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가 심하여 마스크 착용하라는 지인들의 충고가 핸드폰을 달궜다. 도보 여행자가 마스크를 쓰고 걸으면 무척 불편하다. 안경에 김이 서리고, 마스크 안에서는 땀이 흐른다. 황사 앞에서 항우장사가 따로 없지만 불편해서 벗었다.
인제에서 원통을 지나 한계령과 고성 갈림길에서 왼쪽 백담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46번 국도다. 곧게 뻗은 4차선 신도로는 인북천을 따라 이어지는 구도로를 뒷방에 앉히고 안방을 차지했다. 산에 구멍을 내어 각 1km가 넘는 터널도 두 개나 뚫었다. 새로 들어앉은 첩실이 아무리 좋은들 조강지처만 하겠나. 나는 빙 돌아가는 예전 도로에 들어섰다. 고원통로다. 이 길이야말로 다니는 차가 없다. 6km에 이르는 길 도중에는 사람이 살지 않고, 경작할 밭도 없다. 도보 여행자는 이런 길에서 휴식을 얻고, 기력을 보충한다.
역시 강원도답게 기암괴석이 손짓한다. 지나는 차가 없으니 경계심을 내려놓고 소풍 나온 초등 1학년 마냥 나풀나풀 가볍게 걷는다. 숨겨진 비경이다. 인북천 위로 뻗은 고가차도를 한계터널이 집어삼켜서 4차선의 흔적은 사라졌다. 바야흐로 산과 숲과 천(川)과 나만 남았다. 천을 가운데 두고 물길 따라 무성한 숲을 이룬 산이 양쪽으로 이어진다. 이쪽저쪽 산은 가운데 흐르는 인북천을 서로 끌어안으려 애쓴다. 천에 흩뿌려져 있는 온갖 모양의 바위와 돌이 양쪽 산의 구애를 훼방 놓는다. 갑자기 직벽에 가까운 절벽이 마주 보며 포효한다. 천 건너 송곳봉은 우람한 덩치를 자랑하고, 이쪽은 병풍을 두른 듯 넓은 어깨를 뽐낸다. 자잘한 바위가 물러나고 거대한 백암(白巖)이 물가에 자리 잡았다. 그 앞에는 퍼런 물이 너른 웅덩이를 이룬다. 내 글솜씨로 비경을 글로 표현하여 타인을 감동시킬 수는 없다. 이태백이라면 모를까.
오늘까지 8일째 물길을 따라 걷는다. 오대천과 내린천, 인제 합강을 지나 소양강을 옆에 끼다가 인북천을 탄다. 내일도 진부령 넘기 전까진 물길과 동무해야 한다. 강폭이 좁으면 귀와 눈이 호강하고, 넓으면 마음이 넉넉해진다. 좁은 곳에서는 바위에 부딪히는 물소리와 일정치 않은 물흐름에 정신을 빼앗긴다. 종종 물가에 앉아 물만 뚫어지라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 같다. 홀로 걸으면 사색에 빠지거나, 또는 자연의 풍광에 빠진다. 내린천이 그렇다. 반면 너른 물길은 소리가 없다. 잔잔히 흐를 뿐이다. 이곳 인북천은 두 가지를 다 지니고 있지만 주로 잔잔히 흐르는 편이다. 이럴 때 할 거라곤 생각뿐이다. 특히 나 자신을 돌아본다. 객관화된 또 다른 내가 나를 바라볼 수 있다.
“너, 뭐 하고 살았니? 뭐 하며 살고 있니? 뭐 하며 살래? 제대로 좀 살아라. 성현아….”
걸을 때는 두 가지 말고 늘 따라다니는 놈이 있다. 힘이 들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서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바로 그것이다.
<자전거 전용도로>
중랑천은 한강의 지천이고, 당현천은 중랑천의 지천이다. 어디든 국토의 천변 길에는 자전거 길이 뚫려 있다. 자전거 길을 오늘 잠시 빌렸다. 길 따라 걷다 보니 멀찌감치 떨어져서 같은 방향으로 나 있는 자전거 길이 보였다. 뭔가 새로운 게 있으면 호기심 때문에 슬쩍 건드려 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다람쥐 같은 성격이 발동한 것이다. 인제와 원통 옆을 흐르는 인북천을 거슬러 오르는 4km 자전거 도로다. 사람과 차가 없으니 잠시 걷기는 좋았다. 거기까지다. 도보 여행자에게 속도는 중요치 않다. 주변에 얼마나 동화되는가, 이것이 중요하다. 길다운 길이 되려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소통이 있어야 한다. 국토종단 하며 나는 종종 마을 길이나 심지어 임도로도 길을 잡는다. 비록 자동차가 도보 여행자에게는 위험 요소이기는 하지만, 잠시면 몰라도 자전거 길을 오래 걷는 건 지루하다.
<만해마을에서>
오늘은 정신의 풍요로움도 만끽했다. 동국대학교에서 지은 만해마을에 들어섰다. 문인들을 위한 숙소와 세미나 건물, 카페 등 현대식 건축물과 조경이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룬다. 나무 향이 풍기는 카페에 들어섰다. 손님이라곤 남자 두 사람뿐이다. 제일 먼저 수백 장 레코드판이 눈에 들어왔다. 동국대학교에 있던 것을 가져다 놓은 것이란다. 오랜만에 LP판 음악을 들을 수 있나 싶었지만, 누군가 턴테이블 바늘을 빼가서 지금은 안된단다. 대신 종일 말 한마디 못해서 입에 쳐진 거미줄을 걷어내는 것으로 만족했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구질구질한 옷차림을 한 아저씨가 자동차 없으면 접근이 어려운 이곳에 온 것 자체가 카페 일 보는 젊은 여인에게는 호기심 대상이었나 보다. 도보여행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다. 그녀는 호기심을 충족했을 테고, 나는 사람과 나누는 대화에 기쁨을 얻었으니 이거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다.
만해문학박물관에 들어섰다. 조정래 작가 등 많은 문인의 친필 액자가 걸려 있고, 문학, 독립운동 등 주제별로 만해를 소개한 코너, 만해를 다룬 각종 서적 등등 이곳 아니면 쉽게 접하기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다. 만해문학박물관에 들어서면 대리석 벽면에 선사의 법문을 볼 수 있다.
自由는 萬有의 生命이요 平和는 人類의 幸福이라 萬海
<친구가 찾아오다>
오늘의 종착지가 다가온다. 친구 만날 시간도 가까워진다. 이번 주는 친구 풍년이다. 신일고등학교 동창인 이지호 님이 원주에서 차를 달려 찾아왔다. 공군 장교로 30여 년을 복무하고 학교에서 후학을 지도하는 친구는 워낙 체력이 뛰어나서 40~50km를 산행한다. 평지 도로에서도 하루 40km 걷기 어려운데 산길로 잠 안 자고 백 리 넘게 다니는 그는 철인이다. 친구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에서 지냈다. 선이 굵고 인간미 넘치는 친구다. 친구가 마련해 준 군 휴양소를 숙소로 잡고 회관에서 푸짐한 식사를 대접받았다. 돼지갈비와 삼겹살을 각 2인분, 합 4인분을 주문하여 내가 3인분 이상을 먹어치웠다. 고기와 술로 배를 채우니 내일 진부령은 쉽사리 넘을 것이다. 찾아준 친구가 참으로 고맙다. 사복 차림으로 서빙하는 사병들의 예절이 깍듯하다. 손님을 단지 의무로만 대하지 않는다. 내 아들보다도 훨씬 어린 젊은이들에게서 기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