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직에 합격했지만 발령은 나지 않았다.
겨울은 길었고, 기다림은 지쳤다.
그녀는 시골 고향집 사랑방에 앉아 있었다.
특별히 할 일도, 갈 곳도 없었다. 책을 읽다 말고 낙서를 했다.
그날 우체국에서 편지가 왔다.
발신인은 선민,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이불을 무릎까지 끌어올리고 편지를 펼쳤다.
동글동글한 글씨체에서 친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교회, 결혼식, 늦은 도착, 파마 이야기.
혹시 그녀가 독신으로 살까 걱정하는 농담도 있었다.
그녀가 웃게 해주었다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고.
그 문장에서 그녀는 오래 멈췄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낯설면서도 따뜻했다.
동네 오빠들이 자꾸 안부를 묻는다는 대목에서 편지를 잠시 내려놓았다.
그 사람이 집 전화번호를 알아냈다는 이야기,
엄마가 그의 전화를 받았다는 이야기,
그래서 진땀을 흘렸다는 대목에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편지 끝에는 약속이 적혀 있었다.
목요일에 만나자는 말,
옥수수 껍질을 까고 콩을 볶고 김을 매야 할지도 모르니 바쁘겠지만 꼭 답장을 쓰라는 당부.
편지를 접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아직 발령은 없었다.
미래는 불확실했다.
그저 ‘백수’였다.
그래도 혼자는 아니었다.
봄이 왔다.
기다림에 지친 그녀는 다시 시험에 도전했다.
1991년 3월, 지방직 9급 행정직 공개채용에 합격했다.
이번에는 멈춰 서 있지 않았다.
그런 마음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5월 20일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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