르내린 재보다도 부드럽다. 진부령은 마지막까지 우리를 배려한다. 정상을 조금 지나며 다시 물길을 만난다. 이 물줄기는 영동지역을 적셔주다 동해로 흘러 대양을 만나리라.


진부령을 넘어 내려가는 중에 고성방면으로 가던 자동차 운전자 부부가 차를 세우고 태워주겠다 한다. 그들의 눈에는 허름한 입성의 중년 사내가 안쓰러워 보였나 보다. 나는 도보 여행자라며 정중히 사양했다. 예전에 혼자 지방으로 운전할 때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면 태워주곤 했다. 누구나 서로 의심하지 않고 호의를 베풀고 감사히 받아들였다. 지금 모르는 사람에게 차 태워준다고 하면 괴한으로 오인당하기에 십상이다. 불과 이삼십 년 사이에 ‘나와 너’의 관계는 단절되었다.

<오늘의 단상>


진부령에서 내려오다 보면 장신리를 만난다. 약 500년 전에 이 마을이 생겼단다. 길을 걸으며 마을을 지나칠 때면 마을 역사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자주 눈에 띈다. 석기시대부터 이어온 역사를 자랑하는 마을도 있다. 가야 시대나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온 마을도 많다.


지금 사람이 사는 이 집터가 수천 년을 이어 내려왔을지도 모른다. 유구한 세월을 지나며 영고성쇠와 풍상도 겪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서 살다 늙고 죽는 우주의 순환을 끝없이 이어왔다. 그에 비해 우리네 삶이란 길어야 백 년이고 칠팔십, 조금 더 살면 구십 년 만에 흙으로 돌아간다. 길지 않은 인생살이, 가까이는 군란(軍亂)으로 권력을 거머쥐어 국민에게 고통을 안긴 12.12 주역들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비루하게 이어가고 있다. 얼마나 오래 산다고, 그 영화가 무엇이라고 남들에게 고통을 안기며 그렇게 살았을까. 장구한 세월에도 굳건히 자신을 지키고 있는 그 마을. 어찌 그 마을뿐이랴. 백 년도 안 되는 그런 권력자의 삶도 스쳐 지나가는 점에 불과하다. 나도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적게 남았으니 이젠 고개 숙이고 겸손하게 살아갈 일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내가 좋아 홀로 떠다니는 이 사람에게 찾아와 밥도 사주고 술도 사준다. 오늘도 도움을 받았다. 서울 효제초등학교 63회 동창 친구에게서다. 공직자인 그는 시간을 내지 못하므로, 그 대신 예전 직장동료인 고성지역 식당 사장님에게 특별 영양식을 부탁하였다. 막국수 집에서 5년근 인삼 튀김과 다른 식당과 차원이 다른 수육, 막국수를 대접받았다. 사장님과는 이런저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며 술잔을 기울였다. 동창도 삼십 년 넘게 공직에 몸담으며, 지금도 초심을 잃지 않고 위민(爲民)하며 일하고 있다. 이들뿐만 아니라,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나는 주변의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나는 남에게 베풀기는커녕 내 것만 움켜쥐고 살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공생하려면 나도 뭔가 해야 한다.

이제 나의 도보여행도 이틀 남았다. 연착륙이 필요할 때다. 내일은 거진항을 거쳐 화진포를 돌아 대진항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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