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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도시인 조수일 Oct 04. 2022

강원도 양구 두무산촌 세 달 살기

- 강원도는 다람쥐의 천국 같아요

빙 둘러 푸른 산이 감싸고 있는 두무산촌  테라스에  어느 선생님이 도토리와 상수리를 주워 와 말리고 있었어요  자고 나면 도토리 주변에 마른 껍질이 나뒹굴곤 해도 무심히 그냥 지나치곤 했어요  하루는 운동장으로 내려가다가 6호실 나무계단에서 놀고 있는 다람쥐를 보았어요 어느 날은 말리는 도토리 주변에 뭔가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는데 다람쥐 같았어요 그날도 테라스에 여러 선생님들이랑 모여 앉아 담소하며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는데 앗, 저기요 하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테라스 데크에 다람쥐 한 마리가 내려와 손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는 거예요  그 장면을 총무님이 영상으로 찍고 사진으로 찍어 단톡에 공유하며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웠지요 실지로 동네 마실길에도 도토리가 길바닥에 나뒹굴고 더러는 수북이 쌓인 도토리 껍질을 자주 보곤 했지요  백담사 가는 길엔 셔틀버스가 공사 중이라  계곡을 구경하면서 도보로 걸어가는데 길엔 도토리가 엄청 많이 떨어져 있었어요 아무 생각 없이 밟고 지났어요

백담사를 700미터 남겨두고 큰 나무 아래 잠시 쉬는데 세상에 수북이 껍질 벗겨진 도토리가 탑을 이루고 있었어요

그 쪼끄만 몸으로 앞발을 치켜들고 손으로 잡고 송곳니로 껍질을 깠을 모습이 상상되어 그만 못내 미안해졌어요

세상에 내 발밑에서 무수히 으깨진 그 도토리들이 누군가의 다람쥐의 먹이이고 식량이었다는 생각이 그때서야 드는 것 있지요?  생각 없이 걸어서 어쩌면 겨울 동안의 식량이고 끼니이고 양식이었을 것을 밟고 왔다고 생각하니 뒤통수가 부끄러워졌답니다  지난번 오유 밖 둘레길을 걸을 때도 무수히 깔린 것이 종류도 모양도 다양한 도토리과의 다람쥐들의 밥이었다니 어쩌면 강원도는 식량 먹거리 걱정 안 해도 되는 다람쥐들의 최적기 천국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딜 가나 길에 널린 게 도토리 혹은 고깔모자가 더 큰 상수리들 천지이니까요 안락한 주거지로 서식지로 무한 번성하기를 바라보는 밤입니다 치료를 위해 부산에 내려가신 2호실 선생님은 단톡의 다람쥐 사진과 영상을 보시고  2호실에 새로 입주할 손님을 잘 대접 보살펴 달라는 톡을 주셔 톡의 맥락을 파악 못한 난 나중에야 다람쥐와 이미 친구가 되신 선생님의  따스한 마음을 읽고 더 멋쩍어져 형광등인 머리를 긁적였답니다

오늘도 우리 숙소 근처를 배회했을 다람쥐,  내일은 네 먹이를 한 줌 공수해와 네  길목에 놓아줄게, 생각하는 가을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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