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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구 두무산촌 세 달 살기

평생 지어온 거라 놀릴 수 없어 짓는다는 팔순의 백발 어르신

by 남도시인 조수일

두무산촌에 입소를 하고 며칠 되지 않아 아침 마을 마실길에 농로를 걸어가는데 머리가 백발인 어르신을 뵈었다 전라도 남쪽은 그때 벼가 아직 익지 않았는데 여기 두무산촌은 벌써 다 익었네요 했더니 종자가 달라서 일거라고 설명해 주셨다 이곳 벼는 조생종이라고 했다 근방 논 밭 비닐하우스도 다 어르신 소유라고 하셨다 그 연세에도 농사를 지으실 만큼 건강하셔 다행 이리고도 했던 것 같다 어르신은 심장 수술도 하셨다고 하셨다 그래도 평생을 지어온 농사니 놀릴 수 없어지는 다고 하셨다 논 밭을 놀릴 수 없다는 뜻 같았다 부지런한 근성이 몸에 밴 어쩌면 우리 아버지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산책길에 몇 번 더 마주쳐 인사를 드리곤 했다 지난주엔 농로를 걷는데 비닐하우스에서 누군가 우릴 부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가보니 그 어르신이 우릴 손짓하며 부르고 계셨다 하우스엔 파란 열무들이 빼곡히 심어 있었다 대뜽 한 움큼의 열무 얼갈이를 우리에게 쥐어 주셨다 해 먹으라며, 우린 꾸벅 감사하다며 열무를 받아 들고 와 또 자랑을 하며 맛있게 열무 나물을 해 먹었었다 그 전에도 6호실 선생님이 열무를 한 움큼 갖고 오셨는데 그 할아버지께서 주셨다고 했다 아마 기다리시다가 주신 것 같다고 하셨다 감사한 인정이고 인심이었다 마음이 마음에게로 흐르는 따스한 숨결 같은, 우리도 세 달 살기가 끝날 즈음 감사의 선물을 꼭 해드리자며 총무님과 얘기를 나누었다 감동은 이리 작은 마음에서 기인한 정인가 보다고 생각된 요즘이다 순박하고 정스런 산촌 양구에 눌러앉아 살까 봐 은근 걱정되는 가을밤이다 나만 그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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