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읍사무소로 발령을 받았다.
면사무소와는 또 다른 공기였다.
사람은 더 많았고, 일의 속도도 더 빨랐다.
생활의 중심도 자연스럽게 읍내로 옮겨졌다.
친정에서 신혼집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것은 이사라기보다 복귀에 가까웠다.
몸만 먼저 돌아온 느낌이었고,
마음은 아직 천천히 따라오는 중이었다.
아이는 읍사무소 근처 작은 놀이방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침이면 기저귀와 여벌 옷을 작은 가방에 챙겼다.
그 작은 가방 하나에 아이의 하루가 담겨 있었다.
출근 준비는 늘 비슷했다.
남편이 먼저 아이를 안고 나섰고,
그녀는 뒤에서 가방을 챙겼다.
말이 많지 않아도
역할은 자연스럽게 나뉘어 있었다.
퇴근 시간은 일정하지 않았다.
일이 끝나도 서류 정리가 남았고,
하루는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서류 정리를 마치고 나면
항상 급하게 놀이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면 아이의 작은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낮 동안 놀다 지친 얼굴로 조용히 앉아 있거나,
선생님 품에 안겨 있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마음 한쪽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아이를 안아 올리면
작은 체온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 따뜻함이 미안함인지, 안도감인지
그녀는 끝내 구분하지 못했다.
신혼집에서의 생활은 여전히 조용했다.
낮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를 보내고,
저녁이 되어서야 셋의 시간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 공간에 살고 있었지만
각자의 시간이 따로 흐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집에 돌아와도
완전히 돌아온 기분이 들지 않는 날이 많았다.
몸은 집에 있었지만
마음은 늘 일과 아이 사이를 오갔다.
바쁜 하루 속에서도
그녀의 마음 한켠에는 늘 같은 생각이 머물렀다.
지금쯤 아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생각은 사건이 아니라
습관처럼 찾아오는 감정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은 분리되어 있었지만,
마음까지 나뉘지는 않았다.
어느 날은 퇴근이 늦어졌다.
놀이방 문을 닫을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조용히 조급해졌다.
서둘러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
그 짧은 거리마저 길게 느껴졌다.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면
비로소 하루가 끝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점점 깨닫고 있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특별한 결심의 순간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선택의 시간이라는 것을.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아침,
일을 마치고 아이를 데리러 가는 저녁,
그 사이의 수많은 시간들이
조용히 그녀를 바꾸고 있었다.
2002년 봄,
그녀는 다시 원거리 면사무소로 발령을 받았다.
출퇴근 거리는 더 길어졌고
생활의 리듬도 조금씩 달라졌다.
그 무렵부터 아이의 병원과 일상적인 돌봄은
남편의 몫이 되는 날이 많아졌다.
남편은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었다.
아픈 아이를 안고 병원에 가는 일도,
예방접종을 챙기는 일도
자연스럽게 그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그녀는 크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 모습을 보며 조용한 안도감을 느꼈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육아는
한 사람의 몫이 아니었다.
아빠의 손과, 엄마의 발걸음과,
아이의 작은 시간이 함께 이어지며 흘러가고 있었다.
아이도 자라고 있었다.
놀이방 가방을 메고
아침마다 헤어짐을 배우고,
저녁마다 다시 만나는 시간을 익혀 갔다.
그 과정 속에서 그녀 역시 조금씩 엄마가 되어 가고 있었다.
완벽한 엄마는 아니었다.
여전히 서툴렀고,
여전히 일과 삶 사이에서 균형을 배우는 중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도망치지 않았고,
멈추지 않았다는 것.
아이를 키우며 일했고,
일을 하며 아이를 생각했다.
그 반복 속에서
그녀의 삶은 조용히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직장에서 자신의 자리에 앉아 역할을 다했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었다.
아이의 시간은 놀이방에서 자라고 있었고,
그녀의 시간은 일터와 집 사이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배워가는 중이었다.
엄마라는 이름도,
면서기라는 자리도
모두 익숙해지는 과정 속에 있었다.
서두르지 않았고,
과장하지도 않았다.
다만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며
하루씩 살아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아이도 자라고 있었고,
그녀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